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우 씨 측 이흥수 변호사가 최근 노태우 씨 측 비자금 의혹에 대한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1997년 12월 22일 미국에서 체류중이던 노재헌 씨가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재우 씨 측은 노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 1필지와 대구 팔공보성아파트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 소유 부동산임을 폭로한 것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가 30억 원대의 차명계좌를 갖고 있다”며 굵직한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일요신문>과 단독으로 만난 재우 씨 측의 이흥수 변호사는 “최후의 카드가 아직 더 있다”며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을 둘러싼 충격적인 내용을 잇달아 폭로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생 재우 씨가 오로라씨에스(양측 재산분쟁의 시초가 된 미락냉장의 후신)의 소유권을 두고 한창 다투던 2009년 즈음. 노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는 자신이 2대 주주로 있었던 ‘(주)텔코웨어’의 주식 94만여 주 전량을 팔아 현금 78억 원을 확보했다. 재헌 씨의 갑작스러운 주식 처분에 대해 주변에서는 “재헌 씨가 아버지와 삼촌의 소송전이 상당히 신경쓰여서 그랬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소송전이 길어질수록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자신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78억 원이라는 거액을 챙긴 재헌 씨를 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렇다면 텔코웨어라는 회사는 대체 어떤 회사일까. 텔코웨어는 2000년에 이동통신솔루션 전문업체로 설립됐다. 설립자는 재헌 씨와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의 아들 금한태 씨다. 금진호 전 상공부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의 동서이자 ‘6공 실세’로 불렸던 인물이다. 특히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런데 두 거물급 아들이 설립한 회사는 설립 초기부터 범상치 않았다. 재헌 씨가 4억 원, 금한태 씨가 11억여 원을 투자해 총 15억여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회사는 연평균 28%의 고속성장을 이루며 창립 4년 만인 2004년 7월에 증권거래소에 상장되는 쾌거를 이뤘다. 창립 첫 해 매출액이 208억 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은 빨랐다. 회사의 초고속 성장의 동력에는 원천기술을 자체 개발해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었다는 장점 외에도 매우 튼튼한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는 관측이 강했다. 바로 텔코웨어가 SK그룹의 협력사인 까닭이다.
노 전 대통령과 SK그룹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노 전 대통령의 장녀 소영 씨가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부부 사이이기 때문이다. 텔코웨어의 급성장 배경에는 SK그룹과의 특수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텔코웨어의 설립 배경에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재헌 씨와 금한태 씨가 회사를 설립할 당시에는 두 사람의 나이가 30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돈으로 회사에 투자한 것이 확인된다면 추징금으로 환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텔코웨어의 대표이사는 금한태 씨다. 공동설립자이자 2대 주주였던 재헌 씨는 2009년 1월 15일 주식을 처분한 이후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그런데 최근 재헌 씨의 근황을 뒷받침할 만한 유력한 증언을 포착할 수 있었다. 재헌 씨의 근황을 밝힌 이는 노 전 대통령 동생인 재우 씨의 사돈인 이흥수 씨. 이 씨는 현재 재우 씨의 변호사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일요신문>과 단독으로 만난 이 씨는 “주식을 처분한 후 재헌 씨는 최근 SK그룹의 또 다른 협력사인 모 업체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 어느 업체인지 이름은 밝힐 수 없다”라고 귀띔했다.
최근 들어 연일 재우 씨 측 입장을 대변하며 노 전 대통령 측의 비자금에 대한 폭로를 이어가던 이 씨는 “재헌 씨의 향방은 최후의 카드로 아껴두고 있다”며 “만약 노 전 대통령 측이 계속 막무가내로 나올 경우에 재헌 씨에 관한 민감한 내용도 모두 폭로할 예정”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저 쪽(노 전 대통령 측)은 우리가 폭로를 다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시간을 두면서 아껴두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씨에 따르면 최근 재헌 씨가 들어갔거나 혹은 관여한 것으로 여겨지는 업체는 비상장 회사라고 한다. 상장 회사는 기업 공시가 되고 정기적으로 세무신고를 해야 하는 만큼 비자금 관리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좀 더 비밀이 유지되는 비상장 회사로 옮겨간 것이라는 게 이 씨의 분석이다. 이 씨는 “우리보고 오로라씨에스의 주주 구성을 바꾼다며 ‘꼼수’를 부린다고 하는데 진짜 꼼수는 저쪽이 부리고 있다”며 “오로라씨에스의 조치는 꼼수가 아니라 경영권 방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검찰이 ‘재우 씨가 오로라씨에스 주주총회에서 이사 수를 제한해 측근들로만 이사회를 구성하는 등 추징금 집행을 어렵게 한다’며 소송을 낸 것에 대해 이 씨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씨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한 핵심 인물로 재헌 씨를 지목하고 있다. 재헌 씨가 SK그룹의 비상장 협력사로 들어간 배경도 비자금 의혹을 피하는 한편, ‘비자금 상속’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씨는 “비자금을 받았어도 안 받았다는 반박거리가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느냐”며 “결국 비자금을 아들에게 몰아주는 게 이 사안(형제 간 재산분쟁과 추징금 논란)의 핵심”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 씨는 재헌 씨가 근무했다던 홍콩의 한 법무법인도 의혹이 짙다는 입장이다. 이 씨는 “재헌 씨가 한때 홍콩의 한 법무법인에 근무했다고 하는데 그쪽(법무법인)의 세무조사 자료도 나오지 않는다. 탈세 아니면 아예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사실상 일을 하지 않은 것”이라며 “언론들이 이런 것도 제대로 묻지 않고 받아쓰기만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끝으로 이 씨는 “재헌 씨가 결국 SK그룹의 일감몰아주기 회사로 갔기 때문에 이 사안이 터지면 SK그룹 최태원 회장 공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기에 조만간 터뜨릴 시점을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옥숙 씨가 추징금 회수를 위한 탄원서를 검찰에 올리면서 급격하게 전투모드로 접어든 노태우-재우 형제간의 재산 전쟁은 조만간 동생 재우 씨의 대 반격으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이것은 형수와 시동생의 전쟁
노재우 씨
1935년생인 김 씨는 1959년 노 전 대통령과 혼인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그림자처럼 소리 없는 활동을 했다 하여 ‘그림자 내조 영부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영향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씨보다 한층 더 강했다는 속설이 지배적이다.
김옥숙 씨
재우 씨는 노 전 대통령의 세 살 아래 동생이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노 전 대통령과 재우 씨는 가난한 형편에 우애가 돈독했다고 전해진다. 재우 씨는 삼촌인 노병상 씨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며 영남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이후 주택은행에 입사해 평범한 은행원으로 일하던 재우 씨는 1976년에 병상 씨가 운영하는 한성기공에서 경영을 도와주게 된다. 재우 씨는 경리업무에 특히 밝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골치 아픈 비자금 문제 일부를 동생에게 맡긴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하는지 모른다. 삼촌을 도와 전문 경영인으로 활약하던 재우 씨는 1987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뛰어다니며 대중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