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 중 공은태가 로또 당첨이라는 행운을 얻은 것처럼 이준혁 역시 오랜 배우 생활 동안 '비밀의 숲'부터 '나의 완벽한 비서'까지 다양한 화제작과 흥행작을 만나며 현재진행형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만큼 그에 따른 경제적인 보상도 '로또급'은 아니었을까. 이런 질문에 이준혁은 "아주 큰 오해가 있으시다"며 손사래를 쳤다.
"제 이전 작품들이 얼마나 흥행했는지 조사해보시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아실 거예요(웃음). 제가 외모로 20년 동안 엄청나게 벌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엄청난 스타가 된 것도 아니고…. 아직도 그냥 열심히 하고 있는 단계거든요. 제가 살면서 작품 하나로 흥행했다고 해서 그걸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마 로또 1등 당첨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그런지 당첨된 뒤에도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은태를 보면서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웃음)."
이준혁이 이번 작품에서 유독 매력을 느낀 지점은 공은태가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비밀의 숲'의 서동재, '60일, 지정생존자'의 오영석, '범죄도시3'의 주성철 등 개성이 강하고 극적인 상황에 놓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온 그에게 공은태는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었다.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설정만 제외하면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고, 동료들과 부딪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회사원인 까닭이다. 스스로 "이상한 캐릭터를 많이 했다"고 농담할 만큼 현실의 자신과 거리가 먼 역할을 맡아왔던 이준혁에게 이런 평범함은 반대로 새로운 연기적 경험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공은태의 일상적인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데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중요했다. 특히 극 초반 공은태의 '화병 주범'으로 꼽히는 영업 5팀 양준호 대리 역을 맡은 서현우와는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의 티격태격하는 관계를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극의 재미를 더했다. 2019년 OCN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에 함께 출연한 뒤 약 7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이번에도 능숙한 연기 호흡을 보여줬다. 이준혁은 자신의 연기뿐 아니라 상대 배우의 움직임과 현장 전체의 흐름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서현우의 프로다운 면모에 각별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서)현우 형 덕분에 제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처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뭐든지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 내 믿음에 맞춰 주려고 하고, 모든 걸 같이 해 주면서도 더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찬가지로 과거에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하던 제 모습이 떠올라요. 애드리브가 들어가는 신에서도 형은 양 대리답게, 저는 은태답게 보일 수 있도록 서로를 믿고 가야 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그 신도 형이 잘 받아줘서 다행이었고요. 저는 형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어요, '슈퍼스타'가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낸 작품의 성과에는 고마움과 만족감을 아낌없이 드러냈지만, 정작 자신이 누리고 싶은 행운에 대해서는 소박한 편이었다. 앞서 드라마 한 편이 흥행했다고 평생 먹고살 수 있는 건 아니라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던 그다. 실제로 다음 작품을 기약할 수 없는 배우의 삶은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일반 직장 생활과도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그런 불확실성을 단번에 해소할 만큼 많은 돈이 생긴다면 어떨까. 이 질문에 이준혁은 공은태가 그랬듯, 여전히 자신의 '일'을 이어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랜만에 '땅에 발을 디딘' 인물을 연기한 이준혁은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렸고, 또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장르물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올 연말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재혼황후' 특별출연을 시작으로 내년 1월 방영 예정인 SBS 금토드라마 '각성'에서는 구마 사제 안토니오 역을 맡아 데뷔 이후 처음으로 오컬트에 도전한다. 2028년에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 '뱀피르'를 통해 스크린에서도 이준혁표 장르 연기를 선보일 계획이다. 그동안 범죄물과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를 넘나들며 다양한 얼굴을 보여 왔지만 아직 경험하지 못한 영역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하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SBS 금토드라마에서 피가 나오는 작품을 대체 누가 할까?'라고 했을 때 '내가 한 번 해볼까?'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웃음). 모든 장르를 좋아하다 보니 오컬트는 또 어떨지 궁금했거든요. 저는 최근 몇 년 안에 레퍼런스가 별로 없는 작품을 하려고 하고, 그렇게 시작해 놓고 중간에 후회하는 편이에요(웃음). 사실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라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해요.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큰 역할이 아니더라도 조금씩 변주할 수 있는 캐릭터로요. '비밀의 숲'에서 동재가 그랬듯 그렇게 유연한 모습들을 앞으로도 계속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