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계열사인 한국공항은 지난 11일부터 ㈜싸이버스카이를 통해 제주에서 생산하는 ‘제주워터’의 소비자 판매에 들어갔다. 한국공항은 이를 위해 제주워터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인터넷과 전화주문을 통해 제주워터의 시중 판매를 시작했다.
제주워터는 1.5ℓ 12병들이 한 상자는 1만 5000원에, 500㎖와 330㎖ 24병들이 한 상자는 각각 1만 8000원과 1만 6000원에 택배를 이용해 판매하고 있다. 또 한국공항은 제주워터를 구매하는 고객 가운데 일부를 선정해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마일리지로 전환 가능한 사이버 포인트를 부여하는 등 그룹 차원의 지원으로 다양한 고객 확보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제주도는 한진 측의 이런 행보를 ‘도전행위’라며 “응전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제주 지하수를 둘러싸고 제주도와 한진그룹이 ‘생수전쟁’을 벌일 태세인 셈이다. 제주도 유덕상 환경부지사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가 1984년 한진그룹에게 내준 먹는 샘물 허가는 지하수를 돈벌이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경영진의 의지를 신뢰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항공기 기내음료 등 기업활동에 필요한 제한적 범위만 허가했다는 것.
유 부지사는 “한진그룹이 제주도와 도의회의 신뢰를 저버리고 지하수 시판을 강행하는 것은 법률적 문제를 떠나 기업윤리 차원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 사기업 이윤 추구를 위해 제주도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것을 막겠다”고 밝혔다. 유 부지사는 또 “제주워터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는 지리적 명칭이자, 제주도민 모두가 공유해야 할 지적재산권인데도 한진그룹은 이를 자사의 돈벌이용 상표로 등록해 소유하고자 시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양측의 갈등은 또 한 차례의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제주도는 이미 변호사 변리사 등 법률 전문가 15명으로 테스크포스팀도 구성했다. 하지만 제주도가 한진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법정다툼 1라운드에서는 한진이 완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한국공항은 1984년부터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제동목장에서 ‘제주광천수’를 월 3000톤씩 생산해 그동안 대한항공 기내음료와 계열사 판매 등에 사용했다. 일반 판매는 제주도의 자원반출 규제에 따라 엄격히 금지돼 왔었다. 그러나 이후 생수시장이 급성장하자 한국공항은 1996년 ‘제주도가 제주광천수를 일반인에게 시판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영업 자유의 제한’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한국공항은 “제주도 지하수 고갈 우려가 있다”는 지역주민의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소송을 취하하고 시판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잠잠하던 한국공항은 2005년 2월 다시 행정심판을 제기했다가 기각당했다. 또 같은 해 8월에 낸 행정소송에서도 1심에서 제주도가 승소했다. 하지만 2심과 최종심에서 법원은 한국공항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한국공항은 제주도와 도의회로부터 하루 200톤의 지하수 개발·이용 승인을 받은 뒤 제주광천수를 제주워터로 바꾸고 특허청에 ‘한진제주워터’로 상표 등록을 마친 뒤 지난 11일 전격적으로 시중 판매에 들어간 것이다.
이처럼 유서 깊은(?) 생수 전쟁 방어전 선봉에 선 유 부지사는 “제주지역 지하수 난개발을 우려해 지방 공기업만이 먹는 샘물을 제조·판매하도록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이 개정됐다”며 “한국공항의 먹는 샘물 시판은 법률적인 문제를 떠나 기업윤리 차원에서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한국공항 관계자는 “지난달 지하수 개발 및 이용기간 연장 허가를 하면서 제주도가 먹는 샘물 시판을 허용해 놓고 뒤늦게 비난하는 처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지하수 보전을 핑계로 제주도지방개발공사가 독점적으로 시판토록 한 것은 특혜”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삼다수’의 주인은 제주도개발공사다. 하루 30만 톤의 삼다수를 생산해 독점 공급하고 있는 제주도개발공사는 이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얻고 있다. ‘삼다수’의 정확한 매출 규모 등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제주도개발공사의 지난 2006년 손익계산서에는 총매출액 580억 원 중 약 578억 원가량이 상품매출에 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덕분에 제주개발공사는 2006년 100억 원이 넘는 순이익을 남기기도 했다. 여기에는 감귤과 녹차 등 다른 상품의 매출도 포함돼 있지만 간판인 삼다수의 매출비중이 상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제주개발공사가 밝힌 ‘주요사업실적’에서도 잘 나타난다. 제주개발공사는 2006년 실적을 공개하면서 연초에 잡았던 순이익 목표를 109억 원의 95%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109억 원의 목표치 중 108억 원을 삼다수사업을 통해 달성하는 것으로 돼있다. 감귤과 녹차사업을 합친 순이익 목표는 1억 원에 불과했다. 삼다수는 사실상 제주도개발공사의 ‘생명수’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처럼 ‘돈 되는 장사’이다 보니 지난 연말에는 10년째 판매대행권을 갖고 있던 농심과 생수 시장 진출을 노려온 LG 측이 대행권 확보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을 정도다. 양측의 신경전은 농심이 기존 제주삼다수 판매대행을 계속하고 LG생활건강은 오는 5월 ‘다산이 삼다수’라는 새로운 이름의 제주 생수를 출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난해 코카콜라보틀링을 인수하며 음료시장에 뛰어든 LG생활건강은 제주개발공사가 제주 삼다수의 연간 생산량을 현재 30만 톤에서 오는 2010년까지 70만 톤으로, 단계적으로 늘려가기로 함에 따라 추가 증산 분량에 대한 판매 대행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LG생활건강 측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주 삼다수의 수출 등에 관심을 갖고 사전 준비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한진과 제주도, 양측의 갈등은 기업과 지자체 간의 돈 전쟁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자본력과 법리 싸움에서 우위를 확보한 한진그룹과 명분과 제주도민의 여론을 등에 업은 제주도의 싸움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