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작업의 정석>의 한 장면. | ||
이렇게 끝까지 남은 500명에게 당신은 대단한 시장 예측 전문가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들에게 당신의 투자 예측 정보지를 받아 보기 위한 비용으로 연간 100만 원을 청구한다. 이 가운데 200명만 구독 신청을 해도 2억 원의 거금을 챙길 수 있다. 이때 소요된 비용은 우편으로 보냈을 경우 우표 봉투값과 시장 전망을 적는 약간의 노동밖에 없다.
당신은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착각은 금물. 외국에선 실제로 이런 식의 사기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실의 투자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펀드 회사들의 수익률 광고다. 매년 언론에서는 ‘올해의 펀드’를 선정하면서 수익률 1위 펀드를 발표한다. 사람들은 그 1위 펀드의 수익률을 보면서 과거에 좋았으니 미래에도 괜찮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이 펀드에 가입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런 식의 투자 결정은 좋지 않게 끝난다.
국내에서 출시된 펀드의 숫자는 무려 8000개. 이는 세계 최대 규모로, 펀드 대국인 미국보다도 많다. 이 가운데 한 개를 골라서 그 한 개가 돈을 벌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8000 대 1의 복권 당첨 확률과 같다. 수익률 1등 펀드를 콕 집어 투자하는 것은 확률론적으로 보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방법이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수익률 1등 펀드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8000 대 1의 확률이라는 것은 도외시한 채 살아남은 단 한 개의 펀드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생존 편향에 빠졌다’고 얘기한다.
생존 편향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이 뜰 때는 부동산으로 돈 번 사람만 주위에 보인다. 주식시장이 상승세일 때는 주식이나 주식형 펀드로 고수익을 낸 사람들의 얘기만 들린다. 반면 돈을 잃은 사람들은 조용하다. 돈을 딴 사람이 있으면 그 이면에 돈을 잃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생존한 사람, 돈을 번 사람에만 초점을 맞춰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존 편향뿐만 아니라 실제 이뤄진 많은 조사에서 시장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증거는 수없이 발견된다. 지난 1980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의 대표적인 우량주 500개로 구성된 ‘S&P 500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17.6%.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10일 동안 주식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수익률은 12.65%로 낮아진다. 만일 수익률이 높았던 20일 동안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수익률은 9.3%로 더욱 떨어진다.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30일 간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으면 수익률은 6.5%로 떨어진다. 과연 10년 동안 단지 수익률이 높았던 30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
펀드 투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2001년 7월 6일 설정된 국내 최장수 주식형 펀드인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주식형’의 누적 수익률은 현재 약 700%다. 만일 펀드가 설정될 때 돈을 넣어두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면 투자 수익은 원금 대비 7배가량 불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펀드의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10일간 투자하지 않았다면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 무려 약 200%나 차이가 난다. 즉 500%에 불과하다. 수익률 상위 20일간 투자하지 않으면 360%, 40일이면 180%, 그리고 수익률이 좋았던 50일을 제외하면 140%대로 수익률을 쪼그라든다. 6년이 넘는 2278일 동안 이 펀드의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50일을 제외한 수익률은 그대로 놔뒀던 것에 비해 5배가량 차이가 난다. 과연 수익률이 가장 좋았던 50일을 정확히 맞출 수 있었던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사실 주식시장에서 예측을 통해 돈을 벌기란 쉽지 않다. 설사 자신이 확신에 찬 예측을 한다 하더라도 왕왕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지나친 확신에 따른 예측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개인투자자들이 예측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 손실의 폭을 정해 놓고 손절매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예측과 반대로 움직이는 순간, 지체 없이 처분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극도의 자제력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돈을 벌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의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이익보다 손해를 더 민감하게 느껴 본능적으로 손실을 피하려는 경향을 두고 ‘손실 회피 감정’이라고 한다.
손실이 나면 사람들은 그 손실이 싫어 본의 아니게 장기 투자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자신이 손실 회피 감정을 이겨내고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손절매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대안은 기간에 초점을 맞춰 투자하는 전략이다.
미국의 경우 1928년부터 1991년까지 63년 동안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약 4년 단위로 투자했을 때 손실은 단 한 차례 발생했다. 바로 1929년 대공황 이후 시점이다. 이 시기는 미국 국민 10명 중 4명이 실업자였고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줄도산을 했던 때다. 나머지 기간은 손실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증시의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지수)는 1980년 100포인트로 시작했다. 만일 지수 자체에, 시점에 상관없이 5년간 투자했다면 최대 51.52%의 수익률을 낸 반면 손실을 낼 때는 최대 -18%를 기록했다. 5년만 투자해도 확률적으로 돈을 딸 확률이 훨씬 높아짐을 알 수 있다. 10년으로 시간 축을 늘리면 최대 수익률은 24.2%, 손실률은 -8.91%였다.
이는 시장 전체, 즉 지수에 투자했을 때의 경우다. 만일 우량주로 구성된 펀드나 다른 지수로 투자했다면 수익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런 결과는 3~5년 정도의 시간 축만 확보해도 손실을 입을 확률은 대폭 줄이고 수익을 낼 가능성은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주식이나 펀드 투자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우연성에 바탕을 둔 예측보다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투자 기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한 전략이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