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세차익을 노리는 내집마련 수요자들이 미분양아파트 투자를 고민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내 집 마련 수요자들은 역시 미분양을 어떻게 접근해야할지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특히 10년여 전 외환위기 당시 미분양 아파트를 겁 없이(?) 사들여 불과 2∼3년 만에 집값이 두 배 이상 오른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 본 40∼50대들은 내심 초조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실제로 간간히 신문에 나오는 ‘주목할 만한 미분양 아파트’ 리스트에 ‘혹’하며 매입을 저울질하는 ‘용기’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상징인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는 지난 1999년 6월에 3.3㎡당 1100만∼1200만 원에 분양했지만 미분양이 발생했다. 그러던 것이 불과 2년 만에 3.3㎡당 2000만 원을 돌파했고 이젠 3.3㎡당 5000만 원을 훌쩍 넘었으니 최초 분양자는 횡재한 셈이다. 과연 이 같은 2000년의 ‘미분양 아파트 대박 신화’가 이번에도 올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접근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외환위기 당시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외환위기 당시의 미분양 사태를 살펴보자. 당시 미분양 사태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2000년 초까지 이어졌다. 2000년 당시 서울지역 평균 분양가는 3.3㎡당 700만 원 내외로 강남을 제외한 지역은 3.3㎡당 1000만 원을 넘지 않았다. 수도권 역시 3.3㎡당 300만~500만 원 수준이었다. 분양가는 주변 아파트 값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분양가가 낮았던 이유는 각종 규제 때문이었다. 외환위기 직전만 해도 분양가 규제를 받았다. 즉 당시 주택의 분양가격은 ‘주택분양가 원가연동제 시행지침’으로 인해 주변 아파트에 비해 낮아, 당첨만 받으면 시세 차익이 보장될 정도였다. 물론 외환위기 이후 기존 아파트 값이 크게 하락했지만 미분양 아파트는 여전히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다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각종 규제가 철폐됐다. 즉 1998년 12월 분양가 자율화가 전격 실시되면서 사실상 분양가 규제가 사라졌고 여기에 분양권 전매제한도 1999년 2월 폐지됐다. 분양가 규제가 없어지면서 역설적으로 기존에 낮은 가격으로 분양한 미분양 아파트의 가격 매력은 더욱 높아지게 됐다.
더불어 주택 보급률이 절대적으로 낮았다. 외환위기로 인해 수요가 억제돼 있었지, 잠재 수요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희선 부동산114 전무는 “외환위기 이후 나온 미분양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가격 메리트가 컸고 당시 주택공급률이 여전히 낮아 잠재 수요가 뒷받침되는 상황이었다”면서 “2000년 이후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잠재된 수요가 폭발해 미분양 아파트가 급격히 소진되고 곧이어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의 미분양 사태는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는 물론 실수요자들도 미분양 아파트에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특히 미분양 발생 지역이 수도권 외곽 또는 지방으로 수요자가 많지 않은 대형이며 분양가 역시 주변 아파트에 비해 크게 높다는 점이 위험요소로 꼽힌다. 실제로 미분양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려 하자 이를 피하기 위해 건설사들은 지난해 4분기 이후 ‘밀어내기식’ 분양을 했다. 당시 분양가는 주변 아파트 값보다 20∼30% 높은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특히 경기침체와 인구감소를 겪고 있는 지방의 경우, 건설사들이 이 같은 수요-공급 원칙을 고려하지 않고 고급 대형 아파트를 대거 공급해 미분양 사태를 자초했다.
여기에다 올 들어 기존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있고 최근 폭락에 가까운 하락에 기존 아파트와 미분양 아파트의 가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즉 현재 미분양 아파트는 △수도권 외곽과 지방에 △주변 아파트 가격보다 분양가가 현저히 높은 △50∼60평형대 대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 이 같은 미분양 사태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도 잠재 수요자들을 주저하게 하는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과거 고분양가로 인해 미분양이 발생했어도 주변 아파트 값이 상승해 분양 후 2∼3년이 지난 입주 시점에는 주변 아파트 값과 비슷한 수준에 시세가 형성돼 미분양이 해소되곤 했다.
현재 상황을 보면 그런 일은 당분간 일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부동산 시장의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경기 회복도 언제 될 지 불투명하다. 최근 금융위기로 인해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미분양에 대한 수요가 당분간 되살아나기는 요원한 셈이다.
곽창석 나비에셋 사장은 “아직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현 상황에서 10∼15% 정도 더 하강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미분양을 해소할 수요가 되살아나기 위해선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어야 하고 시중 실세 금리 역시 낮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도 미분양 아파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실수요자라면 전세값의 움직임을 눈여겨 볼 것을 전문가들은 권한다. 과거 집값 상승이 전세값 급등에 따라 ‘임대’에서 ‘매수’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급증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처럼 전세값 하락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뉴스가 신문을 장식하는 한 미분양 아파트에 대해서는 ‘관심’은 가지되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모범답안으로 보인다.
김명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