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공과 주공의 통합이 가속화되자 토공 노조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종상 토공 사장 | ||
이 사장으로서는 노조와 정부의 입장을 잘 조율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렇지만 취임 직후부터 이 사장은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며 갈등을 키워오다 기어이 지난 12월 19일 아침 노조가 사장실을 점거하는 사태마저 벌어졌다.
12월 18일 토공노조는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통합법안인 ‘대한토지주택공사법’을 강행 처리하기로 논의한 것과 관련해 19일 오전 7시 30분 긴급노사협의회를 개최하기로 사측과 합의했다. 그러나 이날 아침 이종상 사장이 회의장에 늦게 나오자 사장의 무성의한 태도에 항의하며 그 자리에서 사장실을 점거했다. 뒤늦게 경영진을 비롯한 직원들이 이를 막기 위해 동원됐지만 노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사실 노조와 이 사장이 그간 쌓아온 감정의 골 때문에 사장실 점거 농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이 사장은 지난 7월 취임 직후부터 노조로부터 “주택공사와의 통합에 대해 찬성, 반대의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받았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갈등을 키워왔다. 노조에서 이 사장을 경계한 데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으로 여겨지는 그가 공기업을 구조조정하려는 정부와 뜻을 같이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노조는 신임 사장 취임 후부터 지금까지 150일 넘게 분당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가 이뤄지던 때는 대낮에 노조원들이 “사장실에 대못을 박아버리겠다”며 각목과 망치를 들고 쳐들어가기도 했다. 이 때문에 후생팀의 젊은 직원들이 노조를 막아내느라 진땀을 뺐다. 국회의원들이 토공 직원들의 과다한 복지 등에 대해 질타를 하자 이 사장이 저자세로 나오며 직원들을 감싸주지 못한 게 불씨가 됐다는 후문이다.
노조와의 갈등은 현수막 철거에서도 나타났다. 노조에서는 300만 원을 들여 건물 전면을 뒤덮는 통합 반대 현수막을 달았으나 사측에서 이를 떼어버린 것. 노조 측은 “주공은 노·사가 합작으로 통합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토공은 사측에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조는 현수막을 다시 제작할 예정이다.
반면 대한주택공사는 전국에 건설한 임대주택에 ‘주공·토공 통합 실현’이라는 현수막을 부착해 분위기를 다잡고 있다. 현수막 외에 언론 광고도 꾸준히 내고 있다. 최재덕 주공 사장도 언론과의 인터뷰에 적극 나서며 통합 불가피론을 전파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최 사장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전형적인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인사”라며 꼬집은 인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인 이종상 토공 사장과 ‘소망교회 인맥’인 최재덕 주공 사장이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것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수도 있는 셈이다. 이 사장은 전남 출신의 인사처장을 전보시키고 영남 출신의 인사처장·인사팀장을 발령해 빠르게 조직 장악에 나섰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11월 20일 홍준표 의원이 ‘대한토지주택공사법’을 재발의하면서 주택공사-토지공사 합병 논의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주공과 토공의 통합을 명문화한 이 법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되기만 한다면 법적으로 두 공기업은 합병을 피할 수 없다. 법안은 주공과 토공의 통합을 2009년 10월까지 완료할 것을 못 박고 있기 때문. 이에 대해 토공노조는 “아무런 대안도 없이 10개월 내에 합병을 완료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대체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 사장사장실을 점거한 노조원들의 모습. | ||
그러나 사장실 점거에도 불구하고 이종상 사장이 노조 편에 설지는 미지수다. 12월 중순에 발표됐어야 할 정기인사가 모두 올 스톱된 것을 보면 이 사장의 의중을 가늠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토공의 올해 승진예정자는 350여 명 규모. 토공의 한 인사는 “올해는 700여 명이 승진 심사 대상자인데, 보통 2배수를 올리는 것을 보면 승진 규모는 350명 수준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승진은 미적미적 미뤄지고 있다.
승진인사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토공 홍보실은 “사장의 해외 출장으로 결재가 늦어진 것일 뿐 인사는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익명의 토공 관계자는 “보통 12월 초에 승진 대상자들이 확정돼야 이를 바탕으로 본사와 지사 후속 발령을 결정해 한꺼번에 발표하는데 아직 승진자들에 대한 결재마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주공과의 합병 문제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합병이 결정될 경우 인원·조직 재배치 등 인사 골격을 다시 짜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장은 정치권과 노조의 눈치를 살피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합병에 반대한다면 인사발령을 예정된 수순대로 밀어붙이고 대체법안을 요구해야지만 기존 법안의 통과를 염두에 두었다면 인사를 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한편 토공노조 측은 사장실 점거에 대해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얼마만큼 받아들이는지에 달려 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물러설 수 없다”고 답해 노사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종국 한경비즈니스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