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가 가족들이 지난 16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박두병 초대회장의 부인 명계춘 여사 빈소에 도열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 | ||
서울시내 대표적 부촌인 성북동엔 박용곤-용오-용성-용현 형제가 공동보유해온 고급빌라 한 채가 있었다. 성북동 3XX-21에 위치한 S 빌라 B 동 102호가 지난 1998년 4월부터 4형제 공동 명의로 돼 있었던 것. 이 빌라는 330㎡(100평)형으로 인근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10억 원을 크게 웃돌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6월 이 빌라 등기부에서 박용오 회장의 이름이 빠진 사실이 <일요신문>에 의해 뒤늦게 확인됐다. 등기부에 따르면 지난 6월 13일 박용오 회장 명의였던 이 빌라 지분 4분의 1이 박용곤 명예회장 명의로 이전됐다. 그것도 매매가 아닌 ‘증여’ 형식이었다. 두산 계열사에서 박용오 회장 명의 지분이 대부분 사라진 것과 비슷한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4남 박용현 회장도 자신 명의 지분 4분의 1을 지난해 12월 박용성 회장에게 팔았다. 등기부상 거래가액은 2억 7500만 원. 이 가격에 해당하는 지분을 ‘쫓겨난 아우’ 박용오 회장이 큰형님인 박용곤 명예회장에게 ‘그냥’ 준 것이다.
3억 원도 안 되는 금액이 재벌가 인사들에게 큰돈은 아니겠지만 형제들과 갈등의 골이 깊었던 박용오 회장이 아무런 대가 없이 선뜻 내줬다고 보기는 미심쩍다. 큰 사업을 막 벌이기 시작해서인지 등기부상으로만 보면 박용오 회장 일가의 금전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 퍼줄 정도로 풍족해 보이지도 않는다.
위 빌라 바로 옆에 붙은 B 동 101호는 박용오 회장의 장남 박경원 성지건설 부회장 명의로 돼 있다. 등기부에 따르면 이 빌라와 박경원 부회장의 현 주소지인 용산구 서빙고동 소재 아파트 등을 공동담보로 해서 은행 두 곳에 채권최고액 56억 원 규모의 근저당권 설정이 돼 있다. 서빙고동 아파트는 박 부회장과 부인의 공동명의로 돼 있는데 부인 몫인 2분의 1 지분이 용산구청에 압류돼 있었다. S 빌라 바로 위층인 B 동 202호는 박용오 회장 명의인데 이 집을 담보로도 11억 원을 채권최고액으로 하는 근저당권 설정이 돼 있다.
▲ 성북동 S 빌라.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박중원 씨 사건 공개 이후 벌어진 주요주주의 지분 매각은 시장의 불안감을 가중시켰으며 이는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6월 초까지만 해도 2만 원대에 있던 성지건설 주가는 9월 초 1만 원 이하까지 곤두박질쳤다가 9월 19일 현재 1만 350원을 기록 중이다. 지난 6월 20일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200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결정했던 성지건설은 8월 27일 공시를 통해 또 한 번 50억 원어치 BW 발행을 알렸다.
박용오 회장의 성지건설 경영권 인수 당시 재계 일각에선 지분 인수자금 출처에 대한 미확인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두산 총수일가 형제의 난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던 터였고 박용오 회장 일가의 두산 지분 처분이 진행되던 중이라 ‘잡음 없이 끝내자’는 조건으로 형제간에 대가가 오갔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이다.
박용오 회장 일가를 퇴출시킨 두산그룹의 최근 사정도 그다지 밝아 보이지만은 않다. 금호아시아나 STX와 더불어 대형 M&A를 통해 급격히 몸을 불려온 두산은 최근 유동성 위기설로 곤욕을 치렀다. 의욕을 보였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한 데 이어 지난해 인수한 미국 건설중장비 업체 밥캣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10억 달러 규모 출자 발표가 나오면서 M&A 후유증에 따른 자금 위기설이 불거진 것이다.
두산 측은 ‘소통 부족’을 시인하고 기업설명회 등을 개최하며 위기설 진화에 애를 썼다. 두산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설은) 이제 다 끝난 이야기”라며 “시장과의 소통 부재 때문에 위기설이 퍼진 것일 뿐이며 급락했던 계열사들 주가도 회복세를 타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악재에 따른 혼란과 더불어 밥캣 실적을 좌우할 미국 건설경기 경색도 1~2년 안에 걷히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두산이 원하는 만큼 시장의 신뢰를 빨리 회복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