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원병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8월 28일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사 앞. 초록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전국농업협동조합노동조합(노조·위원장 서필상) 조합원들이었다. 이들은 ‘농협중앙회의 지로수수료 과징금 지역농협 전가 및 금품편취 고발’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고 농협중앙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최원병 회장과 전무이사 등 농협중앙회 임원 네 명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동안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은 두 달을 넘게 과징금 문제로 신경전을 벌여왔다. 지난 6월 2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로수수료 담합’을 이유로 농협중앙회에 5억 79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농협중앙회가 이 중 1억 2000만 원(약 20.7%)을 지역농협에 전가하자 지역농협들이 강하게 반발했던 것. 이때부터 양측의 싸움은 시작됐다. 농협중앙회는 결국 8월 26일 지역농협들로부터 돈을 걷었고 이틀 뒤 노조는 최 회장 등을 고발하기에 이른다.
노조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농협중앙회의 입장은 단호하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수수료 인상으로 지역농협도 이익을 봤다. 당연히 (과징금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승희 노조 교육선전국장은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주체는 농협중앙회다. 통지서에도 그렇게 돼 있다. 지역농협은 농협중앙회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노조는 공정위가 보낸 과징금 통지서를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 통지서에는 농협중앙회가 시중은행과의 지로수수료 담합 내용을 지역농협에 통보한 사실도 기록돼 있다. 노조는 공정위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불법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농협중앙회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농협중앙회가 ‘공정위가 지역농협과 과징금을 분담하라’고 했다며 통지서와 다른 내용을 지역농협에 알리며 과징금 분담을 지시한 것은 ‘사기’라고도 했다.
농협중앙회는 “당시 (수수료와 관련해 지역농협에 보낸) 공문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역농협이 농협중앙회의 수수료 인상 지시를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농협 대부분이 농협중앙회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높기 때문. 전라도 지역의 한 단위농협 조합장은 “지역농협이 출자해 만든 농협중앙회가 거꾸로 지역농협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비위를 거스르면 당장에 재정이 어려워질 테고 그러면 차기 조합장 선거도 어려워진다”고 털어놨다.
▲ 지난달 28일 전국농협노조 조합원들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농협중앙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농민단체 등에서도 농협중앙회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지난해 영업수익만 27조 원가량을 기록해 ‘공룡’이라고도 불리는 농협중앙회가 불과 1억 2000만 원 때문에 지역농협과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라는 것.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한 관계자는 “농협중앙회가 야기한 일이다. 그리 크지도 않은 금액을 지역농협에 떠넘기려 한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농협 내부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검찰 고발까지 갈 만큼 중대 사안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일부 지역농협에서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지역 농협의 한 조합장은 “이보다 더한 것도 있었지만 참아왔다. 농협중앙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한 가족인데 굳이 고발까지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견해들에 대해 노조에서는 “언제까지 참고 갈 수는 없다. 잘못된 것은 도려내야 장기적으로 양측의 관계가 좋아질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그동안 쌓여온 최 회장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12월 취임 후 최 회장은 강도 높은 개혁을 외쳐왔다. 하지만 농협중앙회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농협 안팎에서는 “지난 8개월간 최 회장의 최대 성과물은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결국 최 회장의 개혁 작업 실패에 대한 불만이 검찰 고발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여기에 지난 선거에서 최 회장에게 패했던 후보자들과 구속된 정대근 전 회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세력들도 가세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지역농협에 할당된 1억 2000만 원을 각 지역농협이 나눠서 냈는데 제일 많이 부담한 곳이 20만 원가량이라고 알고 있다. 단지 돈 때문에 고발을 했다고 하기엔 너무 적은 액수 아닌가. 누군가 선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에서는 “노조원들 대부분이 성원해주고 있다”라고 받아쳤다.
일단 검찰은 고발이 접수된 이상 최 회장 등에 대한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전해진다. 노조는 검찰 조사를 지켜보기는 하겠지만 농협중앙회가 공개사과를 하고 돈을 돌려주면 고발을 취하한다는 입장. 반면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의 과징금 분담은 전혀 문제가 없는 이상 돈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다만 공정위를 상대로 과징금 부과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인데 여기서 승리해 과징금이 취소될 경우 돈을 돌려준다는 방침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