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경매시장에 강남권 요지의 아파트들이 대거 등장해 시선을 모으고 있다. | ||
그렇다면 향후 강남권 아파트 값은 어떻게 될까. 이를 위해서 법원 경매시장을 엿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법원 경매시장은 부동산 시장의 선행시장이면서 동시에 후행시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통 빚을 갚지 못해 경매가 신청되면 ‘감정평가’를 거쳐 첫 경매에 붙여지기 전까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이 걸린다. 감정평가 금액은 시세의 90∼110% 수준으로, 은행 담보나 보상을 위한 감정평가보다는 ‘빚잔치’라는 경매의 특수성을 감안해 시세보다 후하게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3∼6개월 전 시세와 맞먹을 정도로 후하게 감정 평가한 가격을 기준으로 경매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별다른 움직임이 없을 때 서울의 경우 아파트는 감정평가액의 90∼95% 정도 수준에서 낙찰된다. 예로 감정가 3억 원의 아파트가 95%에 낙찰되면 2억 8500만 원이다. 경매에 들어간 집에 사는 집주인 또는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위로금조로 ‘이사 비용’을 주고 경매 참가 과정에서 들어가는 부수적 비용을 500만 원 정도로 보면 1000만 원, 즉 도배하고 인테리어 비용 정도가 남는 셈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요동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하는 시점에서는 과거 감정평가를 한 금액이 현 시세보다 높다. 반대로 가격이 급등하는 시기는 감정평가가 현 시세보다 낮아져 치열한 입찰 경쟁이 발생한다. 현재 경매 시장은 전자에 가깝다. 과거 감정평가 금액이 현재 시세보다 오히려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입찰 참가자들이 바라만 볼 뿐 선뜻 입찰에 나서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7일 강남권 부동산 경매 물건을 전담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10계는 최근 강남권 부동산 시장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당시 경매를 참관한 경매 전문가들은 보기 드문 ‘골든트라이앵글’이 연출됐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남권 아파트 시장을 선도하는 삼성동과 도곡동, 압구정동에 위치한 유명 아파트가 동시에 이날 경매에 등장한 것. 삼성동에서는 아이파크, 도곡동에서는 타워팰리스, 압구정동은 현대아파트가 각각 경매에 나왔다.
지난 2004년 입주가 완료된 삼성동 아이파크가 경매 시장에 나온 것은 이날이 사상 처음으로 감정평가 금액은 무려 35억 원. 16층에 위치한 전용면적 156㎡(47평) 규모로 시세는 35억∼38억 원에 달한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날 경매는 ‘변경’돼 입찰이 이뤄지지는 못했다. 변경은 말 그대로 채권자 또는 채무자가 ‘사정변경’ 상황이 발생, 법원에 경매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한 것.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의 채권 청구금액이 4억 4600만 원에 불과하고 이를 포함한 총 채권금액이 18억 3000만 원이라 신청이 취하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비록 삼성동 아이파크가 이번엔 입찰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10월에 나올 예정인 두 번째 아이파크 경매 물건은 걸려 있는 채무가 많아 입찰이 진행, 경매로 집주인이 바뀌는 첫 물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삼성동 아이파크와 함께 경매가 진행된 타워팰리스는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아 유찰됐다. 전용면적 164㎡로 감정가 28억 원인 이 아파트는 지난달 유찰돼 20% 하락한 22억 4000만 원에 경매에 나왔지만 이날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아 다시 20% 하락한 17억 9200만 원에 다음 달 경매가 진행되는 ‘굴욕’을 맛봤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경매는 두 건이 동시에 진행됐는데 전용면적 84㎡의 최초 감정가 14억 5000만 원짜리는 한 번 유찰돼 11억 6000만 원에 단독 입찰해 12억 5620만 원(낙찰가 86.6%)에 주인을 찾았다. 전용면적 160㎡의 감정가 24억 원짜리도 한 번 유찰돼 19억 2000만 원으로 경매가 진행됐고 이 역시 단독 입찰돼 20억 9900만 원에 낙찰됐다.
이날 경매에 참관한 ‘법무법인 산하’ 강은현 실장은 “강남권 요지에 있는 아파트가 한꺼번에 경매에 나온 것은 정말 보기 드문 현상으로, 경매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며 “특히 타워팰리스가 입찰자를 찾지 못해 최초 감정가 대비 64%에 다시 경매에 붙여지는 것은 강남권 부동산 시장이 예상보다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강남권 아파트는 한 번 유찰돼 감정가의 80%선에 다시 입찰된다는 것은 기본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처럼 두 번 유찰돼 64% 수준에 다시 입찰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때문에 최초 감정가 대비 낙찰가가 90%가 넘는 것은 옛날 얘기가 됐고 입찰자가 몰려도 85% 내외 수준이다. 같은 날 경매2계에서 진행된 대치동 삼성아파트는 전용면적 97㎡로 최초 감정가는 13억 원. 무려 두 번 유찰돼 8억 3200만 원에 경매가 진행됐다. 여기엔 17명의 입찰자가 참석, 11억 1170만 원에 낙찰됐다. 낙찰가는 85.5% 수준이다.
이처럼 강남권 아파트에 대한 입찰자가 급감하고 낙찰가도 낮아지는 것은 경매가 낙찰 후 입주까지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리는 ‘후행시장’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매매 후 입주까지 길어도 1∼2개월 걸리는 일반 매매와 달리 경매는 낙찰 후 잔금 지급, 집주인 또는 세입자와의 명도 협상 등이 기다리고 있다. 이에 아파트 값이 하락하는 상황이라면 경매로 감정가보다 낮게 낙찰 받았다고 하더라도 입주 당시 시세가 낙찰가보다 낮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강은현 실장은 “강남권 인기 아파트 경매 물건이 이처럼 입찰자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연초부터로, 강남권 부동산에 대한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꺾인 지난 5월 이후 본격적으로 낙찰자를 찾기 힘들게 됐다”면서 “특히 10억 원대 이상의 고액 경매물건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어 강남권 아파트 시장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강 실장은 특히 “현재 강남권 아파트 경매 물건의 경우 세입자가 많이 살고 있어 1가구 2주택 물건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고 있는 경매 물건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면 강남권 아파트 시장이 하락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것으로 판단해 이에 맞는 대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명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