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4일 한화건설은 185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그보다 앞선 3월 20일엔 ㈜한화가 12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렇게 두 계열사에서 확보한 현금만 3050억 원에 이른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이 지분 16.97%로 최대주주에 올라있고 한화건설은 ㈜한화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김 회장이 장악하고 있는 두 계열사가 잇따라 대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화석유화학(한화석화)도 지난 4월 25일 4500억 원가량의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이를 공시했다. 이는 한화석화 주식총액의 40%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한화는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등을 일부 매각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기에 최근 한화손해보험빌딩을 매각해 얻은 2800억 원 중 한화증권 빌딩 매입에 사용하고 남은 1000억 원도 수중에 있다.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해봤을 때 한화그룹은 계열사들을 통해 적어도 1조 원 이상의 자금을 끌어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에서는 계열사들의 자금 모집에 대해 ''차입금 상환'' ''사업자금 마련''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재계의 많은 인사들은 “대우조선해양(대우조선) 인수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8조~10조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인수전에서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동원했다는 것. 한화그룹 한 내부 관계자는 “경영기획실에서 계열사들에게 최대한 많은 자금을 비축해 인수전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혀 이를 뒷받침했다. 이는 앞으로 더 많은 계열사가 참여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러한 한화의 움직임을 그다지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한화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의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
1만 7000원에 육박하던 한화석화 주가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이후 4월 하순 현재 1만 3000원대로 떨어졌다. ㈜한화도 4월 초 6만 원을 넘나들던 주가가 지금은 4만 5000원대다.
이것은 대우조선 인수가 한화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김영진M&A연구소 김영진 소장은 “한화가 이번에 모은 자금들은 대우조선 인수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주가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회사채를 발행한 계열사들의 경우 이자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또한 한화석화는 유상증자로 모은 자금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한화석화가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사업투자가 아닌 인수자금에 사용할 경우 주주들과 시민단체들부터 항의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대우조선 인수 문제를 놓고 한화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회장이 인수하기로 전격 결정하면서 반대의 목소리는 현재 수그러든 상태. 한화 내부사정에 정통한 A 씨는 “올해 한화의 지상과제는 김 회장 사면과 대우조선 인수다. 이 두 가지에 '올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룹 일각에서는 인수 가능성이 희박하고 시너지 효과도 미지수인 대우조선보다는 “다른 M&A 매물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룹 내부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나오는 곳이 또 있다. 바로 대우조선 노조. 현재 대우조선 노조에는 한화의 인수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유는 지난해 보복폭행 사건으로 김 회장의 이미지가 좋지 않고 포스코 GS 등 다른 경쟁사보다 시너지 효과가 작다는 것.
대우조선노동조합 김경수 정책기획실장은 “인수전 참여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아직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조합원은 “주위에서 인수 희망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한화는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조합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그룹 안팎에서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에 관한 구설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김 회장이 대우조선 인수전 이후까지 생각하고 있다”라는 추측이 나와 흥미롭다. 즉 대우조선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이번에 비축한 자금으로 다른 기업 M&A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이번에 한화가 무리수를 둬가며 계열사를 통해 끌어 모은 약 1조 원의 자금은 대우조선을 인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현재 재무적 투자자 등을 찾고는 있지만 자금에 여력이 있는 곳은 이미 대부분 경쟁사들과 손을 잡은 것으로 알려져 쉽게 구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한화는 자체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가지고 인수전에 참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한화가 앞으로 지금과 같은 대규모 자금 조달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우조선을 인수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라면 충분히 월척을 낚을 수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김 회장이 겉으로는 대우조선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속으로는 다른 곳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을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금융회사를 인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몇몇 보험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계열사를 동원해 모은 돈이 제일화재와 그밖에 보험사들을 인수하는 데 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