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실장은 지난달 21일 사의를 밝혔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하면서 인사 검증 시스템을 둘러싼 책임론이 커졌고,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던 강 실장은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 청와대는 당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으로서 국정 상황에 종합적인 책임을 지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순방을 마친 뒤에도 이 대통령은 강 실장의 사표를 받지 않았다. 지난 1일 하준경 경제성장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승진시키며 한 달 가까이 비어 있던 정책 라인은 채웠지만 비서실장 거취는 그대로 뒀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강 실장 후임 인선과 유임 가능성에 대해 “인사권자께서 고민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국감이 시작된 6일까지 인선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치권의 시선도 ‘언제 바꾸느냐’에서 ‘당분간 계속 가는 것 아니냐’로 옮겨가고 있다.
강 실장을 둘러싼 고민이 길어지는 데에는 정부 출범 이후 넓어진 역할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정부의 첫 비서실장으로 청와대 조직을 정비하고 여당과 정부 사이의 정무 조율을 맡은 데 이어 경제·외교 현안까지 직접 챙겼다. 비서실장이 청와대 내부 관리에 머무르지 않고 대통령 특사로 해외를 오가는 장면도 반복됐다.
또한 강 실장의 역할 확대는 방산·에너지 외교에서도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것이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이다. 강 실장은 지난 1월 전략경제협력 특사로 캐나다를 찾아 총 60조 원 규모의 초계 잠수함 사업 수주 지원에 나섰다. 2월에는 아랍에미리트 특사단을 이끌고 방문해 방산 350억 달러와 투자협력 300억 달러 등 650억 달러 이상의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7월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전 카타르 군주가 별세했을 때도 이 대통령의 조문 특사로 파견됐다. 카타르 측이 강 실장의 방문을 직접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 관계에서도 강 실장은 대통령과 민주당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아왔다. 3선 의원 출신으로 당내 인적 관계가 넓고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방산·에너지 외교부터 당정 조율까지 성격이 다른 현안을 폭넓게 맡아 처리하면서 이 대통령의 의존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 실장을 교체할 경우 한 사람이 맡아오던 여러 역할을 새 비서실장과 청와대 참모진이 다시 나눠 맡아야 하는 부담도 생긴다.
이재명 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지낸 우상호 강원도지사도 지난 3일 유튜브 채널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에서 “대통령 일할 때 보니까 강 실장에 대한 의존도가 아주 높다”며 “후임을 구하더라도 강 실장만 한 인물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 실장 후임으로는 천준호·한준호·김영진·정성호 의원과 김민기 전 국회사무총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이 가운데 천 의원과 한 의원은 각각 이 대통령의 당대표·대선후보 시절 가까이서 보좌했고, 김 의원과 정 의원도 친명계 핵심 인사로 꼽힌다. 대통령과의 호흡이나 당정 조율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현역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면 의원직을 내려놔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특히 상당수가 서울·경기 지역구 의원인 만큼 청와대로 이동할 경우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최근 수도권 민심과 민주당 의석수를 감안하면 비서실장 한 자리를 위해 새로운 선거를 만드는 데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현역 의원 차출이 여의치 않으면서 김민기 전 국회사무총장을 비롯해 김경수 청와대 정무특보, 이철희 전 의원, 박광온 전 민주당 원내대표 등 원외 인사들의 이름도 거론된다. 김 전 총장은 당과 국회를 두루 경험한 중량급 인사라는 점, 김 특보와 이 전 의원·박 전 원내대표는 비명·친문계까지 아우르는 통합 인사라는 점에서 각각 하마평에 오른다.
다만 강 실장처럼 대통령과 가까이에서 국정 운영을 함께해 온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통령과의 호흡과 청와대 조직 장악력 등을 새로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쇄신과 여권 통합, 대통령과의 신뢰를 동시에 충족할 후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후임 인선 지연이 길어지는 데 대한 부담이 나온다. 한 수도권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을 잘 아는 동시에 여권과 민주·개혁 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며 “최근 인사 문제가 발생한 뒤 비서실장이 사퇴했는데 비서실장 인선이 계속 미뤄진다면 야권에 또 다른 공세 빌미를 줄 수도 있어 걱정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강 실장의 거취가 장기간 정리되지 않는 상황 자체를 인사 난맥으로 보고 있다.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비서실장 지금 사라진 지가 언젠데, 그만두겠다고 한 게 언젠데 여태까지 도대체 누구를 임명할지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고 계속 무성한 소문만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라는 것은 밀행성이 있어야 되고 전격성이 있어야 되고, 그래서 사람들한테 신선한 느낌을 줘야 되는데 인사가 엉망진창”이라며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제도에 의해 시스템이 움직인다면 이렇게 결정이 지연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 대표는 강 실장의 그동안 역할과 사의 표명을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거취 문제는 조속히 정리해야 한다고 봤다. 신 대표는 “강 실장이 인사 실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점을 높게 평가한다”면서도 “현재 공소청장·경찰청장·중수청장 등 인사 수요가 적지 않은 만큼 비서실장 공백을 장기간 끌어서는 안 된다”며 “강훈식 실장의 사의는 수리해서 마무리를 짓는 것이 훨씬 더 대통령께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철준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