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조별리그 한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상대 골문을 향해 뛰어 들어가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축구 국가대표팀 ‘최강희호’가 놓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솔직히 결과만 놓고 보면 나쁠 건 전혀 없었다. 가장 희망했던 승점 3을 따면서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청신호를 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표팀 수장 최강희 감독에 대한 비난이 만만치 않다. 시한부 감독의 한계라느니, 레임덕이라느니, 대표팀 색깔이 없다느니 연일 강도 높은 지적이 들끓고 있다.
한국 축구는 3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5차전 홈경기에서 2-1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대기심의 추가시간 5분을 넘기고 6분 정도에 터진 손흥민의 승리포 덕분에 무승부의 암담함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청용(볼턴 원더러스)은 “한국에게는 월드컵이 각별하다. 이길 만한 팀이 이겼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한국은 3승1무1패(승점 10)를 따내며 조 2위를 지켰다. 우즈베키스탄이 3승2무1패(승점 11)로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한국은 한 경기를 덜 치렀고, 6월 3연전(레바논<원정>-우즈벡<홈)-이란<홈>)이 남아있어 충분히 역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지적이 축구계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평소보다 길었던 준비기간(일주일여)에 비해 무엇보다 내용이 부실했고, 경기력이 기대 이하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모든 축구 감독들이 그토록 듣기 싫어하는 ‘뻥 축구’란 혹평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애초부터 최강희 감독은 그런 길을 택했다. 굳이 “우린 ‘뻥 축구’를 한 적 없다”는 변명도 구구절절 늘어놓지도 않았다. 이런 전략을 택한 내막이 있었다.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그라운드에 벌렁 누워버리는 카타르를 초반부터 아예 숨 돌릴 틈 없이 몰아치겠다는 의도였다. 제공권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이는 신장 196cm 스트라이커 김신욱(울산 현대)를 배치하면 카타르가 쉽게 역습에 나오기 어렵고, 세트피스 상황 때 공격 가담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뒀다.
사실 절반 이상은 성공작이었다. 큰 키의 김신욱이 계속 문전을 헤집고, 이청용-이근호(상주 상무)-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등 좌우 윙 포워드가 쉼 없이 몰아치자 카타르 수비진은 아예 전진할 생각을 못했고, 측면에서도 완전히 공간을 장악당하자 최소 6명 이상이 하프라인 아래에만 몰려 있었다. 오버래핑과 역습 빈도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근호가 뽑아낸 선취골도 측면과 문전 한복판에서 이뤄진 공간 장악에서 비롯됐다.
“김신욱을 겨냥해 그저 생각 없이 볼을 띄워줬다”는 많은 전문가 집단의 견해와는 달리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김신욱의 역할이 대단했다. 일등공신이 손흥민이고 그 다음 공신이 이근호라면 김신욱은 숨은 영웅이다. 최 감독님의 결단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떠한 감독도 대책 없이, 무조건 볼을 띄우라고는 지시하지 않는다. 다 수가 있고, 계산이 섰을 때에나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다고 결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한 골차든, 두 골차든 어찌됐든 값진 승리의 열매를 땄다. 카타르전 이전까지 월드컵 최종예선이나 평가전을 포함해 최근 A매치 4경기에서 세트피스로만 5실점을 당하면서 불안감을 드리웠던 수비라인도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비록 딱 한 번의 방심이 곧장 실점으로 연결됐지만 그 외의 모습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더욱이 대표팀은 지금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대표팀 캡틴 곽태휘(알 샤밥)는 “4강 신화를 이뤘던 2002년 히딩크 감독님 시절에도 이런 혹평이 있었다.
2006년과 2010년도 마찬가지다. 그냥 믿고 기다려주면 된다. 대표팀은 항상 위기 속에서 발전했고, 발전하는 듯하면서도 주춤하던 시절이 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른 사이클이 있다”고 했다. 대표팀의 분위기 또한 밝아진 게 사실이다. 태극전사들이 예전에 비해 크게 젊어지다 보니 개인주의에 물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만큼 웃음이 많아졌고, 화기애애해졌다. 끈끈함 역시 상당하다.
대안도, 대책도 없는 질타가 끊이질 않아도 대표팀은 분명 많은 소득을 얻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