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까지 독일 무대를 누볐던 남북한 절친 선후배 차두리-정대세는 한국에선 각각 서울-수원에 안착, 라이벌 관계가 됐다. 사진제공=SBS
# 베테랑들의 수다
2012 올스타 대표 훈련에 참가한 김은중과 이동국. 사진제공=강원FC
하지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베테랑들이 있다. 어느덧 한국나이로 30대 중반에 접어든 둘, 1979년생 동갑내기 이동국(전북 현대)-김은중(강원FC)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프로축구의 첫 번째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들이다. 토종 공격수 기근이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는 한국 축구이지만 같은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둘은 맹위를 떨치며 여전히 녹록치 않은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까칠하기로 정평이 난 축구 전문가들조차 “활동량이야 차이가 있겠지만 이 추세라면 40대가 넘어서도 필드를 누빌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을 정도.
“네가 있어 내가 자극을 받는다. 친구가 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왜 뛰고 있는지 삶에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이동국과 김은중의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 눈빛만 봐도 통한단다. 그만큼 서로에게 활력소가 됐고, 또 윤활유가 됐다. 아무래도 시즌이 진행 중일 때는 간혹 전화통화로 안부를 주고받고, 원정 경기 때나 얼굴을 보게 되지만 일정이 없을 때면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김은중이 취미로 삼고 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향긋하게 내리면 이동국이 한 잔 음미하는 모습도 역시 비시즌 간혹 접할 수 있는 장면이다.
# 입대도 나란히
요즘 한국 축구의 중심을 이룬 3인방이 있다. 28세 동갑내기인 이근호(상주 상무)-김승용(울산 현대)-하대성(FC서울)이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측면 공격수로 주로 활약하는 이근호가 보다 공격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은 나란히 소속 팀 중원을 책임지고 있다. 모두 아마추어 축구 명문 부평고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고, 지금에 이르렀다.
특히 이근호와 김승용은 지난 시즌 축구 인생 최고의 한 해를 함께 보냈다. 울산이 내로라하는 아시아 강호들을 연파하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등극했을 때, 최고의 공신들은 바로 이근호와 김승용이었다. 미드필드 오른쪽 측면에서 배달되는 김승용의 날카로운 크로스에 이은 이근호의 슛은 당시 울산에서만 나올 수 있는 전형적인 축구 공식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의 진지함은 잠시. 서로 보기만 하면 장난을 걸고, 짓궂은 농담도 심심찮게 던진다. 심지어 작년 12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에 출전했을 때도 울산 선수단이 머문 호텔 로비에서 둘이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을 자주 찾을 수 있었다. 김승용은 친구가 군 입대를 앞뒀을 때는 격려 대신, “넌 앞으로 혼 좀 나야해”라며 웃음 가득한 농담을 던져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물론 하대성도 이들의 활약에 뒤지지 않았다. 주장 완장을 차고 서울의 K리그 우승을 진두지휘했다. “(이)근호가 아시아 최고가 됐고, 난 K리그 최고가 됐다. 이것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여기에 한 명을 더 추가할 수 있다. 진짜 친하다 못해 군 입대까지 함께 한 관계, 백종환(상주 상무)이다. 이근호와 18년 세월을 함께 했던 사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나란히 붙어 다녔다. 이름값은 아무래도 성인 대표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친 이근호가 높지만 백종환도 국내 무대에서는 준척으로 통한다. 원 소속 팀 강원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2부 리그 강등을 면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그래도 우정이 먼저. “1년만 더 뛰고 군 입대를 하라”는 구단의 부탁이 있었지만 친구 이근호가 “같이 입대하자”고 하자 동반입대를 결정했다. 올해 백종환은 이근호와 함께 상무의 내년 시즌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위해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
# 국내외를 넘나들며
대표팀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이나 A매치 평가전을 앞두고 파주NFC에 소집될 때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김신욱(울산 현대)과 손흥민(함부르크SV)의 진한(?) 우정이다. 각각 25세와 21세로 나이차가 있음에도 늘 붙어 다닌다. 장난도 많은 편. 손흥민이 주로 먼저 시비를 걸면 김신욱이 곧바로 보복을 가한다. 그래서 대표팀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둘을 놓고 마치 만화영화 캐릭터인 ‘톰과 제리’로 비유하곤 했다.
박주영(셀타비고)도 많은 축구 선수들의 친분 중심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자투표 ‘최악의 인터뷰이’로 꼽히는 박주영이지만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는 거의 ‘장난의 화신’과 같다. 항상 선수단 분위기를 주도하고, 웃음을 유발한다. 동갑 이근호와도 친하고 대구 청구고 출신이자 전북을 거쳐 작년 말 상무에 입대한 이승현과도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여배우 한혜진과의 열애설로 최근 국내 축구계와 연예가를 뜨겁게 했던 기성용(스완지시티)도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청용(볼턴 원더러스) 등과 남다른 친분이 있고, 구자철의 경우는 홍정호(제주 유나이티드)와 ‘절친’으로 축구계에 유명하다.
그 외에 ‘너무 친해서’ 행보마저 비슷한 경우도 있다. 나란히 유럽 빅(Big) 리그에서 활약하다 한국에 안착한 선수들이다. 차두리(FC서울)-정대세(수원 삼성)는 불과 얼마 전까지 독일 무대를 누볐던 남북한 절친 선후배. 한국의 차두리와 북한 국적의 정대세는 문자도 자주 주고받고, 전화통화도 종종 한다. 정대세가 거취를 고민할 때 차두리가 자신의 부친 차범근 SBS 축구 해설위원(전 수원 감독)과 인연이 있는 수원행을 강력하게 추천했던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차두리는 수원의 최대 라이벌인 서울에 안착했으니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에 대한 차두리의 해명. “그 때만 해도 제가 K리그 클래식에 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죠.”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