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이 대통령이 타고 순방을 다녀온 비행기는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전용기’가 아니라 ‘특별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저마다 자신이 이 특별한 기회를 잡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항공사들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입찰 경쟁을 벌이는 까닭부터 기내 서비스 경쟁까지, 대통령 특별기의 ‘특별한 비행’을 따라가 봤다.
대통령 전용기의 정식 명칭은 ‘공군 1호기’로 지난 1985년 구입한 보잉사의 B737-3z8기종이다. 외관상 제주항공 한성항공이 운행하는 중형 규모다. 100명 정도가 탈 수 있지만 대통령 집무 공간이 마련돼 절반 정도인 50명이 채 못 탄다. 때문에 가까운 일본과 중국에 갈 경우만 사용할 수 있다. 이때 수행원과 기자들은 다른 비행기를 타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때문에 외국에 갈 경우 대부분 이번처럼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대통령 특별기를 탈 수밖에 없다.
이번에 특별기를 제공한 곳은 대한항공으로 라이벌인 아시아나항공과 상상 이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일요신문> 832호 보도). 대한항공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특별기를 ‘쟁취’했지만 사실 특별기를 제공하면 금전적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별기 운항에 선정되면 항공사는 해당 기종에 대통령 집무실을 따로 만들고 일등석도 규모에 맞게 개조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특별기에서 참모들을 불러 놓고 각종 현안을 수시로 논의하는 것은 물론 미처 챙기지 못한 현안에 대해선 브리핑을 받기도 했다.
특별기는 기존 300석 규모를 수행원 수에 맞게 200석 규모로 개조하는 동안 비행에서 ‘열외’된다. 이처럼 특별기 운항을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다 보면 순방 일정보다 훨씬 긴 기간 동안 비행을 못한다. 또 대통령은 인천공항이 아니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여기까지 몰고 와야 한다. 이래저래 보이지 않는 추가 비용을 감안하면 엄청난 적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목을 매고 특별기 입찰에 나서는 것은 우선 대통령이 타고 내릴 때마다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때문이다. 또한 각종 기사에서도 대통령이 어떤 항공사를 이용해 순방에 나서는지 친절히 알려준다. 항공사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홍보효과가 없는 셈이다.
실제 이번 순방에서 일본 나리타공항에 내릴 때 일본 NHK를 비롯한 유력 방송사, 신문사 대부분이 이 대통령이 특별기에서 내리는 모습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해외 홍보효과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외형적 효과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물론 새 정부 고위 관료에게도 해당 항공사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 방미일정 중 대통령 특별기를 타고 뉴욕공항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 사진 제공=청와대 | ||
정권 초기 대통령을 직접 만나는 것이 간담회 등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고선 쉽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해당 항공사 CEO가 긴밀한 시간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손실을 감내하며 특별기 제공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을 지켜본 한진그룹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처럼 두 항공사가 대통령 특별기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기내 서비스도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별기 내부는 앞에서부터 대통령은 일등석, 장관들은 비즈니스석, 수행원은 일반석에 앉는다. 일반석에 앉는 수행원과 기자들은 한 자리씩 옆 좌석을 비워 놓기 때문에 일반석치고는 비교적 여유롭게 앉을 수 있다. 좌석만 일반석일 뿐 비즈니스석에 제공되는 음식과 음료가 나오는 것은 물론 원할 경우 컵라면도 먹을 수 있다.
이번 특별기 탑승자들에 따르면 출발할 때는 컵라면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느끼한 음식에 질린 탓인지 일본행 특별기 안에선 컵라면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컵라면과 함께 나온 장어초밥 탓에 정작 식사시간 기내식을 먹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또 기내에 신문 잡지는 물론 각종 베스트셀러가 준비돼 있고 최신 영화까지 볼 수 있어 장시간 비행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각종 베스트셀러는 나중에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기 때문에 일부 탑승자들의 경우 채 다 읽지 못한 책들을 몇 권씩 챙기는 알뜰함을 보였다고 한다.
특별기의 하이라이트는 승무원의 ‘감동 서비스’란다. 일부 탑승자들은 기내에 앉자마자 상냥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승무원들로 인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알고 보니 해당 좌석을 담당하는 승무원들은 좌석배치도를 보고 탑승자의 이름과 얼굴은 물론 출생지, 학교까지 외워 온다는 것. 실제로 일부 탑승자들은 동향이라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승무원들로 인해 순간 당황했다고 전해진다.
더불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비행기에 오르면 피로회복제를 내밀며 건네는 “수고했다”는 승무원의 한마디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여기에 정성어린 선물까지 곁들여진단다. 이번에 대한항공은 조그만 향수를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승무원들의 따르면 탑승객 중 단 한 명에게라도 서비스에 대한 ‘항의’를 받게 되면 다음 특별기 탑승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감동 서비스’에 나선다는 것.
이러한 기내 서비스 경쟁은 아시아나항공으로 인해 촉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 특별기 입찰 후발 참여자로서 보다 특별한 서비스를 위해 노력하다보니 대한항공도 쫓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순방이 끝난 뒤 기자 등 탑승객들에게 “고생했다”는 편지까지 보내주는 ‘사후 서비스’도 했었다고 한다. ‘형식적인’ 편지라고 의심한 기자들이 편지를 돌려보며 확인했지만 각기 내용도 다른 ‘진짜 편지’로 판명돼 한동안 흐뭇해했다는 후문이다.
김명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