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억 원짜리 공중관람차 설치가 어려워진 대구 롯데역사 전경. | ||
먼저 코레일이 “롯데역사가 무책임한 경영으로 수십억 원의 돈을 허비했다”며 선방을 날렸다. 그러자 롯데역사도 “민자역사 중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응수했다. 이번 논란은 현재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나머지 민자역사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2003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롯데역사는 대구에 역사를 설립해 롯데백화점과 함께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롯데역사는 대구역사 개점에 맞춰 역을 공중에서 관람할 수 있는 시설을 일본에서 들여와 설치하려고 했다. ‘공중관람차’라고 불리는 이 장비를 수입하는 데 들인 돈은 60억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중관람차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구시청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 코레일 노조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도 허가를 받을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60억 원을 허공에 날린 것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사전에 검토도 없이 일단 기계부터 들여온 롯데역사의 무책임한 경영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롯데역사에서는 코레일 노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내심 못마땅한 눈치다. “경영을 하다보면 손실을 볼 때도 있다”는 입장인 것. 또한 코레일이 이런 문제까지 관여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는 속내도 엿보인다. 한 관계자는 “일단 경영권이 우리에게 있는 이상 책임도 우리가 지는 것 아니냐. 전체 순이익에 비하면 60억 원 손실은 그다지 큰 액수도 아니다”고 밝혔다. 지난해 롯데역사 당기순이익은 대략 670억 원이었다.
코레일도 공식적으로는 “우리가 거론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레일 노조는 “롯데역사 경영은 코레일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코레일은 롯데역사 당기순이익의 1%가량을 배당금으로 받고 있는데 경영이 부실하면 받는 금액이 더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 노조 관계자는 “롯데역사의 최대주주인 코레일이 수익의 1%만 받는 것도 억울한데 손실에 대해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하는 것은 대기업의 횡포다”라고 주장했다.
코레일 노조는 대구역사의 손실을 계기로 민자역사의 전반적인 부실경영을 짚고 넘어간다는 계획이다. 현재 10곳의 민자역사 중 수익을 내고 있는 곳은 롯데역사를 비롯한 2~3개뿐이다. 코레일이 민자역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돈은 민자역사 수익에서 나오는 배당금과 철도부지 사용료가 전부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 이상 적자에 허덕이는 민자역사의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게 코레일 노조의 입장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곳이 1994년에 설립된 산본역사다.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산본역사는 지난해 20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고 부채총액만 217억 원이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손실액이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코레일 노조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산본역사 내 건물 10곳이 모두 합쳐 19억 원 부채 때문에 가압류를 당한 상태다. 산본역사를 상대로 진행 중인 소송도 10건에 이른다. 소송금액은 총 66억 원이라고 한다. 또한 시설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아 동네 주민들이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다고 한다.
올해 산본역사는 코레일과 부채탕감 등에 대해 협상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코레일 내부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 듯하다. 산본역사가 초래한 부실 경영의 책임을 코레일에 떠넘기려 한다는 것. 노조 관계자는 “그동안 배당금은 고사하고 부지사용료 등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도산하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한편 코레일 노조는 “민자역사의 낙하산 인사 관행부터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현재 대부분 민자역사의 임원진에는 코레일 전직 간부들이 임명돼 있다. 롯데역사만 하더라도 코레일 기술본부 본부장을 지냈던 ㅅ 씨가 이사, 코레일 자회사의 감사였던 ㄱ 씨가 감사로 근무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설립된 용산역사도 다섯 명의 임원 중 두 명이 코레일 전직 간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민자역사의 감사는 거의 코레일 출신이라는 것. 하지만 민자역사의 감사직은 유명무실한 자리라는 안팎의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로 코레일에서 근무를 하다 민자역사의 감사로 2년간 일했던 A 씨는 “(민자역사 감사는) 퇴직을 앞두고 명예직으로 가는 곳이라고 여겨진다. 실제 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코레일 노조는 민자역사의 부실경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낙하산 인사 관행을 뿌리 뽑아 경영상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레일 전직 간부들을 임명하지 말고 전문가들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 코레일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민자역사에 나가있는 전직들은 대부분 현직 코레일 간부들의 선배다. 이 때문에 민자역사의 잘못을 눈감아 달라는 부탁이 오면 거절하기 힘들다”라며 전관예우의 병폐를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