차명계좌와 비자금 관리가 누구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는가에 못지않게 도대체 그 액수가 얼마에 이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지난 2006년 삼성이 ‘삼성공화국’ 파문에 대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면서 총수일가의 8000억 원 사재 출연을 약속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
이번에도 삼성이 ‘면죄부’를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돈을 풀어낼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는 가운데 그 액수를 가늠할 중요한 척도가 바로 비자금 규모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에서다. 게다가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삼성중공업 책임론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삼성이 과연 최근의 비난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돈을 써야 할지에 대한 호사가들의 이런저런 계산이 오가는 중이다.
특본이 특검에 넘긴 차명의심계좌는 적게는 2000개에서 많게는 1만 개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김용철 변호사가 주장해온 사안들이 특본 수사결과 대부분 들어맞았던 것을 감안할 때 특검이 계좌추적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비자금 액수가 족히 수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가능해진다.
만약 특검이 문제의 비자금을 다 찾아낸다고 가정할 때 금융실명제법 위반을 넘어 탈세 논란까지 불거질 수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해당 차명계좌에 대한 세금을 삼성이 다 물어줬다고 하는데 이는 차명계좌 소유주의 소득에 따른 과세였을 것이다. 이를 차명이 아닌 삼성 총수일가나 삼성 계열사 명의로 간수해왔다면 더 큰 액수의 세금을 냈어야했을 것이므로 탈세 논란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몇몇 검찰 관계자들은 “삼성이 수천억~1조 원 정도를 강제 징수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검찰 안팎에 나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예측이지만 삼성이 적지 않은 금액을 내놔야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를 둘러싼 삼성그룹에 대한 비난여론이 고조되는 것 역시 삼성과 이 회장을 부담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태안사고 책임론에 대해 삼성중공업 측은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라 당장은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수사가 마무리돼야 책임소재를 밝힐 수 있겠지만 삼성중공업의 예인선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 삼성을 향한 비난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최근 이어지는 태안 어민 비관자살 소식은 안 그래도 흉흉한 피해지역 일대 민심에 불을 지폈다. 태안 해변에서 자원봉사가 한창일 때 한 환경단체가 ‘Made in SAMSUNG’ 플래카드를 들고 찍은 사진이나 등에 검은 기름으로 ‘삼성 XXX’란 원색적인 문구를 쓴 작업복을 입은 자원봉사자 사진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경험을 들어 “해안사고가 나면 보상 등 무마를 위해 큰돈이 들어갈 것이다”며 삼성에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8일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삼성중공업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하며 지난 1989년 미국 알라스카의 엑슨-발데즈호 사고와 2002년 스페인 프레스티지호 사고에 비유했다. 이번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세계에서 몇 곳밖에 없는 개펄과 청정구역을 포함한 국립공원을 덮쳤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고들과 규모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참여연대 논평에 따르면 엑슨-발데즈호 사고 당시의 총 기름 유출량은 3만t, 피해보상액 2조 5000억 원, 환경복구비용 3조 원으로 총 보상 및 복구비용이 5조 5000억 원이 들어갔다. 프레스티지호의 기름 유출량은 2만 5000t, 피해보상액 3400억 원, 환경복구비용 5600억 원으로 총 보상 및 복구비용은 1조 원이었다. 이번 태안 사고로 유출된 기름의 총량은 1만 2000t이니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최소 수천억 원 이상의 보상 및 복구비용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특검이나 기름유출 사고 관련 수사가 마무리 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단정할 순 없지만 삼성이 ‘면죄부’를 얻기 위해 2006년의 경우처럼 거액 사회환원을 선언하게 된다면 위에 열거한 근거들을 통해 8000억 원보다는 훨씬 큰 액수가 등장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천우진 기자 wjc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