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28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제3민사부는 하림지주가 공간기획 스타트업 팀포지티브제로 A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 3월 하림지주는 사기에 의한 손해를 주장하며 10억 원과 지연손해금을 돌려내라고 소송을 걸었고 재판부는 A 대표에게 해당 금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의 시작은 2021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판결문에 기재된 하림지주 측 손해배상 청구원인에 따르면 A 대표는 당시 하림지주에 하림의 닭고기를 활용한 F&B 사업을 성수동 일대에서 전개하자고 제안했다. 단순히 외식 매장을 여는 데 그치지 않고 성수동을 찾는 MZ 세대에게 하림 브랜드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높인 뒤 향후 자체브랜드(PB) 상품 개발·판매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구상이었다.
A 대표는 전환사채(CB) 방식으로 자금을 요청했다. 조건은 1년 거치 후 2년간 원금을 균등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하림지주는 해당 사업이 그룹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같은 해 6월 A 대표가 운영하는 팀포지티브제로와 CB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10억 원을 송금했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하림지주가 인수한 CB는 팀포지티브제로가 2019년 설립한 이후 처음 발행한 CB였다.
유통·부동산 업계에선 하림지주의 투자 결정이 당시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선택은 아니었다고 본다. 성수동은 2021년 샤넬·루이비통, 2022년 디올 등 명품 브랜드가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팝업스토어와 매장을 잇달아 열면서 MZ 세대가 주로 찾는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무신사와 젠틀몬스터, SM엔터테인먼트 등도 성수동에 둥지를 틀었다. 강남보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면서도 유동인구가 많아 기업들이 신사업을 시험하거나 브랜드를 알리는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팀포지티브제로도 당시 성수동에서 이름을 알리던 업체였다. A 대표는 ‘연무장길의 시조새’로 불릴 정도로 성수동 상권 초기부터 다양한 공간을 선보였다. 2013년 ‘플레이스 사이’를 시작으로 재즈바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 카페·전시공간 ‘카페 포제’, 레스토랑 ‘보이어’, 수제맥주 매장 ‘스탠서울’ 등을 운영했고 식음·리테일·업무공간 등을 결합한 복합문화공간 ‘플라츠’도 선보였다. 팀포지티브제로는 공간을 확보한 뒤 콘셉트에 맞게 기획하고 F&B·리테일 브랜드 등을 직접 운영하거나 입점시키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하림지주는 A 대표가 투자 당시부터 원리금을 정상적으로 상환할 능력이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기업분석보고서에 따르면 팀포지티브제로의 2021년 말 기준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23억 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영업손실도 2020년 13억 원에서 2021년 25억 원으로 증가했다. 계약 당시 약속한 담보도 설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림지주 측은 투자금 대부분도 이 회사가 추진한 공간사업의 인테리어 비용 등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하림지주는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기도 했다. 하림지주 측에 따르면 A 대표는 2023년 6월 외부 투자를 유치하면 돈을 갚겠다며 분할상환을 요청했고 하림지주도 이를 받아들여 상환 기한을 미뤘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첫 분할상환 기일까지 돈은 한 차례도 상환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상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세청에 따르면 팀포지티브제로는 지난해 5월 폐업했다. 결국 하림지주는 A 대표가 처음부터 사업을 추진하거나 투자금을 상환할 의사 없이 자금을 유치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은 피고 측에 소송서류가 공시송달된 상태에서 내려졌다. 공시송달은 상대방의 주소를 알 수 없어 통상적인 방법으로 서류를 전달하기 어려울 때 법원 게시 등을 통해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절차다. 향후 A 대표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항소기간을 지키지 못한 경우엔 추후보완항소를 제기할 수 있다.
#건물값·임대료 오르자…공간기획 업체 부담도 커져

하지만 이후 건물 가격과 임대료가 오르고 금리까지 상승하면서 충분한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공간기획 업체들의 부담도 커졌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권을 조성하려면 여러 건물을 확보해 비슷한 방향으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만한 자본력을 가진 업체가 많지 않다. 결국 개별 공간을 기획하거나 컨설팅하는 정도이지 그 이상으로 확장하기는 쉽지 않다”며 “팬데믹 이후 건물 가격도 많이 올랐다. 대출을 받으면 이자를 내고 임대든 다른 사업이든 그보다 높은 수익을 내야 하는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간을 임차해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업체는 임대료 상승도 부담이다.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상가들은 보통 3년 단위로 임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금 장사가 잘되면 임대인들이 임대료를 턱없이 올려 기존 업체들이 장사를 계속하기 어렵다”며 “처음 리모델링 등을 통해 상권을 형성하는 업체들은 자본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음식 등 장사에 노하우를 가진 경우가 많은데, 자본이 없다 보니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하림지주 측은 “아직 (투자금 반환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외식 사업도 아직은 계획이 없다”라고 말했다.
과거 팀포지티브제로가 운영했던 매장들은 복합문화공간 ‘플라츠2’를 제외하고 문을 닫은 상태다. 플라츠2의 경우 현재 A 대표가 운영하는 플라츠시티와 A 대표가 총괄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브랜드 큐레이션 플랫폼 스타케 등을 중심으로 공간 임대 사업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플라츠시티와 A 대표 측에 이메일과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입장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