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 ||
캠코는 매각 가격을 높이기 위해 최고가 낙찰방식을 선택했고 덩달아 동국제강도 우리사주조합을 따돌리기 위해 높은 가격을 써내 낙찰을 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이런 높은 몸값이 동국제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결국 M&A(기업인수·합병)는 없던 일로 돼 버린 것이다. 그동안 쌍용건설을 놓고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IMF 외환위기 직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 2004년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쌍용건설은 캠코와 8개 금융기관이 지분 50.07%를 보유한, 사실상 공기업이다. 캠코는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인 매각 작업에 들어가면서 높은 몸값을 받기 위해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기업에 지분을 넘겨주는 ‘최고가 낙찰’ 방식을 택했다. 이는 일반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번 M&A가 불발로 그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하고 종업원지주회사로 만들기 위해 애써온 쌍용건설의 특수성을 무시했다는 얘기다.
2003년에 자본잠식으로 코스닥 퇴출 위기에 빠졌을 때 쌍용건설 임직원들이 퇴직금을 중간정산, 32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6.27% 보유하면서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했다. 게다가 캠코 등 채권단은 이런 임직원들의 희생을 높이 사 자신들이 보유한 50.07%의 지분 중 24.72%에 대해 우리사주조합에 우선매수청구권을 줬다. 쌍용건설이 종업원지주회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셈이다. 만약 우리사주조합에서 16.27%에다 24.72%까지 인수하면 쌍용양회 보유 지분 6.13%까지 합해 경영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
이렇게 특수한 상황임에도 캠코는 최고가 낙찰방식을 고집했고 동국제강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당시 쌍용건설 주가가 2만 원대에서 맴돌 때 동국제강은 지분 인수 가격으로 주당 3만 1000원(총 4620억 원)을 내겠다고 한 것. 이는 쌍용건설 우리사주조합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동국제강이 최종 인수자로 결정됐다고 하더라도 우선매수청구권이 있는 우리사주조합에 주당 3만 1000원에 주식 전부나 일부를 사겠느냐고 의향을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자본 유치력이 떨어지는 우리사주조합에 이런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우선매수청구권 행사를 포기하거나 최소한 위축될 것으로 계산했다는 지적이다.
▲ 쌍용건설 매각 작업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동국제강에서 인수 포기의사를 밝힘에 따라 무산됐다. | ||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 때문에 주당 3만 1000원이라는 인수 가격은 동국제강한테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2만 원대를 꾸준히 유지하던 쌍용건설 주가도 이런 주변 여건 악화에다 M&A가 지지부진하면서 투자심리가 악화돼 5000원대로 추락한 상태다. 그래서 동국제강은 인수 가격 조정 한도를 당초 정해진 5%에서 크게 확대해줄 것을 캠코에 요구했다.
동국제강 측은 세계 경제위기, 건설위기, 주가폭락, 기업가치 하락 등 천재지변적 상황이어서 캠코와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봤다고 한다. 재계에는 동국제강이 총 인수 금액에서 1000억~2000억 원을 깎아달라고 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캠코는 M&A에 참여했던 다른 업체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동국제강 측 요구를 거부했다. 동국제강이 제시한 할인 폭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결국 동국제강은 쌍용건설 인수전에서 후퇴를 결정했다. 그런데 장 회장이 12월 1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인수포기’란 단어를 쓴 이후 다음날 동국제강 이사회에서 ‘인수 1년 유예’란 표현으로 슬쩍 바뀌었다. 이는 이행보증금 231억 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동국제강이 인수를 포기할 경우 이행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지만 캠코에서 판을 깰 경우 이행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즉, 캠코가 받아들이지 못할 요구를 해서 협상 결렬을 캠코 측 귀책사유로 몰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 바람에 쌍용건설 안팎에서 동국제강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높은 인수 가격으로 쌍용건설을 골탕 먹이더니 결국 마지막에는 이행보증금을 챙기기 위해 캠코를 상대로 또 한 번 꼼수를 썼다”고 꼬집었다.
조완제 경향신문 기자 jw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