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유진 컨소시엄의 나눔로또가 2기 로또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재계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당시 KT 하나은행 삼성SDS 등과 손잡은 코오롱 컨소시엄의 ‘드림로또’와 CJ 우리은행 대우정보시스템 등으로 구성된 ‘로또와 함께’가 1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당시 유진 컨소시엄은 유진기업 LGCNS 인트라롯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후 선정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도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나 의원에 따르면 유진 컨소시엄은 입찰심사에서 총 6명(재무관리 2명, 사업운영 1명, 시스템구축 3명)으로부터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반면 코오롱 컨소시엄에 최하위 점수를 준 심사위원은 없었다. 나 의원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부분은 유진 컨소시엄을 1위로 평가했던 심사위원 중 일부가 2, 3위에 지나치게 낮은 점수를 줬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평가에서 코오롱 컨소시엄에 밀렸던 유진 컨소시엄이 사업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나 의원 측은 보고 있다.
나 의원은 유진 컨소시엄이 복권위원회의 내부 정보를 미리 입수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또사업자 선정에서 가장 중요시됐던 것은 응찰업자가 제시한 수수료율. 과연 누가 복권위원회가 산정한 적정 수수료율의 80%에 가장 근접하게 써내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유진 컨소시엄만이 이 기준에 충족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적정 수수료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또는 유진 컨소시엄이 제시한 수수료율에 맞춰 적정 수수료율을 조정했을 가능성도 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유진그룹은 “우리도 이번에 적정수수료율을 알았다.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나 의원 측은 “이처럼 입찰 과정에서부터 명쾌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당첨 조작과 같은 얘기가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진수희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로또 조작설’을 주장하며 감사원에 진상 조사를 요구한 바 있다.
현재 검찰은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에 대한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일부 사실에 대해서는 은밀하게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로또사업자 선정 과정 의혹과 관련해 그동안 모은 자료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동안 무차별적인 기업 사정에 대한 반감이 있는 만큼 확실한 증거를 잡을 때까지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로또사업자 선정 과정 의혹의 핵심은 나성린 의원의 지적처럼 유진그룹이 입찰 과정에서 부당한 특혜를 받았는지 여부다. 또한 이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 로비를 벌였는지 여부도 확인해야 할 중요 사안이 될 전망이다. 한편 서초동 검찰청 주변에는 검찰이 유진그룹 계열사들의 재무제표 분석을 통해 계열사 간 자금 흐름 등에서 수상한 점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칼날이 M&A로 급성장한 유진그룹이 회사 덩치를 불려가는 과정에 대해서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소리도 들린다.
‘나눔로또 검찰 내사설’이 실제 수사로까지 이어진다면 검찰이 로또 사업자에 대해 두 번째로 칼을 겨누는 셈이다. 지난 2005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국민은행과 함께 1기 로또사업을 하고 있던 코리아로터리서비스가 비자금을 조성해 로비를 벌여 사업권을 따냈을 것이라고 보고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그 결과 이 회사 공공대표였던 남 아무개 씨가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수사라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었다. 검찰은 비자금이나 로비에 관해서는 실체를 밝히지 못했고 구속된 남 씨도 로또 사업과는 무관한 회사의 돈을 횡령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로또 사업에 대한 수사가 김대중 정권을 겨냥한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게 나돌았었다. 검찰은 직접 “DJ 정권 실세가 연루됐다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해 정치보복 수사였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기 로또사업자 선정 의혹과 관련해서도 지난 정권 실세 정치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핵심 요직을 지낸 한 인사와 노 전 대통령의 측근 한 사람이 거론되고 있는 것. 검찰은 이들이 유진 컨소시엄이 사업을 따낼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일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수사가 미진할 경우 오히려 검찰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검찰은 극도로 입 조심을 하고 있다. 검찰은 1기 로또 사업자 수사 때도 결국 비자금과 로비 부분은 밝혀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동안 사실상 전 정권 관련 비리 수사를 전 방위적으로 진행했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로또 내사’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섣불리 공개하기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검찰은 ‘이번에는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확실한 증거를 잡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감사원 역시 로또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일부 공무원들이 돈을 받았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올해 초부터 은밀히 조사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감사원은 유진그룹이 입찰 정보를 미리 빼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진상 파악에 나섰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감사원 측은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유진그룹은 로또 사업과 관련된 의혹들에 대해 “그동안 계속 나왔던 말들에 불과하다. 선정 과정에서 특혜나 로비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검찰로부터 어떠한 조사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