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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를 당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성격 때문이라고 한다. 피해자들 중 남들과 원만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P 씨(여·25)는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를 힘들어한다. 부서를 옮길 때마다 겨우겨우 적응을 하곤 했는데 얼마 전 새로 옮긴 부서에서도 따돌림을 당해 한숨짓고 있다. 동료들은 P 씨를 유령 취급한다. 한 사람은 고아인 그녀 앞에서 사사건건 ‘부모 없이 자란 사람들은 티가 난다’, ‘역시 딸은 엄마 밑에서 배워야 한다’면서 대놓고 말할 정도다.
“너무 엄격한 조부모 밑에서 일찍부터 집안일만 하면서 자랐어요. 또래 친구들이나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죠. 일을 잘해도 욕을 듣기 일쑤였고요. 그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질 못하겠어요. 절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아요.”
P 씨와는 달리 학교 다닐 때부터 왕따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성격이 좋다고 자부하던 K 씨(30)도 요즘 따돌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는 같은 팀 한 살 위 선배의 ‘은따’(은근한 따돌림)로 고민 중이다. 점심 때 그가 선배에게 “탁구 치자”고 하면 “피곤해서 안 한다”고 하다가 뒤에 다른 후배가 지나가면 선배는 바로 “탁구 한 게임 하자”고 제안한다. 같은 팀의 후배까지 선동해 K 씨를 따돌리고 있다.
“이런 일이 6개월 넘게 지속되니 미치겠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어서 ‘왜 나하고는 안 놀아주느냐’고 말하고 싶지만 유치하게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그 선배한테 말을 걸어 보는데 들릴 듯 말 듯 대답하죠. 그냥 확 패버릴까도 했지만…. 참 답답하네요.”
여성들이 많은 직장일수록 따돌림 현상이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파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고 튀는 동료를 쉽게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계 항공사에 근무하는 J 씨(여·29)는 소신대로 살려다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한번은 동료가 작은 명품 가방을 사갖고 와서 ‘400만 원을 카드로 질러서 한 달 동안 김밥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에 핀잔을 줬어요. 평소에도 제가 눈엣가시였는지 그 일을 계기로 다들 슬슬 저를 피하기 시작하더군요. 결국 회사 내 각종 모임에서 배제됐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게 속편해요.”
여자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불쌍한(?) 남자도 있다. 올해 33세가 된 기혼남 M 씨. 얼마 전 새로운 부서로 인사이동이 있었다. 전 부서와 다르게 여직원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이곳에는 두 개의 파벌이 있었는데 M 씨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속’이 없는 상태다. 한마디로 중립이다. 그러다 두 살 아래의 여직원이 조금씩 그를 ‘따’시키기 시작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다들 커피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저에게는 차 한 잔 건네거나 같이하자는 소리가 없었어요. ‘남자가 쩨쩨하게 별걸 가지고 그러느냐’ 싶어 몇 개월을 참았는데 다들 은근히 저를 따돌리는 분위기로 가더군요. 그래서 먼저 그 여직원한테 차 한 잔 하자고 했는데 아주 쌀쌀맞게 거절당했죠.”
피해자 입장에서는 ‘왕따 취급’이 그저 억울한 일이겠지만 가해자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항변한다. 중견기업 수출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B 씨(여·28)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했다. 5년째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요즘처럼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서른다섯 노총각 K 씨 때문이다. 외부 영입 케이스인 K 씨가 회사에 온 지 7개월째인데 오래 전부터 동료들의 미움을 사고 있다.
“업무 특성상 영어를 쓸 일이 많긴 하죠. 하지만 K 씨는 매사에 영어로만 말하려고 해요. 다른 부서 사람들도 ‘도대체 한국 사람끼리 왜 그러느냐’고 수군거리고 있어요. 동료나 아랫사람들한테는 밉보이면서 상사한테는 어찌나 아부를 떠는지 눈꼴사나울 정도고요. 자기 자랑이 심해서 늘 ‘키 크지, 직장 좋지, 성격 좋지, 캐시 있지…’ 하면서 자신이 왜 결혼을 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아요.”
이뿐만이 아니란다. 상사 없을 때 흉보기는 기본이고, 바로 옆자리에서 사적인 통화를 큰 목소리로 30분 이상 하는 K 씨. B 씨는 그를 참아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모자란 업무 능력’도 왕따의 이유가 된다. 일부 기업의 경우 개인의 능력이 팀 내 성과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자인 H 씨(30)는 같은 부서에 있는 팀장이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프로그래머로서 실력이 한참 모자라 무시당하기 일쑤라고.
“다른 곳은 개인의 성격이 따돌림의 이유겠지만 IT 쪽은 조금 다르죠. 사이코 같은 성격이라도 일만 잘하면 인정받는 곳이 바로 이 세계에요. 그런데 그 팀장이 맡았다 하면 프로젝트가 진행이 안 돼요.”
프로그래머라는 직업 특성상 개인플레이가 많기 때문에 성격보다는 오히려 추진력과 실력 없이 상사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왕따의 원인이라는 것. H 씨는 “개인의 성과가 중요한 곳이라 처세술만 능통해서는 뒤처지고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피해자 입장에서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직장 내 따돌림이다.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끝나는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때론 왕따로 인해 치료하기 힘든 정신적 피해를 입기도 한다.
대기업에 다니던 아내가 명예퇴직을 거부하자 ‘퇴출프로그램으로 인한 왕따’를 당했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아내가 매일 울면서 전화하고 얼마나 괴롭혔으면 정신이상자처럼 행동했다. 밤마다 소리를 지르면서 누군가를 죽인다고 했다. 수면제와 정신과 약을 달고 살았다’면서 ‘따돌림이 한 사람에게 이렇게 큰 피해를 입히는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한때 왕따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정신적으로 큰 충격이나 수없이 계속되는 폭력을 겪은 후 우울증에 폭력성이 나타나는 증상)까지 겪었던 N 씨(40·미국 거주)는 몇 해 전 따돌림의 기억을 겨우 극복하고 얼마 전 평화를 찾았다. 한국에서는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이 있으면 바로 받아치거나 참았다가도 확 터트려 풀곤 했는데 미국은 말이 통하지 않아 그런 방법을 쓸 수 없었다.
“처음 그런 대접을 받았을 때 바로 말을 했어야 하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넘어간 게 화근이었죠. 몇 차례 그런 일이 있으니 우습게 보더군요. 그 뒤로 괴롭히는 횟수가 많아지고 그 강도도 세졌어요.”
N 씨는 그러다 직장을 옮기게 됐고 문제는 한참 뒤에 일어났다. 그는 어느 날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 때 받은 모욕의 기억이 계속 그를 괴롭혔다. 심지어 찾아가 따지려고 전에 다니던 회사 앞까지 갔었다는 그는 “회사 앞에 경찰차가 있어 겨우 억눌렀다”며 “마음을 다스리면서 나쁜 기억은 잊어야 한다. 제일 좋은 것은 그때그때 푸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때 직장 내 왕따로 괴로움을 겪었던 Y 씨(31)도 “무조건 참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큰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도 당하는 순간 즉각 반응을 보여야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돌림은 상대방이 약자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튀는 상대에게 열등감을 느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정말 ‘진상’ 행동을 해서 왕따를 부르는 동료가 있긴 하지만 드물죠. 일단 강하게 보이거나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 게 우선이에요. 그 다음에는 조직 내에 영향력 있는 사람과 면담을 요청해서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Y 씨는 따돌림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평소에 관심 있었던 춤 동호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춤을 배우면서 자기 자신에게 더욱 애정을 갖게 됐고 실력이 늘면서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그는 “일단 동호회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인정을 받으니 자신감이 생겨 회사에서도 관계가 개선됐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정해서 집중하고 실력을 쌓는 것도 좋은 극복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