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가 상수도 유수율(생산한 수돗물 중 요금이 걷힌 비율)을 높이기 위해 1350억 원대 규모의 공사 입찰을 실시한 것은 지난해 9월. 여기엔 현대건설컨소시엄과 포스코건설컨소시엄이 참여했다. 전주시는 지역 전문가들과 토론회 등을 연 끝에 현대건설을 낙점했다. 당시 현대건설의 평가 점수는 91.49점이었고 포스코건설은 90.29점이었다.
하지만 포스코건설이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현대건설이 제출한 입찰 서류에 현대건설임을 알게 하는 회사명과 직인이 있는데 이것은 감점 요인”이라고 주장했던 것. 이에 맞서 현대건설 역시 “포스코건설 입찰 서류도 문제가 있다”고 맞받아쳤다. 논란이 뜨거워지자 전주시는 변호사에 자문을 구했고 결국 포스코건설의 입장을 받아들여 현대건설에 감점 2점을 부과했다. 이로써 사업권은 포스코건설에 돌아가게 됐다.
끝난 줄로만 알았던 입찰이 뒤집히자 현대건설도 발칵 뒤집혔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에게는 제대로 소명기회도 주지 않고 단지 변호사 말만 듣고 1000억 원이 넘는 사업의 입찰자를 바꾸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그는 “포스코건설의 입찰 서류에도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포스코건설임을 알게 해주는 표시들이 있는데 왜 우리만 감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현대건설은 전주지방법원에 ‘적격자결정무효확인소송’을 냈다. 결과는 기각. 당시 재판부는 “시의 감점 판단은 정당했고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없다”고 밝혔다. 법원의 판결로 입찰전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전북도청이 전주시 결정을 문제 삼으면서 입찰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전북도청은 입찰과정에 대한 감사를 실시해 “최초 심의 의결을 부당하게 번복한 것은 중대한 하자가 있는 행정행위”라며 전주시 핵심간부들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에 질세라 전주시도 “도청의 그와 같은 지시는 자치권한을 무시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했다.
당시 전북도청의 ‘입찰 개입’을 두고 전주 지역에서는 많은 얘기들이 오르내렸다는 전언이다. 그중 가장 많이 나왔던 얘기는 ‘건설사의 자치단체 로비설’이었다. 이에 대해 전북도청 관계자는 “우리는 상수도 사업에 대해 잘 모른다. 다만 전주시의 부당한 행위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법원에서도 변화의 기류가 보였다. 현대건설이 전북도청의 감사처분을 근거로 5월에 낸 ‘입찰중지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것. 그리고 지난 7월 25일 법원은 당초 입장을 바꿔 “절차상에 중대한 하자가 있기 때문에 입찰은 무효”라고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전주시가 현대건설에 감점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 없지만 충분한 소명기회와 재심의를 거치지 않고 변호사의 말만 들었던 것은 절차의 중요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결국 공은 다시 전주시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이 난 지 한 달이 넘도록 특별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전주시 관계자는 “우리가 단독으로 재입찰 문제를 결정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건설사들의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사업권을 허가해주는 쪽에서 왜 눈치를 보는 것이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주시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법원이 지적했던 문제점들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갈등을 빚었던 전북도청과도 화해에 나섰다. 지난 8월 19일 송하진 전주시장은 김완주 전북도지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현재 전주시는 전북도의 징계 요구를 받아들여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의뢰한 상태다. 또한 많은 관심을 모았던 권한쟁의심판도 취하했다. 이에 대해 전주지역 시민단체인 전주시민회 이문옥 상임운영위원은 “애초에 전주시가 잘못 판단해 생긴 일이다. 결국 법정 비용 등으로 들어간 혈세만 낭비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포스코건설과 현대건설은 공식적으로는 전주시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에 해설을 달리 하고 있어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건설은 “절차상의 하자만 수정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전주시 결정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현대건설은 “무슨 소리냐. 법원의 판결은 재입찰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평가하면 포스코건설도 똑같이 감점을 받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처럼 전주시와 건설사들이 재입찰을 놓고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이 전주시민들의 불만은 점점 커지고 있다. 상수도 유수율 제고사업은 총 2000억 원이 들어가는데 처음엔 사업전체를 민간 위탁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서 “민간 기업이 상수도사업을 하면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 전주시가 맡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대신 전주시는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환경부의 특별융자금, 세금인상 등을 통해 조달했다. 하지만 사업이 늦어지면서 “세금만 올려 받고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전주시민들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전주시민회 이문옥 위원은 “관련 공무원들은 사건의 진실을 모두 밝히고 문제를 일으켰던 건설사들은 입찰에서 손을 떼야 한다. 또한 전주시의 무책임한 행정을 통제하지 못한 전주시의회도 사죄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주시의회 정우성 의원도 “우리도 일정부분 책임을 통감한다. 사업을 빨리 진행할 것을 시에 요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사업은 지지부진한 채 뒷말만 무성하자 갖가지 구설들도 끊이질 않고 있다. 건설사가 행정관청을 끌어들이기 위한 로비를 펼쳤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건설사 간부와 연관이 있는 지역 언론사들끼리 상대방을 향한 공격에 나섰다는 등의 루머들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