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 선까지 간다’는 증권사들의 각종 보고서를 믿고 주식 등을 증권사에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요즘 떨어진 주가에 한숨만 나오는 실정이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으로 주식, 채권, 펀드 등을 담보로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리는 예탁증권담보대출액은 5조 1947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무려 1729억 원 증가했다.
대부분 이들은 코스피지수가 1750P 선을 유지하던 4월 중순 대출을 받았지만 6월 이후 주가 폭락으로 원금 보전은커녕 이자 갚기도 버거운 상태다.
신용융자를 얻어 주식을 사들였다가 주가 하락으로 증권사가 반대매매에 나서면서 원금 손실을 보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증권사의 예탁증권담보대출 금리와 신용융자 이자를 지난해 하반기 6.5∼9.0%에서 최근 7.5∼9.5%까지 올려 부담이 더 커졌다.
주가 하락으로 펀드도 언제 플러스 수익률로 돌아설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국내 주식형 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18.76%로 바닥을 찾기 힘들다. 해외 주식형 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20.01%를 기록 중이다. 증권사들이 지난해 판매에 열중했던 중국 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 -26.46%에 머물고 있고, 베트남 펀드도 -38.49%이다. 여기에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블루칩이라고 소개하던 브라질과 러시아 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각각 4.00%와 -12.79% 수준에 불과하다.
개인들은 이처럼 ‘박살’이 나고 있지만 증권사들의 성적은 최근 장을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다. 우리투자증권의 경우 1분기(4∼6월, 증권사의 경우 회계연도가 4월부터 시작) 766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지난 분기에 비해 100억 원 가까이 줄었지만 최근 장에선 선방한 셈. 삼성증권은 1분기 매출 5604억 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939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4.7% 감소했고, 당기순이익도 765억 원으로 20.6% 줄었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기대치를 충족시켰다.
증권사 임원들이나 애널리스트들은 신설 증권사들의 인력 확보 전쟁에 미소 짓고 있다. 과거 애널리스트들의 연봉은 베스트의 경우 평균 2억∼3억 원 선이었지만 신설 증권사들의 스카우트 경쟁으로 1억 원 정도 올랐다는 것이 정설이다. 신참 애널리스트들도 입사 후 5년이 지나면 억대 연봉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한때 증권업계에서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6년차 애널리스트가 연봉으로 2억 원을 요구했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시장은 좋지 않은데 애널리스트들의 몸값만 오르는 일이 왜 일어날까. 인력 부족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한국증권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46개 증권사에서 종목 및 산업 조사 분석을 담당하고 있는 애널리스트는 총 1169명에 불과하다. 한 증권사에 평균 25명 정도다. 상장기업 수가 1767개임을 고려하면 애널리스트 1명당 70개 이상의 기업을 담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증권사 46개 중 애널리스트가 10명도 안 되는 증권사가 8개에 달할 정도다. 신규 증권사들의 설립과 몸집 불리기에 애널리스트들의 자리바꿈이 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증권사 임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신설 증권사 등으로 연쇄 이동하고 있다. 원래 증권사의 자리 이동은 증권사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4월 이전에 끝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올해는 신규 증권사 설립이 이어진 데다 기업들이 인수 합병을 통해 증권업에 진출하면서 자리 옮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병호 전 동양종금증권 부사장은 KTB투자증권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표이사는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대표와 IB총괄대표를 지냈으며 동양종금증권 글로벌 IB담당 부사장을 지낸 IB전문가다. 정종열 전 동부증권 사장은 솔로몬저축은행이 설립한 솔로몬투자증권 사장을 맡았고 역시 동부증권 부사장 출신인 류근성 전 부사장은 와우증권중개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기영 도이치증권 한국 부회장은 최근 기업은행이 신설한 IBK투자증권 사장을 맡았고, 교보증권 IB투자본부장을 지낸 임홍재 본부장은 IBK투자증권 부사장에 임명됐다. 국내파 ‘IB대부’로 불리던 정유신 신한증권 부사장은 SC제일투자증권 사장에 선임됐으며 손복조 전 대우증권 사장은 토러스투자증권 사장을 맡았다.
현대차증권에서 이름을 바꾼 HMC투자증권으로 옮긴 이들도 많다. 이옥성 전 한화증권 전무가 HMC투자증권 IB부문 부사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도기권 전 굿모닝신한증권 사장, 이수길 현대증권 이사, 김혁 굿모닝신한증권 부장 등이 HMC투자증권 임원급으로 자리를 옮겼다.
리서치센터장들의 자리바꿈도 잦았다. 증권가의 대표적인 ‘신중론자’ 이종우 전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을 맡았다. 우리투자증권에서 자동차담당 연구위원을 맡아왔던 안수웅 연구위원도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교보증권에서 자동차를 맡았던 임채구 연구위원은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원과 리서치센터장의 이동에 따라 애널리스트들의 연쇄이동도 벌어졌다. 대우증권 시황담당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꼽히던 이경수 연구원이 대우증권 출신인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사장을 따라서 토러스증권으로 둥지를 옮겨 투자분석팀장을 맡았다. 우리투자증권에서 투자전략을 맡아온 오태동 연구원도 토러스증권 투자전략팀장에 선임됐다.
애널리스트의 자리 이동은 신설사의 몸집 불리기가 시작되면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내년부터 자본시장 통합법이 시행되면 증권업계 인력다툼은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대부분 증권사들이 ‘인력 키우기’라는 플러스 경쟁보다 ‘인력 빼가기’라는 마이너스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 신설사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형 증권사의 경우 애널리스트 수가 100명을 바라보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애널리스트가 20여 명에 불과하지만 대형회사 규모에 맞게 숫자를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밝혀 인력 전쟁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증권업협회가 최근 서울지역 자산운용사, 증권사, 보험사 등의 주식운용 담당자 1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증권투자자 실태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애널리스트가 추천한 종목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증권사 담당자의 비율이 28.6%로, 보험사(19.0%)나 자산운용사 담당자의 비율(16.3%)보다 높았다. 증권사 주식운용 담당자들마저 몸값이 억대인 자사 애널리스트들이 만든 투자 보고서를 상당수 믿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