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생 노재우 씨(왼쪽).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할 전직 대통령 일가가 볼썽사나운 재산권 다툼을 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1987년 6월. 노태우 전 대통령(당시 민정당 대표위원)이 6·29 선언을 발표하기 직전 동생인 노재우 씨 부부를 은밀하게 부른다. 느닷없는 형님의 부름에 재우 씨 부부는 왠지 모를 심상치 않은 예감에 빠져 들었다. 재우 씨가 찾아오자 노 전 대통령은 책상 서랍에서 3개의 저금통장을 내놓는다. 저금통장을 내놓은 노 전 대통령의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내일 중대한 일이 있다. 만약의 경우 두 남매(재헌 씨와 소영 씨)를 부탁한다.”
노 전 대통령은 동생을 믿었다. 그동안 만약을 위해 모았던 자금을 재우 씨에게 선뜻 보관을 맡긴 셈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우려했던 ‘만약의 경우’는 생기지 않았다. 이후로 벌어진 12월 16일 12대 대선에서 36.6%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우 씨는 몇몇 단체를 조직하며 형님의 선거를 도왔는데 이중 대표적인 게 ‘태림회’였다. 태림회는 전국에 60만 명의 조직원을 가진 대규모 사조직으로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1등 공신이라 일컬어지곤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형제간의 우애는 전혀 흔들림이 없어보였다.
이후 재우 씨는 형님의 재임기간 내내 일선에서 물러나 잠행을 하기 시작한다. 5공의 몰락을 지켜본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친인척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여러 번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생은 정치권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항간에서 “실질적으로 재우 씨가 노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관리인 아니겠느냐”라는 소문이 잠시 떠돌았을 뿐이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취임 직전 재우 씨를 은밀하게 부른 바 있다. “재정적 기반을 형성하기 위해 냉장 창고업을 운영해보라”는 게 재우 씨를 호출한 이유였다. 노 전 대통령은 재우 씨에게 회사 설립과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위임하며 1980년 회사 설립 직전에 70억 원을 내려 보냈다. ‘용인 냉동 창고’로 일컬어지는 (주)미락냉장(현 오로라씨에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후 회사가 자리 잡기 시작한 1991년에는 50억 원을 추가로 재우 씨에게 쥐어줬다. 재우 씨는 친한 고등학교 후배인 박병규 씨에게 회사 대표를 맡게 했다. 이후 재우 씨의 아들 호준 씨도 회사의 공동 대표가 됐다. 그렇게 (주)미락냉장은 조용히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으로 커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1995년 갑작스레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이 터졌다. 당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차명계좌 조회표를 흔들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비자금 정국의 소용돌이를 재우 씨도 비껴가긴 어려웠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갔을 장소로 재우 씨의 서울 서초구 동호빌딩과 (주)미락냉장을 지목했다. 동호빌딩은 재우 씨의 아들 호준 씨가 대주주였던 (주)동호레포츠가 1992년에 매입한 건물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재우 씨의 소유라고 봐도 무방했다. 당시 시가로 치자면 동호빌딩은 100억 원, 미락냉장 창고부지는 200억 원에 달했다. 당시 자신의 삼촌인 병상 씨(90년 작고)가 설립한 중소 설비전문업체인 한성기공에서 경영을 도와주고 있었던 재우 씨가 마련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2001년 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오로라씨에스(미락냉장)로 흘러들어간 것을 인정하며 “재우 씨는 검찰에 모두 120억 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재우 씨 측은 순순히 내기보다 일단 피하기를 선택했다. 재우 씨 아들 호준 씨가 오로라씨에스의 명의로 된 경기도 기흥 일대 110억 원대 부동산을 자신이 따로 운영하고 있던 유통회사((주)씨티유통, 현재 오로라씨에스와 합병)에 반값에 팔아넘긴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노 전 대통령 측은 동생 측이 ‘배임행위’를 했다며 심하게 분노했다고 한다. 형제 간 골육상쟁의 서막이 바로 이 시점에서 시작된 셈이다. 항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가 “동생이 추징금을 피하면 피할수록 내가 추징금을 더 내야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잇따랐다.
이렇게 싹튼 갈등은 지난한 소송 전으로 이어졌다. 오로라씨에스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가 소송전의 포인트였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재우 씨가 내게 120억 원을 건네받아 오로라씨에스를 세웠다”며 오로라씨에스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반면 재우 씨 측은 “받은 120억 원 가운데 28억 원으로 회사를 세우고 수차례 증자를 거쳐 회사를 키운 것”이라며 반박했다.
오로라씨에스의 소유권을 향한 법정공방에서 노 전 대통령은 2009년까지 내리 패소만 했다. 2009년 오로라씨에스 주주를 상대로 낸 주주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조차 법원에서 “사실을 소명하기에 부족하다”며 기각되자 노 전 대통령은 또다시 항소를 택했다. 7월에 열린 항소심에서는 김옥숙 씨가 증인으로 직접 출석해 회사 설립 과정을 자세히 밝히기도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건강이 상당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소유권 분쟁에서 이겼지만 재우 씨 측도 내상을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아들 호준 씨와 사돈 이흥수 씨가 보유한 오로라씨에스 주식 33만주에 대한 재우 씨의 ‘명의 신탁’ 혐의를 제기했다. 이후 혐의는 받아들여져 재우 씨 측은 오로라씨에스 주식 배당금 37억 원을 추징당하는 등 현재까지 총 52억 7716만 원을 추심 당하기에 이른다.
추심 압박이 턱 끝까지 오르자 재우 씨 측이 선택한 카드는 형님을 향한 ‘폭로’였다. 재우 씨 측은 지난 13일 KBS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서울 연희동 사저 1필지와 대구 팔공보성아파트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 소유 부동산이며, 비자금이 유입됐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뒤이어 “노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가 30억 원의 차명계좌를 갖고 있다”며 폭로전을 이어갔다. 재우 씨 측 이흥수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운전기사)정 아무개 씨는 연봉 3900만 원의 월급쟁이로 25평짜리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 심지어 집에 2억 원의 근저당까지 설정되어 있는데 그런 빚쟁이가 어떻게 해서 이런 돈이 나왔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재우 씨 측은 이왕 적극적으로 나섰으니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재우 씨 측은 “추징금 집행이 편파적이다. 654억 원을 맡긴 사돈(신명수 전 회장)은 가만히 놔두면서 왜 우리만 징수를 하느냐”는 주장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더불어 오로라씨에스를 통째로 가져가려는 노 전 대통령 측의 움직임에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지난 14일 김옥숙 씨가 “노재우와 신명수에게 맡겨진 재산을 환수해 빠른 시일 내에 기필코 추징금을 완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시기 간청드립니다”라는 요지의 탄원서를 제출한 이후로 잠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으로 촉발된 형제간의 전쟁은 소유권 분쟁과 추징금 논란을 거치며 또 다른 막장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검찰 탄원 김옥숙은 ‘머쓱’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일요신문 DB
신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과 1990년 6월 사돈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가 신 전 회장의 외동딸 신정화 씨와 결혼을 하게 된 것. 서울대학교 동문이었던 재헌 씨와 정화 씨는 숱한 화제를 모으며 청와대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를 두고 정략결혼이 아니냐는 세간의 눈길에 노 전 대통령은 “자녀의 뜻을 존중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신 전 회장의 신동방그룹은 대통령의 사돈기업으로 승승장구했다. 해표식용유와 식품업으로 유명했던 신동방그룹은 각종 기업 인수와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며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신동방그룹 측은 “탄탄한 자본력과 기술, 노하우가 변화의 밑거름이 됐다”고 밝히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노 전 대통령의 뒷배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의혹이 현실로 드러난 시기는 지난 1995년. 검찰의 노태우 비자금 수사 당시 신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자금 230억 원을 받은 사실이 탄로 났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액수는 230억 원이지만, 그동안 지원한 비자금은 그 몇 배라는 소문도 끊임없이 돌았다. 신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받은 비자금으로 “서울 소공동 서울센터빌딩을 매입한 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 전 회장의 추락은 곧 이어졌다. ‘비자금 창구’로 지목되는 데 이어 1999년 IMF 위기를 맞아 신동방그룹은 워크아웃에 빠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신 전 회장은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신동방그룹은 사조그룹과 CJ그룹에게 팔려 사실상 ‘공중분해’ 되기에 이른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사돈에게 사실상 관대했다고 전해진다. 재산 때문에 소송을 남발했던 재우 씨와는 달리 노 전 대통령은 신 전 회장만큼은 조용히 지켜본 것이다. 신 전 회장에게 관대하기는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시가 40억 원대에 달하는 신 전 회장의 서울 성북구 자택에 압류를 걸어 5억 1000만 원을 회수했지만, 이후 경매를 취하하는 등 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신 전 회장 역시 비자금 향방에 대해 “그동안 대부분 손실을 봐 재산이 없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이 신 전 회장에게 ‘공격’을 개시한 시점은 지난 2012년 6월경이다. ‘신 전 회장을 수사해 달라’며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다. 진정서의 요지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서울센터빌딩 매입과 강남 동남타워 신축 비용으로 신 전 회장에게 비자금 654억 원을 맡겼는데, 이 돈으로 불린 재산을 자신의 동의 없이 신 전 회장이 처분했다는 것이다.
비자금 수사 당시 밝혀진 230억 원보다 400억 원이 늘어난 액수에 여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자금 424억 원이 더 있다는 것을 노 전 대통령 스스로 밝힌 것이다. 의문투성이였던 폭로의 배경으로 노 전 대통령과 신 전 회장의 관계 변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1년 자녀들의 이혼 소송으로 둘 사이는 더 이상 사돈 관계가 아니었던 것. 항간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신 전 회장에게 주었던 비자금을 회수하려고 움직인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재헌 씨와 정화 씨의 이혼 소송에도 비자금 의혹은 어김없이 떠올랐다. 재헌 씨가 한 측근에게 “신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해왔다”며 “신 전 회장 일가가 그 비자금을 숨기기 위해 최근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혼 소송 역시 정화 씨가 먼저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노 전 대통령 주변에서는 “신 전 회장이 비자금을 끝까지 숨기려는 속셈 아니냐”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여러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표면적인 이혼 사유는 서로의 외도였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2일 이혼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재산분할 소송은 현재까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회장은 최근까지 재우 씨에게도 공격을 받은 바 있다. 지난 4월 재우 씨가 법무부장관에게 “신 전 회장이 성북동 자택 등 수십억 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데도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노재우 씨 측은 “왜 우리는 추징금의 43.4%나 추징해 놓고 신 전 회장은 추징금의 2.2% 밖에 추징을 안 하느냐”며 신 전 회장을 꼬집었다.
결국 신 전 회장의 ‘50억 원 환원’ 입장은 이러한 사방의 공격 속에서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 시민경제사회연구소 홍헌호 소장은 “순식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이슈가 불거지다보니 워낙 궁지에 몰려서 여론 무마용으로 50억 원을 낸다는 입장을 보인 것 같다”며 “사실 신 전 회장에게 50억 원은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큰 재산은 거의 다 차명으로 돌려놓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전했다.
재우 씨 측은 이러한 신 전 회장의 기부 소식에 반발하고 있다. “국가 채무로 기부한다는 것은 넌센스 아니냐”는 것이다. 이 와중에 가장 김이 새는 이는 김옥숙 씨라는 의견도 많다. 신 전 회장의 재산을 압류해달라던 탄원서의 내용이 신 전 회장의 기부로 무색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