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회장의 셋째부인으로 알려진 서미경 씨(작은 사진)와 딸 신유미 씨가 롯데 그룹 주력사인 롯데쇼핑 지분을 늘리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
지난 10월 27일 롯데쇼핑은 흥미로운 지분 변동 내역을 공시했다. 서미경 씨와 신유미 씨가 롯데쇼핑 주식을 각각 3270주, 1690주를 매입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서 씨 모녀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유원실업도 3000주를 사들였다. 총 7960주로 주당 평균 매입가가 20만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분 매입에 서 씨 모녀가 들인 돈은 16억 원가량이었다.
서 씨와 신 씨는 28일에도 롯데쇼핑 주식을 각각 4800주와 4969주 사들이며 지분을 추가했다. 다음날인 29일에도 6200주와 4700주를 보탰다. 이로써 서 씨는 롯데쇼핑 주식 1만 4270주를, 신 씨는 1만 1359주를 가지게 됐다. 지분율로 보면 서 씨가 0.05%, 신 씨가 0.04%, 유원실업이 0.01%로 모두 0.1%가 서 씨 모녀의 영향력하에 들어간 셈이다.
서 씨 모녀가 롯데 계열사 지분을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신유미 씨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삼각김밥 등을 납품하는 롯데후레쉬델리카 지분 9.31%를 사들이며 최대주주에 오른 바 있다. 신 씨는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 지분도 1.26% 보유하고 있다.
지분율만 놓고 따지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재계에서는 서 씨 모녀의 이름이 롯데쇼핑 주주 명부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롯데쇼핑이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서 그 상징성이 유원실업이나 롯데후레쉬델리카 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 롯데 사정에 밝은 한 재계 인사는 “신격호 회장이 신유미 씨를 롯데가 2세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신 씨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지분도 적지만 향후 재산 분배 등에 있어서 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 씨 모녀의 지분 매입이 관심을 끌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같은 기간에 신 회장도 롯데쇼핑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총 4만 4260주를 사들이며 지분율을 1.22%에서 1.37%로 끌어올렸다. 신 회장이 롯데쇼핑 주식을 장내에서 매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 때문에 재계와 증권가에서는 신 회장이 지분을 추가한 것에 남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증권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지분 정리에 나서야 할 신 회장이 수십억 원을 들여 지분을 사들였다는 것은 단순한 투자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도 “신 회장이 서 씨 모녀의 뒤를 이어 지분을 매입하자 그룹 내부에서는 신 회장이 서 씨 모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말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그동안 신 씨 일가에서 소외된 것으로 알려졌던 서 씨 모녀가 향후 경영권 승계 및 재산권 분배 등에 있어서 다크호스로 떠오를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롯데쇼핑 측은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서 씨 모녀나 신 회장 모두 최근 주가가 많이 하락하자 주가 부양 및 투자를 위해 주식을 산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앞으로 서 씨 모녀의 지분 매입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서 씨 모녀가 가지고 있는 지분(0.1%)이 신영자 사장(0.79%)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계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신 사장과 신유미 씨에게 동등한 몫을 넘겨줄 것이라고 관측해왔다. 이 같은 시각은 지난해 신 사장과 신 씨가 나란히 롯데후레쉬델리카 지분 9.31%를 확보하면서 나왔다. 여기에 롯데시네마의 매점 운영을 신 사장이 소유하고 있는 시네마통상과 서 씨 모녀가 가지고 있는 유원실업이 나눠 운영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굳어졌다. 따라서 롯데쇼핑 내에서의 지분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서 씨 모녀의 추가 매입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롯데쇼핑 내에서 신 사장의 비중 확대와 서 씨 모녀의 주식 사들이기를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그룹 안팎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 신 사장은 롯데쇼핑의 중요 사안들을 일일이 챙기며 신동빈 부회장을 제치고 ‘최고 실세’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6년 등기이사에서 제외되며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배제됐다가 올해 4월 복귀할 때만 해도 롯데그룹에서는 “큰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등기이사 자리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이름이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하지만 당시 신 사장이 등기이사 복귀와 함께 이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신 사장 복귀가 경영 참여를 위한 수순이었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신 사장의 승진 사실이 비밀에 부쳐진 이유에 대해서도 후계 구도 논란을 피하기 위한 롯데 측의 전략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신 사장은 롯데쇼핑에 돌아와 라이벌 신세계에 내줬던 유통 부문 실적 1위를 되찾는 등 경영수완을 발휘해 회사 직원들의 지지는 물론 신 회장으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한 롯데쇼핑의 명품 부문을 활성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 신 사장의 딸 장선윤 전 롯데쇼핑 상무의 컴백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처럼 롯데쇼핑에서의 신 사장 역할이 커지면 커질수록 신 부회장의 ‘경영능력 논란’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최근 신 부회장이 글로벌 사업과 금융업 등 신규 사업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롯데쇼핑이 딸들의 몫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신 부회장 입지(지분율 약 14.59%)가 워낙 탄탄해 경영권 위협을 논하는 것이 성급해 보이지만 신 회장의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후계 구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신 부회장도 안심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신 회장이 이번에 사들인 지분의 향배에 관심이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좀 더 비약해 롯데쇼핑이 딸들에게 넘어갈 경우 신 사장과 서 씨 모녀의 ‘롯데쇼핑 쟁탈전’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신 사장이 그동안의 경력이나 위상 등을 보면 한참을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이지만 서 씨도 자신의 몫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일단 뚜껑은 열어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1983년생으로 외국 유학 중인 신유미 씨가 롯데그룹 입사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