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한화 회장 | ||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8조 원가량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를 6조 원가량으로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이 금액도 현재의 사정을 감안했을 때 버거울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설령 자금 확보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승자의 저주’에 발목 잡힐 것이라는 싸늘한 시선도 있다. 한화의 한 관계자도 “6조 원도 최대치로 잡은 것이다. 추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수전 승리 당시 “자금 조달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던 한화가 인수 대금 목표치를 내린 이유는 우선 1조 9000억 원가량을 대출해주기로 했던 금융기관들이 그 규모를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금융기관은 한 자릿수이던 이자도 10%로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한화와 손을 잡은 금융기관들이 태도를 바꾼 것은 국제 금융위기로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아 현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6000억 원가량을 투자하기로 했던 농협의 한 관계자는 “올해 해외 투자 등으로 손실을 많이 입은 상황에서 수익이 불확실한 사업에 투자한다는 것에 처음부터 논란이 있었다. 내년에도 경기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금액을 축소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자기 코가 석 자인 다른 금융기관들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이에 대해 금융권의 한 인사는 “조선업이 내리막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한화가 구체적인 수익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인수대금의 50%에 해당하는 4조 원가량을 내부에서 조달한다는 계획도 난관에 부딪칠 듯하다. 일단 대한생명 지분매각으로 1조 5000억 원을 마련하려던 당초 계획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 애초에 이 금액 산정은 대한생명 1주당 주가가 1만 원이라는 전제조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생명 주가는 현재 주식시장에서 5000원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시흥시에 위치한 군자매립지 매각 및 개발대금으로 1조 원을 조달하려던 계획도 어려운 고비를 맞은 상태다. 경기도가 한화-시흥시 간의 개발계획이 관련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하고 나서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부동산 매각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한화는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서울 장교동에 위치한 본사 건물을 비롯해 그룹이 보유한 건물들을 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현 부동산 시장에서 수천억 원에 달하는 건물을 선뜻 사들일 매수자가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된다.
이 때문인지 대한생명이 그룹에서 내놓은 매물들의 구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대한생명 측은 “그런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현재 그룹 안팎에서는 “계열사 중 현금동원력이 제일 좋은 대한생명이 결국 총대를 멜 것”이라는 얘기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를 앞두고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 전경. | ||
한화 측의 자금 조달이 계획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지 한동안 잠잠했던 계열사 매각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최근 대우조선해양 매각 주간사인 산업은행이 한화 측에 핵심계열사의 매각을 권유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더욱 확산됐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외부 차입금이 과도할 경우 M&A(기업 인수·합병) 후유증을 겪을 수 있으니 계열사를 팔아 자금을 마련하라는 얘기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지금 M&A 시장에서는 한화갤러리아 한화리조트 등 몇몇 계열사의 이름이 매각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오는 12월 29일 인수 본계약을 앞두고 있는 한화는 산업은행과의 협상을 통해 최대한 인수가격을 낮춘다는 전략이다. 한화는 우선협상대상자 계약 체결 당시 3% 이내에서 가격을 조정할 수 있도록 산업은행과 합의한 바 있지만 최근의 경제상황 등을 이유로 더 큰 폭의 가격인하 요구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노조·위원장 최창식)의 반대로 정밀실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산업은행과의 ‘협상카드’로 내세운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언급한 한화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작업이 지지부진할 경우 산업은행도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부실한 실사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압박할 경우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조의 실사 반대를 한화가 속으로는 반가워하고 있을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한화의 움직임을 달갑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산업은행 탓만 하며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으려는 한화를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재계 일각에서도 명쾌한 자금 조달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불안감만 키우고 있는 한화의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화그룹 내부에서도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들을 접할 수 있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전 계열사에 ‘자금동원령’을 내리고 초긴축 재정을 선포한 상태다.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특히 매각설이 돌고 있는 계열사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고 한다. 8년째 근무 중인 한 계열사 직원은 “누구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인수를)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