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 사금융 시장에서 일부 업자가 부도덕한 코스닥 상장사와 짜고 유상증자에 참여, 주가를 뻥튀기한 후 개인투자자에게 되판 사례도 있었다. | ||
명동이 대한민국 일번지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서울시내의 중심이 되면서부터다. 이때는 증권거래소와 각 은행은 물론이고 금융기관들의 본점이 명동에 밀집돼 있었다. 이러다 보니 금융과 관련된 업종들이 명동주변으로 몰려들었고 금융 일번지는 쇼핑과 먹을거리의 일번지도 되고 나아가서 대한민국 일번지가 된 것이다.
1980년대 초 명동 거리에서 오후 4시만 되면 ‘교환가방’이라고 해서 어음이나 수표를 교환소로 시간에 늦지 않게 가져가기 위해서 달리는 젊은 은행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명동 주변, 크게 말해서는 을지로입구 무교동 회현동 북창동 충무로 명동 을지로3가까지의 커다란 테두리가 형성된 곳을 ‘명동금융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도 이 범위 내에는 대한민국 금융의 상징인 한국은행과 시중은행의 본점이나 증권사 등 금융 관련 기관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 안에는 공금융권 기관뿐만이 아니라 사금융업자들도 많이 자리하고 있다. 한창 많을 때는 1000개가 넘는 사금융 사무실이 이곳에서 성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도 많이 쇠퇴해 지금은 200~300개 업체들이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아직 명동은 증권거래소와 증권사 본사가 많이 몰려 지금은 한국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여의도와 비교해도 금융 일번지로서 전혀 손색이 없이 움직이고 있다.
업체들이 몰려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개인 고객들도 모여들고 이들을 상대로 하는 업자들도 명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됐다. 사람과 돈이 모여 있으니 자연스럽게 관련된 각종 소문이나 정보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여의도발 정보도 어찌 보면 명동시장의 정보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명동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직접자금이나 전주들의 자금이 움직이는 ‘직접시장’이다 보니 각종 정보나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의도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보면 된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허위정보는 본인들의 자금과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유통되지 않는다. 주가를 움직이려고 하는 여의도와는 그 근본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각 업체 간에는 유기적으로 정보의 교환도 이루어지며 생각보다 협력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은 동업자로서의 공생의식이 투철하다보니 ‘같이 살자’고 하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같은 시장에서 혼자만 살겠다는 생각은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공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업종도 잘 나뉘어져 분업화돼있어서 본인이 취급하지 않는 분야는 상대방에게 소개를 해주는 등 다른 영역은 잘 침범하지 않는다. 한데 명동이 대표적인 금융시장이다 보니 금융과 관련된 사건만 생기면 대부분 명동을 떠올리게 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명동이 떠오르는 건 당연지사인지 모른다.
몇 년 전부터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명동이 금융시장의 중심이라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수사기관에서 사상 최대 주금(주식대금) 가장납입 사건이라고 부르는 A 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과거부터 하던 방법대로 해왔지만 어느날 갑자기 불법적 거래로 낙인찍혀 버린 것이다. A 씨는 이름만 대도 금방 알 만한 B 씨의 코스닥 회사 가장납입에 수백억 원대의 자금을 빌려줘 소액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다. 결국 A 씨는 모두 1조 3000억 원을 가장납입해 1만여 개의 기업을 부실화시켰다는 죄목으로 처벌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여러 명의 부도덕한 기업인이 처벌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은행원들도 적발돼 처벌, 징계를 받았으며 은행들의 주금납입 대행업무와 잔액증명서 발급 절차 자체가 바뀌는 등 큰 홍역을 치렀다. 지금은 소액의 주금 가장납입을 부탁해도 할 수가 없다. 처벌이 두려워서도 그렇겠지만 금융시장이 점점 투명화돼 가고 있다는 현상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최근 들어 명동 사금융 시장에 주식담보대출이 유행하고 있다. C 씨의 경우는 법의 허점을 피해가고 있지만 법을 확대 해석해서라도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는 경우다. 부도덕한 코스닥 상장사와 짜고 유상증자에 참여, 주가조작을 통해서 주가를 몇 배로 불린 후에 개미투자자들이 들어오면서 자신들의 주식을 비싸게 매각한 경우다. 이런 사례들은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철저하게 조사해서 처벌을 해야만 이런 사례가 줄어 들 텐데 아직도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반면에 불가피하게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D 씨는 우리나라 최초라고 불리는 특별한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이 레스토랑은 투자비만 약 12억 원 정도 예상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자금이 들어갔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자금과 대출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해결하였으나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것을 선배인 시설업자가 총 시설비 3억 원 중에서 1억 원만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출자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합법적으로 처리하려고 하니 너무 복잡했다. 이들은 고민 끝에 결국 증자시 잠시 2억 원을 차용하는 방법으로 처리하고 말았으며 결국 법을 어긴 셈이 됐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현물출자 등의 기준이 명확하고 활성화되어 있다면 D 씨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선자금 수사로 인하여 명동시장이 한동안 얼어붙기도 했다. 소문만으로는 수십 명의 업자가 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이로 인해서 채권유통시장이 일시에 얼어붙으며 초토화된 적도 있다. 이 수사를 기점으로 일부 업자가 시장을 떠나기도 했다.
명동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불법을 저지르려는 사람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행위는 누가 봐도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점도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어려운 기업에게 자금을 지원해 기업의 생존을 돕기도 하며 단기자금이 꼭 필요한 기업에게 초단기 자금을 지원해서 기업이 위기를 넘기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공공금융기관이 할 수 없는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량기업의 어음을 할인하기 어려워서 명동시장을 찾는 중소기업 사장을 만나는 일은 명동에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래서 명동시장의 존재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한치호 ㈜중앙인터빌 상무 one1019@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