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시점에 부동산시장은 점점 좋지 않은 소식에 꽁꽁 얼어붙고 있다. 연일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부동산 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고 일선 부동산중개업소 역시 거래 중단에 일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속절없이 떨어지는 가격에 거래는 사실상 중단됐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흉흉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폭되고 있다. 대부분의 소문이 다 그렇듯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그 사실 확인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소문이 떠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2009년 부동산시장이 어려울 것임을 방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08년 하반기 들어 강남권 부동산중개업소를 중심으로 떠도는 소문 중 가장 자극적(?)인 것이 바로 서울 집값이 ‘3·4·5’가 될 것이라는 것. ‘서울 집값 3·4·5론’은 새해 부동산 값이 급락하면 106㎡(32평)형을 기준으로 강북권은 3억 원, 목동 및 분당은 4억 원, 강남권은 5억 원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다. 물론 일부 내 집 마련 실수요자들의 ‘희망사항’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최근 부동산시장 가격 하락세를 보고 있으면 그냥 루머로 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002∼2003년 강남지역 큰손들 사이에서 강남 아파트 값이 3.3㎡(1평)당 3000만 원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즉 106㎡(32평)형을 기준으로 10억 원을 넘는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강남권 아파트가 3.3㎡당 1500만 원을 훌쩍 넘어 2000만 원으로 달려가는 시절이었다. 급격하게 오르긴 했지만 ‘106㎡형=10억 원’이라는 공식은 당대 날고 긴다는 부동산 전문가들조차 코웃음을 칠 정도였다.
하지만 소문이 현실화되는 데에는 불과 3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이 3.3㎡당 1000만 원을 넘은 것은 2000년 초, 3.3㎡당 2000만 원을 돌파한 것은 2003년 하반기였다. 3년 만에 ‘더블’이 된 셈이다. 한 번 오르기 시작한 아파트 값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였다. 3.3㎡당 2000만 원을 돌파한 지 불과 2년 만인 2005년 하반기 들어 3.3㎡당 3000만 원을 넘는 아파트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1월 언론에 강남구에서 건립된 지 오래돼 주변 아파트에 비해 비교적 가격이 낮은 은마아파트 112㎡(34평)형이 10억 원에 거래됐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그 이후 불과 6개월 만인 2006년 하반기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삼성동 아이파크 등 강남권 인기 아파트를 중심으로 3.3㎡당 5000만 원을 넘기기도 했다.
과거 시중 부동산 전문가들의 족집게 예측을 감안해 볼 때 ‘서울 집값 3·4·5론’이 전혀 터무니없다고 무시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최근 부동산시장을 보면 일부 지역의 경우 그럴 조짐도 보인다. 서울 강북권 아파트는 3.3㎡당 1000만 원선이 깨진 곳도 속출하고 있다. 강북권에서는 106㎡(32평)형이 3억 원 아래로 떨어진 아파트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서울 목동과 경기도 분당 역시 아파트 값이 급락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분당의 아파트 값 하락세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파르다. 분당구 A 아파트 162㎡(49평)형이 6억 7000만∼6억 8000만 원에 매물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아파트의 경우 지난 2006년 말 최고 13억 원까지 시세가 형성됐었다. 분당과 인접한 용인 죽전지역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불과 2007년만 해도 죽전지역의 경우 3.3㎡당 2000만 원에 육박했었다. 하지만 최근 3.3㎡당 1000만 원이 깨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실제로 죽전의 모 아파트 160㎡(48평)형은 과거 8억 원이 넘었는데 최근 비밀리에 4억 원에 급급 매물이 나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모 부동산 컨설팅사 사장은 “현재 부동산뱅크나 국민은행에 나와 있는 시세를 주로 참고하는데 아직 급락한 가격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며 “현재 나와 있는 시세보다 적어도 20% 이상 낮춰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강남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언론은 경쟁적으로 강남 집값이 급락하고 있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특히 재건축을 한 잠실 일대 아파트 입주 물량이 쏟아지고 있는 송파구의 경우 그 하락폭이 예상을 초월할 정도다. 송파구는 벌써 3.3㎡당 2000만 원이 깨졌고 모 인기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3.3㎡당 1500만 원 아래로 거래돼 주변 부동산중개업소들조차 놀랐다고 한다. 10억 원을 호가했던 송파구 B 아파트 112㎡(34평)형의 경우 현재 5억 7000만∼5억 8000만 원선에 매물이 나와 있다. 3.3㎡당 가격은 1700만 원으로 지난 2006∼2007년 강북 인기 아파트 값과 비슷한 수준인 셈이다.
최고 인기 지역인 강남구 대치동, 도곡동에서도 3.3㎡당 2000만 원을 위협 받는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C 아파트 104㎡(32평)형의 경우 최고 12억 원 가까이 거래되던 것이 7억 원선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3.3㎡당 2200만 원까지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대치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급급 매물이 아니라 매수자들이 원하는 가격에 맞춰주겠다는 매물도 비밀리에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때문에 강남권 핵심 지역인 대치, 도곡동과 목동 일부 단지를 뺀다면 ‘서울 집값 3·4·5론’이 이미 현실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의 2009년 부동산시장 예측을 들어 보면 이러한 소문이 곧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에서 예상하듯 2009년 상반기가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부동산 가격에서 적어도 20∼30% 정도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일부에선 2009년 4분기 정도가 바닥이 아닐까 하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긴 하지만 현재 경제상황을 봤을 땐 그 가능성은 50 대 50 정도”라고 전망했다.
더불어 아파트 값 급락에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넘쳐나면서 미분양과 관련한 각종 소문도 돌고 있다. 과거 미분양 전문 처리 업체들은 건설업체의 미분양 물량을 최초 분양가 대비 70∼80% 수준에 매입, 5% 내외 이익을 얹어 알음알음 팔곤 했다. 그것도 1층과 꼭대기층, 전망이 좋지 않은 동 등 악성 미분양 물량을 넘겨받아 ‘땡처리’를 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시장이 급락하자 최근 분양가의 거의 50% 수준까지 낮춰 로열층조차 ‘땡처리’ 업자에게 넘기고 있다는 소문이다. 말 그대로 ‘반 토막 아파트’지만 최근엔 이조차 팔리지 않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 분양대행업체 사장은 “개인들의 자금난과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불투명해지면서 ‘반 토막 아파트’조차 처리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각종 부동산 대책이 나와도 향후 집값이 더 떨어진다고 한다면 그 누가 미분양 아파트를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김명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