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선언한 진주의료원 폐업 조치는 중앙 정치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당장 새누리당 소속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2일 “국민 1%만 필요하다고 해도 도립병원은 유지해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의료원 폐업 조치를 비판했다. 민주통합당 소속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8일 “공공의료는 국가의 기본적인 토대로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꾸준히 밀고 가야 한다”고 거들었다.
지난 10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진주의료원 노동조합원과 환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공공의료와 지방의료원 기능을 확대·강화해야 한다”며 사실상 폐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민주당 의원들과의 면담에서 “진주의료원이 최악의 상황으로 가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홍 지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김문수 지사에게는 “경기도 살림이나 잘하시라”고 직설했고, 진영 장관과의 비공개 회담 자리에서는 “국가가 관여하려면 국립으로 전환하거나, 500억 원을 지원해주면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중앙 행정부로부터 터져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에는 “진주의료원은 지방 사무이니, 국가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 여당 의원들이 지난 12일 주의료원 폐업 조례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0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 비공개 회의에서는 “공공의료서비스는 유지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공공성을 잃어서도 안 된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됐다고 한다. 4월 임시국회에 들어간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은 진주의료원 폐업에 관한 입장을 밝히기 꺼리는 분위기다. 자칫 대권을 노리고 있는 ‘도백들의 정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실 관계자는 “진주의료원에 관한 공식 입장이나 브리핑이 나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지난 11일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홍 지사가 조바심이 난 것이다. 당내 친이계는 사실상 소멸됐고 김무성 전 의원은 이번 재·보궐선거를 발판 삼아 곧바로 당 대표 자리까지 노린다는 이야기가 많다. 정몽준 의원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남한 핵보유 입장을 밝히면서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 이재오 의원이 주력하는 개헌 논의도 곧 시작된다. 저마다 당 안에서 조금씩 세력을 불리고 있는 것”이라며 “김문수 지사 역시 어쨌거나 수도권에 있지 않은가. 진주의료원 폐업 조치는 홍 지사가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묘수였다”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평론가는 “지난 대선 때 친박계에서는 홍 지사가 경남도지사에 나온다면 수도권 표심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결과적으로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보고서까지 나돌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PK(부산·경남)지역에 왔는데 입지가 좁아지자 본인 스스로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느냐”며 “진짜 진주의료원을 없애려고 했다면 진영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500억 이야기를 꺼냈겠나. 10년 야당 생활의 저력과 저격수로서의 본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누리당 소속의 한 보좌관은 “홍 지사는 아마 경남도지사를 길게 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 6월까지 눈에 드러나는 성과를 보여야 하는데 지방 부채를 줄이는 방법으로 진주의료원 폐업 조치를 좀 성급하게 추진한 것 아닌가 싶다”며 “대권을 생각했을 때 이번 일이 악영항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라고 밝혔다.
지난 12일 빈곤사회연대·보건의료산업노조의 진주의료원 폐업 철회 요구 시위. 연합뉴스
진주의료원이 “강성노조의 해방구”라는 홍 지사의 주장도 시간이 지날수록 설득력을 잃고 있다. 지난 9일 국회 앞에 뿌려진 <진주의료원 휴폐업 진실백서>에는 홍 지사와 경상남도청의 주장을 반박하며 “진주의료원 조합원들은 △계속되는 임금동결 △8개월치 임금체불 △30명 인원 축소 △31명 명예퇴직 △연차휴가 절반 반납 △토요 무급근무 실시 등으로 2012년 10월 노사합의를 이룩했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의료원 안에는 일부 환자들이 “죽기 전에는 못 나간다”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원에서 봉사 중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측은 “현재 진주의료원에 남아있는 환자는 31명이다. 이들 대부분이 의료원 내 노인요양병원 장기입원환자들로 사실상 갈 곳이 없는 분들”이라며 “경상남도에서는 의사들을 우선 해고한 뒤 환자들에게 ‘진료해줄 의사가 없다’, ‘곧 식사와 약품 지급이 중단된다’는 식으로 퇴원을 유도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결국 홍 지사는 지난 11일 박권범 진주의료원장 직무대행에게 출근을 지시했고 보건의료노조와도 만나 대화를 시작했다. 정치권의 분석대로 ‘심리게임’을 벌였다면 이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숙제들이 생긴 셈이다. 새누리당 한 전직 의원은 “홍준표 지사는 이미 중앙 정치로부터 멀어진 정치인이다.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르고 애 쓰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