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수원의 경기에서 차두리(왼쪽)와 정대세가 볼을 다투고 있다. 사진제공=FC 서울
올 시즌 프로축구는 K리그 클래식(1부 리그)과 챌린지(2부 리그)란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프로축구 출범 30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승강제가 시행되는 한 시즌이기에 그 의미와 파장은 컸다.
하지만 시스템을 바꾼다고 해서 한동안 인기몰이에 어려움을 겪던 축구장에 관중이 금세 가득 들어찰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상 최초의 강등 구단들이 지난해 말 탄생했고, 올 연말부터는 진짜 1, 2부 리그를 오가는 경우가 발생하기에 크게 흥미를 줄 수 있지만 폭발적인 관중몰이를 이끌 만한 스타는 2%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부산을 연고로 한 대우 로얄즈와 인천 유나이티드, 지금은 도민구단 경남FC를 이끌고 있는 안종복 사장은 스타들을 강조해왔다. 원조 ‘꽃미남’ 안정환을 발굴하고 직접 키웠던 안 사장이다. 그는 항상 “스타가 있어야 프로축구가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정환의 경우, 최소 7000~8000여 명의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다는 후문. 1990년대 후반기 안정환(부산)-이동국(포항)-고종수(수원) 트로이카를 중심으로 K리그 열풍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물론 최근에도 스타들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남 구단도 얼마 전까지 윤빛가람(제주 유나이티드)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던 여성 관중수가 큰 폭으로 줄어들었음을 실감해야 했으니 말이다. K리그를 대표하는 FC서울도 박주영(셀타비고), 이청용(볼턴), 기성용(스완지시티) 등이 유럽에 진출한 이후 이렇다 할 스타들이 배출되지 않고 있었다.
올해에 안정환-이동국-고종수에 버금가는 스타 라인업이 탄생했다. 또 다시 트로이카 시대가 활짝 열렸다. 정대세(수원 삼성)-차두리(서울)-이천수(인천) 등이 그 중심에 섰다. 드디어 프로축구계의 생존을 향한 몸부림이 ‘통’했다. 공격수(정대세)-수비수(차두리)-미드필더(이천수)로 각기 다른 포지션처럼 각자 지닌 사연도 남달랐기에 의미도 컸다. 요즘처럼 스토리가 중시된 적도 없었고 정확히 부합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슷한 행보를 걷고 있어 흥미를 더해준다.
인천의 이천수(왼쪽)가 수비수를 제치고 있다. 사진제공=인천 유나이티드
이천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정대세-차두리 콤비에 비해 악동 이미지가 강하다. 수원과 전남 드래곤즈 등지에서 임의탈퇴를 밥 먹듯 당했고, 소속 팀 코칭스태프와의 주먹다짐, 심판에 대한 주먹감자 세리머니, 기분 좋은 우승 파티에서의 후배 선수 폭행 등으로 각종 기행을 일삼아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하다는 ‘축구 천재’ 이미지가 크게 퇴색됐다. 일련의 사고들이 정도의 차이일 뿐, 단순한 루머가 아닌 거의 전부 사실이기에 우려의 시선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를 떠나 이천수를 영입하면서 인천이 얻은 효과는 상당하다는 게 축구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K리그 그라운드 위에서 이들 3인방의 행보는 일단 나쁘지 않다. 비교적 좋은 경기력으로 팀에 보탬을 주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4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치러졌던 K리그 클래식 8라운드였다. 나란히 공격 포인트를 올려 갈채를 받았다. 정대세는 대전 시티즌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차두리도 7경기 연속 무승의 사슬을 끊는 대구와 홈 경기 어시스트를, 이천수는 전북 현대와 홈 경기에서 역시 어시스트를 배달해 올 시즌 첫 공격 포인트를 달성했다.
‘오직 이들만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진 않겠지만 팬들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이들을 보유한 구단들 또한 마케팅 효과가 커졌다고 인정한다. 수원과 서울은 정대세와 차두리 입단 기자회견을 따로 진행할 정도로 쇄도하는 주변 관심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인천도 당연히 이천수 입단식을 별도로 거행했다. 일부 구단들은 자신들의 홈 경기에 맞춰 이들을 위한 ‘○○○ 데이(Day)’까지 마련했다. 심지어 이들을 보유하지 못한 구단들도 덩달아 반사이익을 받고 있다. 3인방이 떠나는 원정 경기 때조차 화제가 되고 있으니.
이들 3인방의 자세도 좋다. 정대세는 최대 라이벌전(서울전)에서 가장 뼈아픈 경고누적 퇴장을 당했을 때도 경기 후 주저하지 않고 기자들 앞에 나와 당당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고, 차두리 역시 최대 라이벌전(수원전)에서 아쉬운 결과(1-1 무승부)를 안았음에도 주저함 없이 원정 경기장 인터뷰 룸에서 한국 무대 데뷔 소감을 전했다. 절로 스토리텔링이 됐고, 뜨거운 화제가 됐다. 말조심해야 할 이천수도 아직까진 정제된(?) 코멘트를 통해 조금씩 소통하고 있다.
“내가 못했다고, 또 기분 나쁘다고 인터뷰를 피하는 건, 기자와 마주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건 진정한 프로의 자세가 아니다.”(정대세. 2월 수원 유니폼을 입고 데뷔전을 치른 센트럴 코스트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예선 1차전 원정을 앞두고)
사연 많은 3인방의 맹활약 덕분에 K리그가 모처럼 활짝 웃고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