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림그룹 계열사들의 상장 움직임을 경영권 승계를 위한 단계로 보는 시선이 많다. 사진은 이준용 명예회장과 장남인 이해욱 부사장(원 안). | ||
물류업체인 대림H&L은 지난 4월에 1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이로 인해 대림H&L의 자본금은 50억 원에서 150억 원으로 세 배 늘어났다. 대림H&L은 이해욱 부사장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회사. 따라서 이번 유상증자가 주주배정 방식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이 부사장이 출자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사재를 털었을 만큼 이 부사장이 대림H&L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라고 해석했다.
2001년 3월에 설립된 대림H&L은 첫해 매출액이 204억 원가량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2015억 원으로 늘어났다. 불과 6년 만에 열 배 이상 증가한 것. 당기순이익 또한 같은 기간 동안 5억 4000만 원에서 123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처럼 가파른 성장세를 탄 것은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물량 지원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림H&L 전체 매출액 중 계열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45%에 달한다. 이 가운데 지주사 격인 대림산업과의 거래액이 27%로 가장 많다.
유상증자에 대해 대림그룹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확대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사실상 이 부사장의 개인 회사나 다름없는 대림H&L의 유상증자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번 유상증자로 대림H&L 사업규모는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따라서 기업 가치가 상승하게 될 것은 당연지사. 이렇게 되면 이 부사장은 상당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된다. 만약 대림H&L이 상장된다면 막대한 차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림H&L과 더불어 주목받아온 비상장 계열사로 대림I&S가 있다. 대림H&L과 더불어 대림 측이 애정을 쏟아 키워온 것으로 평가받는 대림I&S와 관련해선 최근 대림H&L과 대조되는 공시내역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대림산업은 대림I&S와 올 1분기 215억 원 물량의 거래를 할 것이라 공시했으나 막상 1분기가 지나고 난 뒤 올 5월 공시를 통해선 1분기 거래물량이 142억 원으로 변경됐다고 밝힌 것. 거래금액이 당초 계획보다 30% 이상 줄어든 것이다.
2006년 대림I&S가 기록한 1380억 원가량의 매출액 중 계열사를 통해 벌어들인 금액은 780억 원 정도다. 비중은 대략 57%였다. IT회사인 대림I&S는 그동안 그룹 내부의 전산업무를 도맡아왔다. 대림I&S 매출액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림산업과의 거래가 줄어들면 대림I&S의 이익 폭 또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림I&S의 상장이 임박했다”는 얘기도 불거졌다. 그동안 몇몇 대기업이 비상장계열사가 적자를 내거나 이익이 적게 나는 시점에 헐값으로 후계자에게 지분을 넘긴 후 다시 이익이 나면 상장을 해 막대한 차익을 벌어들였던 사례가 있었는데 대림그룹이 이를 답습하려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시각이 맞다면 이 부사장은 추가적인 지분 매집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경제개혁연대 신희진 연구원은 “정확한 물증은 없지만 일부 대기업이 이런 편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초기 자본금이 적게 들어 설립이 쉬운 IT회사에 집중돼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림그룹 측에서는 “대림I&S는 물론 대림H&L의 상장 계획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대림그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두 회사의 상장 관측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이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가 곧 가시화될 것이란 말이 그룹 안팎에서 들려오고 있기 때문. 일각에선 이준용 명예회장이 40세에 회장직을 맡은 것을 거론하며 올해 40세인 이 부사장이 조만간 공식적으로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 부사장이 이 명예회장의 뒤를 잇기 위해서는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대림코퍼레이션은 대림산업의 지분 21.67%를 보유하고 있어 최대주주에 올라 있는 회사. 현재 이 명예회장도 대림산업의 지분은 전혀 없지만 대림코퍼레이션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대림그룹 지배구조는 대림코퍼레이션→대림산업→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로 이뤄져 있다.
현재 대림코퍼레이션의 최대주주는 이 명예회장이다. 무려 89.8%에 이르는 지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지분만 이 부사장에게 물려주면 경영권 승계는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지분을 물려줄 때 내야 하는 막대한 증여세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대림H&L과 대림I&S가 상장된 후 그 지분을 팔면 어렵지 않게 증여세를 낼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한 이 돈으로 대림코퍼레이션이 아닌 주력 계열사 지분을 사들일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됐든 이 부사장 입장에서는 대림H&L과 대림I&S의 상장을 통한 차익실현이 절실한 것이다. 두 회사의 행보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대림그룹 관계자는 “아직 후계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르다. 추측에 불과한 얘기다”고 일축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