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초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97년 아시아 금융시장 위기와 그 이듬해 발발한 러시아 경제 위기로 인해 ‘롱텀’(장기)이란 회사명과는 전혀 다른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재미난 점은 이들 천재들은 자신들이 파산할 확률을 60억 분의 1로 계산했다는 점.
또 다른 예는 조금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물리학의 아버지’로 꼽힐 정도로 천재적 두뇌를 자랑했던 아이작 뉴턴 경은 주식투자로 자신의 전 재산을 거의 다 날리고, 생전 자신의 앞에서 주식의 ‘주’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상 최고의 펀드 매니저로 꼽히는 피터 린치는 “주식투자를 해선 안 될 두 부류가 있다. 천재이거나 둔재가 그들이다”고 말한다. 머리가 끝내주게(?) 좋다고 하더라도 투자의 세계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어떤 자질이 요구되는 것일까.
흔히 열정을 두고 후천적 재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과연 투자의 세계에서도 이런 열정이 필요한 것일까. 만일 당신의 직업이 투자 관련 일이라면 투자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투자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면 열정은 왕왕 비참한 결론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금세기 최고의 투자자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자민 그레이엄은 “다른 분야에서 열정은 성공의 필수요소이지만 월스트리트(투자 분야)에서는 그러한 열정이 재난을 부르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이는 투자라는 게임의 룰이 승리에 대한 열정과는 사뭇 다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 흔히 투자를 두고 ‘패자의 게임’이라고 한다. 승자가 패자에 의해 결정되고 실수를 줄이는 자가 게임에서 승리하기 때문이다. 테니스 경기를 예로 살펴보자. 테니스 경기는 실수 없이 공을 상대편 네트로 얼마나 계속해서 보낼 수 있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강서브를 넣는 사람이 처음에는 이기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최종적인 승부의 갈림길은 상대편 네트로 공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달려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이기는 사람, 즉 승자가 되느냐 여부는 자기 자신에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패자, 다시 말해 상대방에 달려 있는 것이다. 상대보다 실수를 적게 해야 이긴다. 골프도 마찬가지.
골프는 정해진 코스를 남들보다 적은 타수로 도달해야 이길 수 있는데 적은 타수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장타를 날리는 것보다 매 타수마다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0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해 1년 동안 100%의 수익이 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1년 뒤 원금과 수익을 합해 모두 4000만 원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2차년도에는 주가가 급락해 -50%의 손실이 발생했다. 다시 4000만 원을 만들려면 몇 %의 수익률을 올려야 할까. -50%의 손실이 났으니 50%의 수익률을 올리면 될까. 그렇지 않다. 4000만 원에서 -50%의 손실이 발생했으므로 2000만 원이 된다. 여기서 다시 4000만 원을 만들어야 하므로 50%가 아닌 100%의 수익률을 올려야 한다. 50%의 수익률을 거두면 3000만 원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흔히 투자의 세계에서는 ‘잃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100=-50’을 공식으로 쓰곤 한다.
투자란 이처럼 돈을 따기보다는 잘 잃지 않는 사람이나 설사 잃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덜 잃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이기는 게임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열정보다 더 필요한 자질이 의심과 인내심이다. 투자 수익이란 일종의 ‘의심의 대가’다.
만일 당신이 정말 근사한 펀드 하나가 새로 판매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치자. 대개 사람들은 판매 첫날 이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그 다음 날에도 가입할 수 있고 한 달 뒤에 돌아가는 사정을 보고, 즉 의심을 해보고 가입해도 늦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앞 다퉈 이 상품에 가입한다. 새로움에 대한 열정 탓에 자주 빚어지는 일들이다.
의심은 또한 인내심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투자의 묘미는 시간에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투자 가치가 재평가되고 그에 따라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은 원하는 물건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내심의 절정을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워런 버핏이다. 2005년 말 버핏은 맥주회사 안호이저-부시의 주식을 매입했다. “25년 동안 안호이저-부시의 연차 보고서를 빠짐없이 읽어 왔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가격대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자제력인가. 사실 이 자제력은 투자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핵심적인 인성이다. 이는 상식적 판단으로도 그렇다. 매월 급여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 오늘 일을 하기 싫다고 늦잠을 자는 사람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다. 무슨 일을 하든 현재를 참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의심과 자제력만 있어도 그 사람은 상당히 성공적인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여기에 ‘배짱’이 추가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투자란 간단한 것. 싸게 사서 비싸게 팔면 된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간단한 내용이 실제 행동에 들어가면 결코 쉽지 않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인성의 측면에서 보면 바로 ‘배짱’의 문제다.
통상 주가가 싸지는 시점은 경기가 좋지 않거나 해당 기업에 나쁜 뉴스가 있을 때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고 금리가 높아야 주택 가격이 싸진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투자하기에는 뭔가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더 가격이 하락할 것도 같고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지금까지 비관론이 가득했을 때 투자하면 돈을 잃을 확률이 매우 적었다. 월가의 살아 있는 전설로 13년간 펀드를 운용하면 2700%(누적수익률 기준)을 올렸던 피터 린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머리는 있지만 아무나 배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당신이 주가 하락에 두려움을 느끼며 모든 것을 팔아치우는 성격이라면 주식투자는 물론 주식형 펀드 투자도 피해야 한다.” 머리보다 중요한 것은 배짱이라는 얘기다. 당신은 의심, 인내심, 배짱 중 어느 것을 가지고 있는가.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dreamw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