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 청와대 춘추관 지붕 밑으로 한창 신축 중인 건물이 보인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청와대 인근 삼청동이 사실상 ‘공사판’이 된 것은 넘쳐나는 유동인구 때문이다. 평일 오후는 물론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차량 정체와 주차난은 당연지사. 이들을 노린 고급 음식점과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신축 바람이 분 것이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삼청동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부터다. 인사동의 높은 임대료에 삼청동으로 갤러리들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청와대 덕분(?)에 오랫동안 개발이 제한된 삼청동의 ‘아날로그식’ 거리 풍경이 갤러리와 잘 어울리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삼청동은 ‘디카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봐야 하는 ‘순례’ 장소가 됐다.
삼청동에 사람들이 넘쳐나고 이를 노린 음식점과 카페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땅값도 뛰기 시작했다. 2003년 이후 삼청동 땅값 상승은 강남 땅이 ‘형님’ 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1990년대까지 엄격히 개발이 제한돼 거래가 사실상 어려웠지만 그나마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시세가 생성되면서 땅값이 형성되기 시작해 1994년 총리공관 인근 대로변 요지의 땅값은 3.3㎡(1평)당 300만∼500만 원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창업 바람이 불면서 평당 800만∼900만 원으로 뛰기 시작해 평당 1000만 원 돌파를 목전에 뒀다. 본격적으로 유동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2003년에는 대로변 땅값이 평당 2000만 원을 넘어섰다.
삼청동 땅값 상승의 하이라이트는 지난해. 그해 여름 평당 3000만 원 후반대이던 시세가 가을에 접어든 9월 4000만 원으로 뛰더니 그해 11월 평당 5000만 원까지 뛰었다. 현재 호가는 평당 최고 6000만 원에 달한다.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 땅값도 평당 4000만 원선이다. 15년 만에 30배 넘게 급등한 것이다.
이처럼 하늘 모르고 급등하던 땅값에 최근엔 거래가 끊긴 상태에서 호가만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일부에선 거래 중단 사태가 거품이 꺼지는 과정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권 땅보다 삼청동 땅이 비싼 게 말이 되지 않는다. 현 시세로 땅을 매입해 신축을 하더라도 투자대비 수익률이 많아야 2∼3% 정도”라며 “특히 올해 건축제한이 되는 한옥마을의 범위가 북촌에서 주변 삼청동과 팔판동까지 확대돼 건축허가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 ‘디카족’이라면 한번쯤은 가본 삼청동 거리. | ||
만약 그래도 고집스럽게 삼청동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면 잔뜩 거품이 낀 신축 건물 또는 리모델링 건물을 매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장사도 예전 같지 않다고 현지 주민들은 전한다. 몇 달이 안돼 간판이 바뀌는 곳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것.
현지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한 원주민은 “평일에는 청와대 주변 고위 공무원들을 상대로 하는 밥집 정도만 잘 될 뿐 삼청동 하면 떠오르는 카페들은 주말 장사밖에 안돼 권리금을 받고 빠져나가려고 하는 곳이 상당수”라며 “유동인구는 넘치지만 그에 걸맞은 매출이 나오지 않아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지난 2003년 삼청동 바람을 몰고 온 초창기 멤버들은 신사동 가로수길 등으로 이미 옮겨간 상태로 최근에는 디카족과 대학생들이 몰리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퇴색됐다는 평가가 뒤를 잇는다. 때문에 1만 원 이하의 밥집과 칼국수집들만 그나마 장사가 될 뿐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광화문∼숭례문 구간이 국가 상징거리로 조성되고 경복궁 옆 기무사와 서울병원에 복합문화관광시설이 들어서면서 삼청동이 좀 더 발전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땅값이 평당 6000만 원을 넘는 것은 과한 것으로 2∼3년 정도 지나면 거품이 꺼지면서 합리적 시세가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땅값은 올랐지만 삼청동 주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땅을 팔기 위해 측량을 하면서 곳곳에 측량과 관련한 다툼이 벌어지기 일쑤다. 또 정든 집터를 팔고 이주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상주인구는 오히려 급감했고 한밤이 되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소매점이나 세탁소 등은 오히려 장사가 더 안 된다고 하소연 한다.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크고 작은 불편도 생기고 있다. 무엇보다 행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밀며 사진을 찍는 탓에 주민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다. 또 여기 저기 쓰레기를 버리고 가 주말이 끝나면 쓰레기 청소로 몸살을 앓는다. 특히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속에 좀도둑이 섞여 도난 사건 사고가 크게 늘었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전언이다. 청와대 인근이라 삼엄한 경비로 치안이 잘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인 셈이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