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공장 전경. 쌍용자동차는 9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 ||
상하이차가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택한 배경으로 우선 기술 유출 논란을 들춰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04년 10월 쌍용차 채권단과 본계약 체결로 상하이차가 쌍용차 최대주주 지위에 오르면서부터 쌍용차 핵심기술의 중국 유출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선진국에 비해 자동차 기술이 한참 뒤처지는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진짜 목적은 기술이전에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까닭에서다.
이번 법정관리 발표에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노조·지부장 정일권)는 “상하이차가 최대주주의 의무를 내팽개쳤다”며 분개하고 있다. 쌍용차 경영에는 무관심한 채 기술 유출 등 잇속만 차리다가 결국 쌍용차 경영상태가 심각해지자 손을 놔버렸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인수 당시부터 의도했던 기술을 모두 이전받은 상하이차가 유동성 위기에 놓인 쌍용차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보다 발을 빼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술 유출 관련 검찰 수사가 상하이차에 적잖은 부담을 안겨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쌍용차 하이브리드 자동차 설계 기술 무단 유출’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해온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부장검사 구본진)는 지난해 7월 쌍용차 본사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검찰이 외국 회사와의 합법적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술 유출이 불법인지에 대한 법리 검토를 하던 끝에 압수수색 카드를 뽑아들었다는 점에서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법’ 위반에 대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검찰의 쌍용차 기술유출 수사는 지난 12월 초에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수사에 앞서 국정원의 쌍용차 기술 유출 관련 내사도 강도 높게 진행됐다고 한다. 재계에선 국내 사정기관들이 쌍용차 핵심기술이 적절치 않게 중국 쪽으로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12월 23일 상하이차는 ‘노조가 구조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이후로 중국 언론들도 ‘상하이차가 쌍용차와 분리 준비를 마쳤고 1월부터 자본 철수가 시작될 것’이라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재계에선 상하이차 측이 검찰 수사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서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용으로 한국 철수설을 흘렸다고 보는 분위기다.
자동차 기술력이 뒤처진 중국 상하이차는 쌍용차 인수를 통해 선진 SUV 기술을 확보했으며 다른 국가의 자동차 메이커 인수에 계속 나설 태세다. 그러나 쌍용차 인수를 통해 기술을 불법으로 유출한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로 드러날 경우 상하이차의 자동차 업체 인수 전략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는 정서가 각국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진작 마무리된 쌍용차 기술 유출 수사 발표가 지금껏 이뤄지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정치적 외압’이 존재할 가능성도 거론돼 왔다. 검찰이 기술 유출 쪽으로 공식 결론을 낼 경우 자칫 한·중 외교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까닭에서다. 검찰 수사가 마무리됐을 무렵 쌍용차는 현금 부족으로 12월 임금조차 제때 지급하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쌍용차에 상하이차의 자금 지원이 절실했던 터라 상하이차를 범죄집단으로 규정짓는 수사 발표가 나올 경우에 대한 정부 당국의 부담감이 제법 컸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검찰이 기술 유출 수사와 관련,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낸다면 이 또한 간단치 않은 논란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사실 관계를 떠나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 자본에 고개를 숙였다’는 비아냥거림이 등장할 수도 있다. 재계의 여러 관계자들은 “검찰수사 결과 기술유출이 없었다고 결론이 났다면 상하이차와 쌍용차 그리고 정부 당국 간에 오해가 없게끔 먼저 수사 결과를 내놓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