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경우 전 축산경제 대표(왼쪽)와 농협중앙회의 전경. | ||
남경우 전 축산경제 대표의 비리를 처음 수사한 곳은 경찰청 특수수사과다. 경찰에 따르면 남 전 대표에 대한 수사는 지난해에 이미 관련 첩보를 입수, 자료를 축적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고 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6월 말 시작된 수사는 일주일 만에 끝났다. 가지고 있는 자료들의 확인 작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귀띔했다. 경찰은 남 전 대표를 납품업체들로부터 12억 원을 상납받고 농협중앙회 간부들에게 수천만 원 상당의 물품을 뇌물로 제공한 혐의로 지난 7월 8일 구속하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남 전 대표가 추가 조사를 받을 것’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남 전 대표에게 쏟아졌던 의혹들의 상당 부분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 결국 8월 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남 전 대표를 향해 다시 칼날을 빼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드러난 12억 원은 남 전 대표가 받은 돈 중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들을 원점에서 다시 짚어 볼 것”이라며 재수사 방침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남 전 대표가 납품업체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았다는 증거를 검찰이 이미 확보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와는 별도로 검찰은 남 전 대표가 받은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를 파악하는 것에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경찰과 검찰은 남 전 대표가 비리를 통해 모은 돈 대부분을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 내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이 돈 중 상당액이 ‘다른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비리 혐의로 구속된 정대근 전 회장에게 돈이 건네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남 전 대표가) 이미 불구속 입건된 농협중앙회 간부들에게는 인사 청탁 등의 명목으로 뇌물을 제공했으면서 사실상 농협사료의 인사권과 감독권을 쥐고 있는 정 전 회장에게 주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내사 초기 단계여서 아직 공개하기는 힘들지만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검찰은 정 전 회장 구명을 위한 로비에도 ‘검은돈’이 사용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남 전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정 전 회장 최측근이다. 특히 정보 관련 업무를 총괄하며 정 전 회장의 눈과 귀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한때 농협중앙회 내부에서는 “농협의 모든 정보는 남 전 대표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위촉장을 받는 정대근 전 농협회장. | ||
검찰 안팎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남 전 대표 내사의 최종 목표는 이 구명 로비에 사용된 돈이 누구에게로 흘러들어갔는지를 찾아내 비자금의 ‘몸통’을 밝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검찰 관계자도 “정 전 회장 구명에 나섰던 참여정부 실세 정치인 A, B 씨 등이 남 전 대표로부터 돈을 받은 정황이 있어 이를 확인 중”이라며 이를 뒷받침했다.
이밖에 농협중앙회와 그 자회사의 현직 임원들도 이번 내사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검찰이 작성한 뇌물 수수 리스트에는 농협중앙회 임원 C 씨를 비롯해 산하 연구소 임원 D 씨 등 총 일곱 명의 이름이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제 내사가 시작 단계임을 감안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몇몇 농민단체는 지난해 12월 치렀던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에서도 “남 전 대표가 받은 돈이 대량 뿌려졌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선 4대 회장을 뽑는 당시 회장 선거는 결선 투표까지 가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는 평이었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불협화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떤 후보는 “사상 최악의 돈 선거였다. 일부 후보들의 자금 출처를 확인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현재 검찰은 이 부분과 관련해 수사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 전 대표 내사를 현 정권의 ‘노무현 정부 비리 캐기’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농협중앙회 자회사였던 휴켐스 헐값 매각 의혹도 내사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2006년 농협중앙회가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자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휴켐스를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판 경위를 조사하고 있는 것. 이는 그동안 국정감사와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제기됐던 문제다. 한 농민단체의 진정서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지금에서야 내사에 나서는 배경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 전 대표 내사 역시 비슷한 경우로 볼 수도 있다. 일각에선 지난해 말 입수한 첩보를 6개월이 지나서 내사에 착수한 것이나, 재수사를 벌이는 것 모두 정치적인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지금 검찰이 내사를 하고 있는 것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해명할 것은 해명했는데 왜 다시 불거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농협중앙회로서는 검찰 내사로 다시 한 번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지만 최원병 회장에게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오히려 ‘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듯하다. 최 회장이 이번 기회에 ‘정대근파’를 정리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 남 전 대표를 비롯해 이번 검찰 내사 대상에 오른 인물들 대부분이 정 전 회장 측근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 회장이 취임 초부터 부르짖었던 ‘농협개혁 비리척결’ 등의 구호를 더욱 강조하며 친정체제 구축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기 전인 지난 5월 말 최 회장은 자신의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만났다고 한다. 이를두고 일부에서는 여러가지 말이 나오고 있지만 검찰의 칼날이 어디를 겨냥한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