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해 CNK 본사를 압수수색 하는 모습. 일요신문 DB
CNK전 부회장 임준호 변호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간까지 ‘억울하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했다.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임 변호사의 곁엔 타다 남은 번개탄과 함께 다량의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주가조작에 휘말린 억울한 심정을 담은 내용으로 알려졌는데 서울 용산경찰서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살을 선택하기 직전까지도 재판에 성실히 임하는 자세를 보였다. 두 번째 공판기일이 다음달 7일로 예정돼 있는 상태에서 사망 보름 전엔 재판부에 의견서와 함께 국민참여재판 의사 확인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심리적인 부담감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족들도 경찰조사에서 “(임 변호사의 자살을) 이해한다.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임 변호사가 벼랑 끝까지 몰린 데는 ‘CNK 주가조작’ 사건의 책임을 피해갈 여지가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처음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CNK는 2010년 12월 외교통상부의 “CNK가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최소 4억 2000만 캐럿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보도 자료 하나로 단박에 ‘대박 기업’으로 떠올랐다.
감사원의 조사 결과 사건에 휘말린 고위 공직자도 적지 않았다. 보도 자료 배포에 앞장선 김은석 전 외교부 에너지대사부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까지 거론됐다. 여기에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도 CNK 고문으로 일한 사실도 적발돼 충격을 줬다. 이에 검찰은 김 전 대사까지 포함한 관련자들을 수사하기 시작했고 무려 1년 1개월 만인 지난 2월 19일 김 전 대사를 포함한 사건 연루자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물론 그 대상에 임 변호사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CNK의 다이아몬드 매장량을 부풀리고 조만간 대량 생산이 가능할 것처럼 허위 사실을 유포해 약 90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혐의를 받았다. 타인 명의로 운영하던 회사 자금 중 약 45억 원을 자녀 명의로 CNK 주식에 투자하고 차명계좌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CNK 주식을 매매해 부당한 차익을 얻었다는 게 주요 혐의 내용이다. 임 변호사뿐 아니라 CNK 안 아무개 고문, 박 아무개 씨 등 회계사 2명과 김 전 대사도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김 전 대사는 외교부 명의로 된 보도 자료를 2회 배포했을 뿐 아니라 두 번째 자료 배포를 반대하는 국장에게 결재를 강요했으며 국정감사에서 ‘매장량은 카메룬 정부에 의한 것이고 재료 배포과정에서 이견이 없었다’고 위증한 혐의가 적용됐다.
안 고문은 CNK의 허위 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관여한 혐의로, 회계사 2명은 카메룬 소재 CNK마이닝의 기업 가치를 600억 원대로 허위 평가하고 CNK의 감사 의견을 부실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적정’으로 매긴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 또한 CNK 관련업체 주식 3000만 원 상당을 매입하기도 했다.
CNK 주가조작 사건 연루로 검찰에 출두한 김은석 전 외교부 에너지대사(왼쪽)와 조중표 전 국무총리 실장. 일요신문 DB
결국 김 전 대사와 임 변호사를 비롯한 5명만이 법정에 서게 됐고 지난달 말 첫 공판이 열렸다. 임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도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변호인들도 수사기록이 1만 8000페이지에 이르는 등 기록이 방대해 준비 기일을 추가로 요청해 다음달 7일 두 번째 공판기일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임 변호사의 죽음으로 추후 재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법원의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질 경우 임 변호사가 시세차익으로 얻은 약 90억 원의 이득에 대해서도 더 이상 책임을 캐물을 방법이 없어졌다. 결국 오 대표의 귀국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돼 사건은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의혹 덩어리’ 박영준 전 차관 “CNK 사라” 직원들에 권유도 물론 박 전 차관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발뺌했지만 그를 둘러싼 의혹은 봇물 터지듯 제기됐다. 특히 2010년 5월 총리실과 외교부, 지식경제부 등 정부기관이 참여한 민관 고위급 대표단이 아프리카 4개국을 순방할 때 보여줬던 박 전 차관의 행동은 충분히 의심 갈 만했다. 경제통상사절단장(당시 국무총리실 차장) 자격으로 카메룬을 방문한 박 전 차관은 카메룬 총리와 만나 “한국 중소기업이 개발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고 청하는 등 지나치게 CNK를 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 지경부 2차관으로 승진한 박 전 차관은 같은 해 8월 ‘카메룬 에너지·광물 투자 포럼’을 개최하는 등 CNK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양새를 보였다. 무엇보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CNK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거래에서도 박 전 차관이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CNK 주가 조작 의혹을 폭로했던 무소속 정태근 전 의원도 “오 대표가 보유하던 BW가 권력 실세 주변 인물 두 명에게 취득가 이하로 넘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즉 BW를 헐값에 넘겨받아 상당한 시세 차익을 올렸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박 전 차관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은 그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를 했지만 결국 혐의를 입증할 만한 단서를 확보하진 못했다. 주가조작 가담 등의 혐의로 김은석 전 외교통상부 에너지대사를 포함해 CNK 임직원 5명만을 불구속 기소하는데 그쳤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CNK 사건 을 검찰의 대표적인 실패 수사로 보고 있다. 특히 박 전 차관과 관련한 혐의점은 검찰이 아예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거나 했다 해도 수박 겉핥기에 그쳤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일련의 ‘불평등 수사’ 흐름과 재판 분위기가 임준호 변호사의 자살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건의 몸통 순으로 본다면 윗선은 모두 이리 저리 빠져나가고 ‘곁가지’만 남은 상황에서 이번 자살 사건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 김진욱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CNK 사건은 자원외교를 주창했던 MB정권의 ‘다이아몬드 게이트’로 불렸기 때문에 더욱더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박 전 차관을 둘러싼 모든 의혹에 대해서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