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지도와 미래에셋의 중국 투자 홍보물을 합성한 사진. | ||
펀드평가사 제로인은 지난 6월 29일 국내 47개 자산운용사들이 운용 중인 공모형 주식형 펀드의 상반기 순자산총액 변동과 순현금 흐름의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 결과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올 상반기 주식형 펀드에서 18조 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그중에서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손실이 가장 컸다. 미래에셋은 해외 주식형 펀드에서 4조 3258억 원,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2조 8517억 원 등 모두 7조 1775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됐다. 손실액 2위를 차지한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이 2조 3870억 원의 추정 손실을 입은 것에 비하면 세 배나 많은 수치다.
해외 증시에서 4조 원이 넘는 손실을 본 것은 박 회장이 자신했던 중국 증시와 연관되어 있다. 미래에셋 펀드들은 박 회장이 주창해온 중국 집중 전략에 발맞춰 중국 관련 주식을 많이 샀다. 국내 투자도 중국 경제의 실적과 연동되는 조선·기계·철강에 집중됐다. 지난해 높았던 미래에셋 펀드 수익률은 중국 경제가 호황을 맞고 주식시장이 급등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박 회장의 이런 중국 투자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회장은 국내에서는 펀드 등 자산관리 문화가 이제 어느 정도 형성돼 시장 자체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만큼 해외 진출이 필수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 박 회장은 해외 진출을 통해 미래에셋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운용그룹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미래에셋 펀드를 판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특히 가능성과 기회는 아시아에 제일 많고 그중 산업화에 집중하고 있는 중국이 가장 큰 시장이라고 보고 뛰어든 것이다.
박 회장은 이런 ‘그랜드 플랜’ 아래 지난해 10월 ‘인사이트펀드’를 내놓았다. 인사이트펀드는 중국처럼 외국 기업의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상품. 박 회장의 혜안을 믿은 개인투자자들이 이 인사이트펀드에 몰리면서 수조 원이 들어왔다. 그런데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이라는 글로벌 악재가 중국을 덮쳤다. 펀더멘털이 약한 중국 주식시장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중국 증시가 가라앉자 국내 다른 자산운용사들은 중국 비중을 줄이기 시작했지만 미래에셋은 오히려 중국 비중을 늘려갔다. 인사이트펀드의 국가별 투자 비중에서 중국 비중은 60%를 넘어섰다. 반면 고유가와 에너지난으로 인해 최근 높은 수익을 보이던 러시아와 브라질에 대한 비중은 10% 안팎으로 줄였다. 당시 불안감이 돌았지만 박 회장을 믿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박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중국방문 당시 조찬간담회에서 “우리가 중국 시장에서 성공하면 세계 시장을 잡는 것이다. 우리 회사가 (중국의) 운용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데 너무 절묘한 타이밍이어서 기대가 된다. 한국 기업이 투자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고 효과도 좋을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무한 신뢰를 드러냈다. 하지만 중국 증시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고 지금은 지수가 아예 반토막이 났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서 미래에셋의 독보적인 입장마저 흔들리고 있다. 한때 증권업계의 블랙홀로 불리며 인력을 끌어가던 미래에셋증권에서 인력 유출이 시작된 것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가장 인력이 많았던 3월 2369명이던 직원 숫자가 최근 두 달 사이 2320명으로 50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미래에셋증권이 지난해 집중했던 해외펀드의 수익률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직원들이 펀드투자자들의 불만과 민원, 임금체계에 따른 부담으로 타 증권사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은 타 증권사에 비해 기본급이 낮은 대신 성과급 비중이 높다. 이 때문에 펀드 수익률이 하락해 투자자가 이탈할 경우 직원들의 임금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래에셋증권의 주가도 떨어졌다. 올해 초 16만 3000원이었던 미래에셋증권의 주가는 6월 말 10만 7000원으로 내려앉았다. 시가총액 순위도 바뀌었다. 주가 하락으로 인해 전체 순위는 49위로 11계단이나 떨어졌고 증권사 1위 자리도 삼성증권에 내주고 2위로 하락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서 박 회장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박 회장과 워런 버핏 회장을 비교하는 말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워런 버핏 회장이 주식시장 침체기에 저평가주를 사서 보유하는 장기투자 방법을 쓴 데 반해 박 회장은 중국 시장 최고 활황기 때 뛰어든 뒤 주가가 끝없이 하락하고 있는데도 계속 투자하는 ‘이상한 장기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회장이 중국 집중 투자 전략을 바꾸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박 회장은 중국의 성장잠재력이 큰 만큼 장기투자하면 언젠가는 큰 수익이 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외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박 회장은 최근 강의와 중국 방문 등을 통해 이런 중국시장의 성장잠재력을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 국내 애널리스트들을 홍콩 지점으로 파견하고 현지에서도 인력을 충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아직은’ 박 회장에 대한 믿음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 증시 침체 상황에서도 자산운용시장 자금은 미래에셋에 집중됐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형 펀드에는 3월 9369억 원, 4월 2081억 원, 5월 1조 1451억 원의 금액이 각각 유입됐다.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자금 운용 규모는 59조 449억 원이다. 2위인 삼성투신운용이 26조 4530억 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액수다.
증권가에서도 수년 뒤를 바라볼 경우 중국을 강조하고 해외에 진출하려는 박 회장의 전략을 옳은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중국 경제가 성장 가능성이 큰 만큼 중국 증시가 제 궤도를 찾을 경우 중국 비중이 높은 펀드가 언젠가는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이라는 글로벌 악재가 그렇게 쉽게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증시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 증시가 부진의 터널을 쉽게 빠져나오기는 힘들다는 비관론도 크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중국 같은 신흥시장의 경우 주가가 30% 정도 빠지면 자기 힘으로 올라올 수 있지만 지금처럼 50% 이상 하락하면 쉽사리 회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중국 시장에 ‘몰빵’ 해놓은 상태에서 박 회장이나 미래에셋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며 “솔직히 올림픽 이후 중국 증시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결국 투자자들의 믿음이 바닥을 보이기 전에 중국 시장의 상승 반전이 올 수 있느냐에 박 회장의 운명이 달려있는 셈이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