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올 시즌 파란을 일으키며 선두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제공=LG 트윈스
과거 LG 프런트는 야구계에서 ‘무능의 대명사’였다. 그도 그럴 게 야심차게 추진한 트레이드는 매번 실패했고, 큰돈을 투자해 영입한 FA(자유계약선수)는 ‘먹튀’ 소릴 듣기 일쑤였다. 2군 운영도 마찬가지였다. 신인지명회의를 통해 우수 자원을 확보했으면서도 이들을 1군요원으로 키워내는 데 실패했다. 오랫동안 LG 2군이 ‘유망주의 무덤’이란 악평을 들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여기다 직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내분과 알력도 LG 프런트엔 악재였다. 하지만, 지난 시즌이 끝나고 LG 프런트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선 프런트를 대개혁했다. 그룹 감사를 통해 문제가 발견된 이들은 스스로 옷을 벗거나 타의에 의해 팀을 떠나야 했다.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팀장급 간부들과 몇몇 직원들도 그룹 계열사로 보내졌고, 남아 있는 직원들은 보직을 변경해야만 했다. 이 조치로 오랫동안 야구단에 근무했던 직원들이 LG전자, LG CNS 등으로 떠났다.
물론 그간 구설수에 올랐던 인물이 구단을 떠난 건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마저 강제로 구단을 떠나자 “구단 수뇌부가 자신들의 무능과 책임을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쨌거나 LG는 프런트를 대수술했고, 전해까지 작전코치이던 송구홍을 운영팀장에 앉히며 프런트의 전문성을 강화했다. 이때만 해도 프런트 개혁이 성공하리라 예상한 이는 적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먼저 트레이드다. 지난해 12월 LG는 삼성으로부터 손주인, 현재윤, 김효남을 받아들이며 김태완, 정병곤, 노진용을 내주는 3 대 3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잦은 트레이드 실패로 ‘트레이드 트라우마’로 고생한 LG가 과감하게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도 화제였지만, 트레이드 상대가 ‘재계 라이벌’ 삼성이었다는 건 더 큰 뉴스였다.
김기태 감독
LG의 트레이드 정보가 사전 누설되지 않은 것도 또 다른 화제였다. 당시 LG 담당 모 기자는 “지금까지 LG는 트레이드를 할 때마다 사전에 정보가 누설돼 트레이드가 무산된 적이 많다”며 “대부분의 정보가 프런트를 통해 나왔지만, 이번 3 대 3 트레이드는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돼 기자들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현재 현재윤과 손주인은 주전 포수와 2루수로 뛰며 LG 전력엔 없어서는 안 될 중요선수가 됐다.
4월 말 일사천리로 진행된 넥센과의 트레이드도 비밀리에 이뤄졌다. 당시 LG는 내야수 서동욱을, 넥센은 포수 최경철을 내놨다. 현재윤의 부상으로 포수진의 공백이 생긴 LG는 급하게 넥센에 ‘SOS’를 쳤고, 결국 최경철을 받아올 수 있었다. 최경철은 현재윤이 1군에 복귀하기 전까지 LG 투수진을 기대 이상을 잘 이끌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 백순길 단장의 읍소가 통한 류제국 영입
류제국
지난해 10월 제대 후 LG와 입단 협상 중이던 류제국은 난데없이 ‘배은망덕’ 논란에 빠졌다. 사연은 이랬다. 국외파특별지명으로 한국 프로야구 활동 시 LG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류제국은 수술과 재활훈련을 할 때 LG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LG는 이미 류제국을 “우리 선수”로 부르던 터라, 그의 LG행은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류제국과 LG가 몸값을 두고 이견이 생기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류제국이 “LG와의 협상이 무산될 시 일본에 진출하겠다”고 발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류제국은 ‘LG의 고마움을 모르는 배은망덕한 선수’가 됐다.
당시 기자는 백 단장과 류제국 관련 대화를 나눴다. 몇몇 언론에서 류제국을 집중 비판하며 그즈음 류제국은 코너에 몰린 상태였다. 하지만, 백 단장은 코너에 몰린 류제국을 더 코너로 모는 대신 현재 상황을 가감 없이 설명하며 “선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말로 되레 류제국을 감싸 안았다.
“류제국과 몸값을 두고 이견이 있는 건 사실이다. ‘검증되지 않은 류제국에게 봉중근만큼의 몸값(계약금 10억 원+연봉 3억 5000만 원)을 주는 건 무리’라는 의견이 많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류제국의 자존심까지 꺾으면서 우리 의견을 전적으로 관철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우리 팀을 위해 뛰어줄 선수라면 자신감도 살려주고, 잘 포장해서 내놓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능하다면 류제국이 우리와 계약할 때까지 기사를 내주지 않으면 좋겠다. 모든 향후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류제국 영입과 관련해선 언론이 기다려줬으면 싶다.”
기자를 비롯해 많은 언론이 백 단장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LG는 류제국과 계약금 5억 5000만 원, 연봉 1억 원 등 총액 6억 5000만 원에 계약을 마쳤다. 백 단장이 류제국에 최초 제시한 가이드라인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선수의 기도 살리고, 경제적 이득도 한꺼번에 취한 LG 프런트의 성과였다.
류제국은 LG 입단 후 열심히 몸을 만들었고, 5월 19일 잠실 KIA전에 시즌 첫 등판해 승리투수가 됐다. 당시 승리로 LG는 4연패 종지부를 찍으며 기적같은 상승세를 탔다. 만약 LG 프런트가 과거처럼 언론의 힘을 빌리거나 꼼수를 써 류제국을 압박했다면 지금의 LG 상승세는 기대하기 어려웠지 모른다.
# 김기태 감독의 ‘체험 리더십’
왼쪽부터 현재윤, 손주인
김 감독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체험의 리더십’이다. 좋은 예가 있다. 김 감독은 시즌 중 선수들에게 “술을 마시지마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다. 되레 ‘술을 마셔도 좋다’고 허락한다. 대신 조건이 있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주량껏 마시라는 것이다.
“나도 현역 때 술을 좋아했다. 그래선지 선수들에게 술을 마시지마라는 요구는 하지 않는다. 다만, 스프링캠프나 비활동 기간에 술을 마셔보고 어느 정도 마셨을 때 내 몸이 다음날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지 체크해보라고 한다. 그렇게 시험해서 내 몸에 맞는 주량을 알게 되면 그 정도는 눈치 보지 말고 마시라고 조언한다. 성인 선수들에게 ‘하지마라’는 말보다 그게 더 효과적이지 않나 싶다.”
올 시즌 LG 선수들은 김 감독의 조언에 따르고 있다. LG 선수들은 입을 모아 “경기 후 스트레스를 풀 요량으로 술자리를 갖는다. 그러나 과거보다 술자리 시간이 짧아지고, 주량도 적어졌다”며 “김 감독님 취임 이후, 금기 사항이 크게 줄었지만, 이를 악용하는 선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털어놨다.
김 감독의 ‘권력분산식 리더십’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김 감독은 자신이 감독이라고 권한을 함부로 남용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담당 코치들을 통해 선수단을 장악하려 들지도 않는다. 선참 선수들을 적극 활용하고, 선수들 스스로 팀 분위기를 이끌도록 한다. LG 베테랑 선수 박용택은 “감독님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선참들을 불러 팀의 취약점과 젊은 선수들의 문제를 들려주신다. 어차피 야구는 선수가 하는 만큼 팀워크도 고참들이 이끌어야 한다는 게 감독님의 지론”이라며 “덕분에 선참 선수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팀 분위기를 잘 이끌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LG 상승세, 후반기까지 이어진다
2002년 이후 LG는 전통적으로 시즌 후반기에 약했다. 6월까진 4강권에 있다가도 날이 더워지면 기세가 떨어졌다. 팀 전력이 그만큼 약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를 것으로 보인다.
조계현 수석코치는 “투수진의 힘이 빠졌을 때 과거 같으면 백업 전력이 없어 고전했겠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며 “유원상, 정찬헌 등 불펜진에 가세할 전력들이 이미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타선에서도 ‘작은 이병규’를 비롯해 몇몇 선수가 언제든 1군 주전으로 뛸 준비가 돼 있다. 예전처럼 시즌 후반기에 갑자기 힘이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올 시즌 LG를 과거의 LG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팀에서도 LG 상승세가 시즌 후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LG 2군에도 우수 자원이 많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몇몇 선수에 의존하기보다 구단 전체 시스템을 바꾼 만큼 올 시즌뿐만 아니라 향후 LG의 꾸준한 상승세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