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도박 게임에서 이길 수 없는 이유는 과거의 패턴을 참고로 베팅해 합리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드라마 <올인>의 한 장면. | ||
다음 질문에 답을 해 보자. 린다는 서른한 살의 독신녀이고 솔직한 성격에 매우 똑똑하다. 그녀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학창시절에는 인종차별과 사회정의에 관심을 가졌고 반핵 시위에도 참가했다. 다음 중 린다의 직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① 은행 직원이다.
② 은행 직원이면서 동시에 여성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번째를 답으로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첫 번째를 답으로 꼽는 것이 올바르다. 왜냐하면 린다가 은행 직원이면서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여성일 확률보다 그저 은행 직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간단한 교집합의 원리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A와 B의 교집합 ‘A and B’는 절대 A나 B보다 확률이 높을 수는 없는 법이다. 또 다른 질문에도 대답을 해 보자.
동전을 총 10번을 던지는 게임이 있다. 앞면이 나오면 100만 원을 받고 뒷면이 나오면 100만 원을 잃는다. 지금까지 모두 9번 동전을 던졌는데 모두 앞면이 나왔다. 이제 마지막 열 번째 동전 던지기가 시작된다. 당신은 앞면과 뒷면 중에 어디에 베팅하겠는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앞면이 나왔으니 이번에는 뒷면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뒷면에 내기를 걸 가능성이 높다. 아홉 번 앞면이 나왔기 때문에 마지막 승부수는 뒷면에 건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행동일까.
보통 동전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똑같이 50%다. 이는 횟수와 전혀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앞에서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이 전혀 확률적 상관관계가 없는데도 마치 중요한 연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의사결정을 한다. 일부 독자들은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두 사례는 실제 실험을 통해 나온 결론들이다.
왜 사람들은 현실과 다른데도 이렇게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마치 그것이 올바른 것인 양 행동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 중에 ‘패턴 추구 행위’(Pattern-seeking)라는 것이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해 서로 논리적인 연관관계가 없는데도 인간 스스로 일정한 패턴을 부여해 의사결정 하는 것을 말한다.
패턴 추구 행위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오늘을 있게 한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우리의 원시 조상들은 포식자를 피하고 식량과 안식처를 찾는 데서 이런 능력을 발전시켜왔다. 나무와 식물의 생김새를 보고 독이 있는 것인지를 판별하려면 나무와 식물의 패턴을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주거지도 마찬가지다. 어떤 주거지가 사자나 호랑이같은 포식자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고 폭우나 폭설과 같은 자연의 공격으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일정한 패턴을 통해 파악하지 못했다면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진화적 증거는 전망 좋은 집을 좋아하는 현대의 인간에게도 남아 있다. 현대에 이르러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 중 하나가 전망이다. 한강변이 보이는 아파트는 그렇지 않은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다. 왜 인간은 전망이 좋은 곳을 선호하게 됐을까. 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 포식자의 움직임을 상대적으로 빨리 파악할 수 있어 안전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패턴화 능력은 ‘도박 게임’의 상황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앞서 얘기한 동전 던지기 게임이라든가 복권과 같은 것에서 패턴화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아니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시장이다.
내일 주식이 오를지 내릴지 그 확률은 50 대 50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주가 거래량이나 주가 움직임을 바탕으로, 즉 주가의 패턴을 찾아서 주가 예측을 한다. 경제신문을 보면 수많은 기술적 분석 신봉자들이 ‘주가 대예측’ ‘주가 폭등 예견’ 등의 거창한 제목을 달고 투자 강연회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연 그들이 얘기하는 주가 예측, 즉 패턴화는 신뢰할 만한 것일까. 아니다. 이에 대해 거창한 반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미 그들이 부자가 됐다면 강사료 몇 푼 받자고 자기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수고(?)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필자는 그래서 개인 투자자들에게 고수들이 강연하는 곳에 절대로 돈 내고는 가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단, 공짜라면 가서 귀동냥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주식형 펀드에 투자할 때도 패턴화 경향이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각 금융기관에서는 그 해에 수익률 1등 펀드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한다. 사람들은 현재의 수익률을 보고 이를 일반화해 이 펀드에 가입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검증된 실제 통계를 보면 이런 의사결정은 터무니없는 결과를 낳을 확률이 높다. 외국에서 이뤄진 1994년부터 2003년까지 다섯 개의 최우수 펀드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수익률 1등 펀드’라는 선택법이 얼마나 위험한 의사결정인가를 알 수 있다.
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최상위 다섯 개 펀드의 수익률은 그 다음 해에 평균 15%나 하락했다. 고작 최상위 다섯 개의 펀드 중 한 개만이 그 다음 해에도 좋은 투자 성과를 유지했을 뿐이다. 더욱 참혹한 것은 최상위 펀드 다섯 개 중 한 개는 그 이후 10년 안에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패턴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음의 투자 원칙을 계발하고 지킬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을 때는 확률론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성과를 보였는가라는 자랑은 한 귀로 흘려듣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가 해온 투자 과정 전반을 들어야 한다. 시간이 길다는 것은 확률론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모집단의 크기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펀드 투자를 할 때도 그 펀드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운용 기간이 얼마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1~2년 정도만 운용해서 올린 성과라면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다. 일시적으로 운이 좋아서 올린 수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 CIO가 오랫동안(길면 길수록 좋다) 운용하고 있다면 그 펀드(혹은 회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펀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늘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비합리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계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꾸준한 성과를 낼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