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과장까지 올라간 A 씨는 그동안의 남모르는 빚 때문에 명예퇴직을 선택한 케이스다.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식 부동산 등 여러 방법으로 투자를 했으나 대부분 실패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투자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A 씨는 명예퇴직 공고가 나오자마자 주저없이 신청했다. 추가로 나오는 위로금이 3년치 연봉에 가까우니 그것만으로도 일단 빚은 청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A 씨는 주식투자로 손해를 본 것이 아까워서 퇴직금으로 전업투자에 나섰다가 낭패를 봤다. 남은 퇴직금의 반이나 날려버린 것이다. A 씨는 “퇴직금의 절반을 날리고 나니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심경을 털어놨다. 결국 남은 퇴직금은 아내에게 맡기고 다시 취업을 하려고 알아보았으나 본인이 원하던 수준의 직장엔 못 들어갔다. A 씨는 현재 동문 선배가 경영하는 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물론 급여는 전 직장의 절반 수준이다. A 씨의 경우 명예퇴직을 하면서 받은 위로금으로 부채를 청산하고 퇴직금은 목돈으로 저축을 한 후에 다른 직장을 빨리 구했으면 지금같이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B 씨는 오랜 공직 생활을 한 공무원이었다. 당연히 연금 지급 대상이다. 사실 퇴직 전에는 퇴직 후에 대한 고민에 자주 밤잠을 설쳤다. 직장에서 해주는 퇴직 전 각종 교육이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퇴직 후에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B 씨에게 한 지인이 귀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어차피 퇴직 후에 도시 근교의 한적한 교외에 정착하려던 B 씨에게 그 지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조그만 승마클럽에 투자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일거리도 생기고 평소 B 씨가 원하던 대로 농촌생활을 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니 좋은 투자 방법이라는 제안이었다.
연금의 일부는 목돈으로 신청할 수 있으니 기존의 퇴직금 즉 연금을 전부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한 B 씨는 나름대로 시장조사를 한 끝에 투자 결정을 내렸다. B 씨는 당연히 매월 일정부분의 수입이 보장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의 현실이 어디 본인 마음같이 다 되던가. 그 승마클럽의 경영 상태는 엉망이었다. 회원들의 수입만으로는 말들의 사료 값 대기도 빠듯한 사정이었던 것이다. 지인이 B 씨에게 투자를 제안했던 것도 알고 보니 토지임대료도 내기가 힘들어서 당장의 임시방편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취미로만 승마를 해보았지 막상 실제로 본인이 해보려니 만만치 않았다. 공무원 생활이 몸에 배어있던 B 씨에게는 전혀 맞지 않았다. B 씨는 결국 6개월 만에 투자금을 포기한 채 손을 떼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전 직장의 배려로 후배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B 씨 같은 경우는 전형적으로 퇴직금을 잘못 활용한 경우이자 완전히 실패한 케이스다. 본인이 오랜 직장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자신만의 사업이나 투자를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정이다. 막상 본인의 직장에서 가지고 있던 타이틀을 버리고 사회라는 정글의 한복판에서 맞부딪히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을 터득하지 않고 벌이는 투자는 ‘백전백패’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만일 B 씨가 지인 권유의 사업체에 투자하지 않고 그 자금으로 토지를 구입했더라면 투자목적이나 생활목적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B 씨는 요즘 퇴직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퇴직 후에 절대로 곧바로 투자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투자를 하려면 본인 자신이 그 일이나 업종에 최소한 1년 이상은 직접 경험을 해 본 후에 하라는 조언이다.
대리급 5년차에 금융회사를 명퇴한 C 씨는 성공한 케이스다. 평소 회사의 지역색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는 명예퇴직을 결심하게 된다. 물론 아내는 반대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과 당장에 수입이 없으면 겪어야 하는 경제적인 현실에 아내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아내에게 C 씨는 두 가지를 약속했다. 퇴직 후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현재 직장 수준의 기업에 취업을 하겠다는 것과 퇴직금과 추가위로금은 아내에게 맡기고 저축이나 투자 방법은 부부가 공동으로 협의해서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아내도 동의를 했고 그 사이에 C 씨는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일에 집중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명예퇴직을 공고하고 마감까지는 보통 15일에서 30일 정도의 기간이 있다. 이 기간 안에 숙고해서 결정하라는 의미에서 충분히 시간을 주는 것이다. 동료들과 상사는 극구 만류했으나 C 씨는 부서에서 1번으로 퇴직신청을 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에 들어갔다. 그러기를 한 달. 그는 마침 자신의 경력 정도의 직원을 모집하는 더 큰 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C 씨는 아내에게 퇴직금과 위로금을 전부 맡겼다. 거의 4년치 연봉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60%는 정기예금, 20%는 연금신탁에 가입했다. 나머지 20%는 마침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해서 조금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전세를 옮기는 데 충당했다. 정기예금도 은행과 저축은행, 새마을금고에 분산해서 가입했다. 아내와 사전에 상의한 것은 물론이고 펀드 열풍이 불었을 때도 소심한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그대로 매년 갱신하면서 유지하고 있다.
C 씨는 요즘 금융위기로 전에 다니던 금융회사에서 다시 명예퇴직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적당한 시기에 퇴직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C 씨가 성공적인 명예퇴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저축할 수 있었던 것은 현명한 C 씨의 판단도 있었지만 여기에 적당한 견제와 제어 역할을 해준 아내의 덕이 컸다. 물론 운도 따랐지만.
많은 사람들이 명예퇴직이나 퇴직이라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마냥 실망만 해서는 안 된다. 목돈인 퇴직금과 위로금을 잘 활용하고 저축해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아마도 제일 좋은 방법은 사전에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나 주변과 충분히 상의하고 누가 뭐래도 무조건 안전한 상품에 예치하거나 투자하는 것이다.
한치호 재테크전문 기고가 hanchi10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