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들의 자금위기설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소문이다. 미분양 주택이 13만 가구를 넘어 이미 외환위기 시절을 능가하는 상황이다. 집을 지어놓고도 팔지 못한 탓에 묶여 있는 자금만 25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나마 13만 가구와 25조 원이라는 숫자는 정부에서, 그것도 3월을 기준으로 집계한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미분양은 25만 가구, 묶인 자금은 60조 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탓에 5월 건설경기실사지수(CBSI·Construction Business Survey Index, 10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전월 대비 체감경기 상승, 이하면 하락을 의미함)는 4월보다 2.1포인트 하락한 49.3을 기록해 1년 9개월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건설사들이 미분양에 골머리를 앓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분양 물량이 쌓여갈 수록 ‘미수 공사비 채권’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보통 아파트를 지어 분양할 때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 사업 자체의 경제성을 담보로 하는 대출)을 통해 상당부분의 비용을 외부에서 조달하지만, 공사비만큼은 분양을 통해 들어오는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충당한다.
그런데 미분양이 이처럼 쌓이다보니 돈이 돌지 않는 ‘동맥경화’ 현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건설사들은 고육책으로 ‘중도금 무이자’ 등을 내걸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그럴수록 금융비용과 광고비 등의 부담만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일부 중소형 건설사들의 경우 6~8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가 집중돼 있어 올 여름이 ‘건설사 연쇄부도설’이 현실화될지 여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기업들은 대체로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면 새 회사채를 발행해 확보한 자금으로 기존 회사채를 갚는 차환발행을 통해 사실상의 만기연장을 해나간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건설경기 침체로 새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차환발행이 이뤄진다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기존 채권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라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업계는 이 때문에 올 여름 ‘도미노 부도 현상’이 덮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5월까지 일반 건설업체 45곳, 전문 건설업체 99곳 등 모두 144곳의 건설업체가 부도를 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7% 늘어난 것이다. 특히 전문건설업체 부도가 74% 증가해 하도급업체 부도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란설’은 경제의 혈관과도 같은 물류업계에도 나돌고 있다. 경유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서서 리터당 2000원 대로 오르면서 ‘물류대란’ 우려가 퍼지고 있는 것. 특히 화물연대가 사실상 파업에 돌입하면서 물류업체들 사이에선 최악의 상황을 맞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대부분의 물류업체들은 운송비·하역비 등의 계약을 1년 단위로 맺기 때문에 기름값이 올라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한통운 한진 동부익스프레스 등 국내 주요 물류업체들은 “운송을 하면 할수록 적자가 쌓인다”며 아우성을 치는 중이다.
나라 밖에서는 ‘베트남발 아시아 경제위기설’과 ‘미국 신용위기 재발설’ 등이 시간이 갈수록 무게를 더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9일 베트남 경제가 자국 화폐인 ‘동화’ 가치 폭락에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92년 이후 최고 수준인 25.2%를 기록하는 등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1997년 태국발 아시아 금융위기가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과 경제 전문가들도 베트남발 경제위기가 가시화할 경우 고도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체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건 스탠리는 “베트남에서도 1997년 태국 바트화 폭락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 스탠리는 “베트남이 6개월 안에 IMF 구제금융을 받고 베트남 동화를 대폭 평가절하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아셈뱅커스 리서치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베트남에서 외국 자본이 대거 이탈하는 것”이라며 “경상수지 위기가 초래되고 결국 베트남이 IMF 구제금융에 손을 내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계에 따르면 베트남에 10억 달러 규모의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포스코는 물론 삼성전자 등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현지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고 본사 차원에서 조사단을 보내 직접 현황을 파악 중이다. 재계가 긴장하는 이유는 베트남이 구제금융 신청 등 사실상의 국가부도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대규모 투자를 한 우리 대기업들이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우리경제에 타격을 입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미국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의 유동성 위기 재현 조짐 등이 전해지면서 가라앉는 듯했던 신용경색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리먼 브러더스가 2분기에 5억~7억 달러의 헤지펀드 투자 손실을 입고 1994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분기 손실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은행들로부터 40억 달러의 추가자금 수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다. ‘제2의 베어스턴스(미국 월가의 5대 투자은행이었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파산함)’가 될 것이라던 예상이 결국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 오고 있는 것이다. 리먼 브러더스는 얼마 전 2분기 실적 발표 날짜 공개를 거부해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10년 전 외환위기의 악몽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외환시장의 상황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3분기 금융대란설’이 퍼지고 있어 위기감을 더하는 중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외국인이 우리나라 채권에 투자한 금액 중 약 100억 달러(약 10조 원)가 3분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9월에 총 90억 달러의 만기가 몰려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2500억 달러가 넘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에 비하면 이 정도 금액으로 외환 위기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문제는 달러화 폭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외환시장 전망에 관해 “만약 외국인들이 9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다시 한국에 투자하지 않고 달러로 바꿔 해외로 빼내갈 경우 달러화 상승에 불이 붙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