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창수 회장이 삼촌 허완구 승산 회장 가족에게 대우조선 경영을 맡기기 위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허창수 회장과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 합성. | ||
그렇다면 이것이 전부일까. 재계 일각에서는 또 다른 목적으로 ‘느슨한 의미의 계열 분리’ 또는 ‘사촌 간 역할분담’을 위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뛰어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허창수 회장의 사촌동생인 허용수 GS홀딩스 상무의 역할론이 급부상해 눈길을 끌고 있다. GS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나선 ‘색다른 배경’ 논란 속으로 들어가 보자.
GS그룹의 주축이 허창수 GS건설 회장 겸 그룹 회장이란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GS는 ‘집단지도체제’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GS그룹의 계열사(자회사)는 모두 57개. 이를 허씨 일가가 골고루 나누어 경영하고 있다. 주력은 GS칼텍스, GS건설, GS홈쇼핑, GS네오텍, GS리테일 정도다.
주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들의 면면을 허창수 회장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면 GS칼텍스에는 허창수 회장의 사촌형 허동수 회장과 허창수 회장의 둘째동생 허진수 사장이, GS건설엔 셋째동생 허명수 사장이, GS홈쇼핑엔 넷째동생 허태수 사장이, GS네오텍(옛 LG기공)엔 바로 아래 동생 허정수 사장이, GS리테일엔 허 회장의 막내삼촌 허승조 사장이 포진해 있다.
이렇듯 GS그룹은 허씨 일가가 집단지도체제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사실은 상당수 주력 기업의 CEO를 맡고 있는 허창수 회장 형제가 그룹 경영권을 주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큰 사업 영역으로 나누어 보면 허창수 회장 형제는 건설·유통 부문을, 허동수 회장 형제가 정유 부문을 맡고 있다. 비록 허동수 회장이 정유 부문만 이끌고 있다지만 허동수 회장의 존재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재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허동수 회장은 LG그룹에서 분리되기 전부터 정유사업을 맡아 이끌어오면서 오늘날의 GS칼텍스정유를 우뚝 세운 인물이다. 더욱이 GS칼텍스는 GS그룹 자산의 절반이 훨씬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핵심 중 핵심 기업이다. 그래서 재계에서는 GS그룹을 ‘허창수·허동수 쌍두마차 체제’라고 칭하기도 한다.
최근 주목할 만한 점은 우선 허동수 회장 일가의 후계 승계 구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허동수 회장의 장남인 세홍 씨가 지난해 초 GS칼텍스 상무로 영입돼 싱가포르 현지법인 부법인장에 기용되면서 본격적인 경영 일선에 나섰다. 그래서 재계에서는 GS그룹의 총수는 허창수 회장의 아들인 윤홍 씨가 이어받겠지만 GS칼텍스의 경영권은 세홍 씨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허세홍 상무는 현재 GS홀딩스 지분 1.32%(보통주 기준)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버지 허동수 회장도 2.46%를 보유하고 있어 지분율 면에서는 다른 일가보다 높은 편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이자 미국·일본 기업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허 상무의 영입에 대해 회사 측은 당시 “다양한 국외 경험을 경영 현장에 접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는 취지”라고 설명한 바 있다. 허 상무 영입과 경영권 승계를 연결시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하게 보이는 GS그룹의 경영권에 변수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허창수 회장의 삼촌인 허완구 승산 회장이 그룹 내의 일정 역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허완구 회장의 장남인 허용수 전 승산 사장이 지난해 초 GS홀딩스에 신설된 사업지원 담당 상무로 영입된 것도 허완구 회장의 요구와 맞물려 있다는 관측이다.
당시 이를 두고 GS그룹이 M&A 등을 통해 사세 확장을 도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고 실제 GS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이 같은 해석은 바로 확인됐다. 그렇기에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번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허용수 상무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허용수 상무 일가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는 것은 또 있다. 허 상무 일가는 지난해부터 지주회사인 GS홀딩스 지분율을 꾸준히 높여왔다. 허 상무는 최근 GS홀딩스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입, 9월 25일 현재 3.72%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허창수 회장(4.86%)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게다가 허 상무의 아버지인 허완구 회장도 2.97%를 보유, 지분율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허 상무의 부인인 정혜신 씨도 최근 지분을 매입하면서 3만 8180주(0.04%)를 보유하게 됐고 허 상무가 ‘오너’라고 할 수 있는 GS 계열사 승산도 0.1%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사촌 간 역할분담을 하려고 오래 전부터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계획했다’고 GS 내부 관계자에게 들었다”면서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허용수 상무 일가에 책임경영을 하게 할 것이라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초기에 그룹의 최고위층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미온적이어서 허완구 회장이 허창수·허동수 회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도 “유교적인 색채가 강한 LG의 구씨 일가가 핵분열해서 LIG그룹, LS그룹, 희성그룹 등으로 각자 자신의 사업체를 맡고 있는 것처럼 허씨 일가도 형제·사촌이 나누어 사업체를 갖게 하는 것 같다”면서 “그런 점에서 허완구·허용수 부자가 사업체 하나를 요구했다면 관례상이나 정서상 이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재계 일각의 관측이 맞을지는 GS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성공한다면 허용수 상무의 다음 행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민선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