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SKT, LGT 등 관계자들은 지난 4일 공정거래위원회를 방문해 KT- KTF 합병 공식 반대 입장을 밝혔다. 오른쪽은 이석채 KT 사장. | ||
신대전’의 기선은 KT가 잡았다. 지난 1월 14일 취임한 이석채 사장은 “KTF 합병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 만인 21일 KT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합병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남중수 전 사장의 구속으로 합병이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발 빠른 행보였다. 반면 경쟁사들은 허를 찔린 듯한 모습이었다.
KT 측은 “세부적인 합의만 남았을 뿐 합병엔 큰 걸림돌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는 합병의 키를 쥐고 있는 방통위가 KT에 긍정적인 제스처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은 이 사장 취임 당시 축하 영상을 보내 “정부가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며 합병 추진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합병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엔 이병기 방통위 상임위원도 “민간 사업자들의 결정에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는 없다”고 밝혀 방통위가 승인 쪽으로 가닥을 잡았음을 내비쳤다.
방통위는 KT 합병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의견을 요청한 상태다. 기업결합에 따른 시장 경쟁성 제한 등에 대해서 공정위가 제시하는 의견을 수렴해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다. 그동안 공정위는 KT 합병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SKT LGT 등 합병에 반대하는 업체들이 공정위 판단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 공정위의 태도가 바뀌었다. 긍정적인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방통위에서 이미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굳이 다른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백용호 공정위 위원장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심사를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밝혀 자칫 합병 심사가 지지부진할 것을 우려하던 KT의 고민을 덜어줬다.
SKT를 대표로 하는 합병 반대 진영도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는 모습이다. 정만원 SKT 사장은 KT가 합병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던 2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합병할 경우 통신시장의 독점이 심화돼 결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다. 무조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KT 수장이 직접 나서서 KT를 향해 포화를 날린 것이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월 정 사장이 SKT 새 사장으로 임명될 당시 내부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최측근인 정 사장을 KT 합병에 대비한 공격수로 내세운 것’이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LGT 역시 SKT와 보조를 맞추며 합병 반대를 외쳤다.
지난해 SKT가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을 인수할 때 KT와 손을 잡았던 LGT가 이번에는 SKT와 한 배를 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SKT와는 다소 온도차를 보인다. ‘조건부 반대’를 내걸고 있는 것이다. LGT는 KT-KTF의 합병이 불가피할 경우 유선망 분리, 결합상품 판매 규제, 단말기 보조금의 법적 금지 등 7개 조건을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밝혔다.
LGT 내부에서는 KT와 SKT가 싸우는 것을 반기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LGT는 지난해 이동통신 3사 중 가장 좋은 실적을 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SKT와 KTF 모두 당기순이익이 전년에 비해 줄어든 반면 LGT는 유일하게 증가했다. 또한 SKT와 KFT가 올해 사업계획조차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LGT만 ‘순증가입자 30만, 영업이익률 10% 달성’ 등과 같은 목표를 세웠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이동통신시장 1, 2위인 SKT와 KTF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으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반사적으로 얻은 것이라고 본다.
재계에서는 SKT의 속내가 LGT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신세기통신과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해 덩치를 불려왔던 SKT로서는 KT의 합병 반대에 대한 명분이 약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더군다나 2010년에는 SK브로드밴드와의 합병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찬성 쪽으로 기운 방통위·공정위와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SKT가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해 전략적으로 강경 모드를 취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SKT가 원하는 유선망 분리를 따내기 위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할 때 KT의 강한 반대로 황금주파수(800㎒)를 내줘야 했던 아픔을 SKT는 잊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소 차이가 있지만 SKT와 LGT가 합병을 반대하는 명분은 비슷하다. 통신시장에서 KT의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보조금 경쟁 촉발 등 마케팅 비용 과다지출 등으로 소비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SKT와 케이블업체들이 공정위에 각각 제출한 의견서에도 이러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KT-KTF가 합병한다 해도 SKT의 영향력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과다한 마케팅 비용 지출은 없을 것”이라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현재 KT와 반 KT 진영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방통위와 공정위는 물론 정치권, 언론 등과 경쟁적으로 접촉을 하고 있다. 특히 SKT는 국회에서 잇달아 공청회를 여는 데 성공하며 ‘합병 이슈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대응을 자제하던 KT 역시 상대방의 공세가 거세지자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통신업체들의 싸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 의원 측 관계자는 “겉으로는 소비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진정 소비자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공청회 등에서 따져볼 것”이라고 밝혔다. 정보통신부 고위 관료 출신 한 인사는 “심사 전부터 방통위에서 불필요한 말로 오해를 불렀다. 결과가 나도 (반 KT 진영이) 선뜻 수긍하지 못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동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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