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알아볼까 두려워 모자를 푹 눌러쓰던 사람. 김석봉 사장이 ‘한국의 얼굴’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성공’은 시작됐다. | ||
“과일장사에서 자동차정비 세차장 막노동 용접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죠. 직장생활 경력도 꽤 됩니다. 문제는 학력이었어요.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학력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니 일할 맛이 안 나는 겁니다.”
그 설움에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신학교까지 진학했다. 배움의 한을 풀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내가 놀이방 운영을 통해 세 아이의 육아와 생계를 맡아왔지만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 것. 이제 가장인 그가 나설 차례였다.
그가 손에 쥔 것이라곤 단돈 200만 원. 6개월 동안 다양한 아이템을 찾아다닌 끝에 오전 출근시간 토스트를 파는 스낵카 창업을 결정했다. 하루 5만 원은 벌 수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 매상은 5500원.
“노점이 앞에 있으니 장사가 더 안 된다며 쫓아내는 매장 상인, 구청 단속반, 파출소, 깡패 등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외부 환경이 아닌 제 자신에게 있더라고요.”
길거리에 서 있는 자신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누가 알아볼까 두려운 생각이 들어 모자도 깊이 눌러썼다. 깡패들에게 조금이라도 돈을 덜 뜯기려는 생각에 남루한 옷차림을 택하다보니 손님의 발걸음은 더욱 뜸해졌던 것.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왕 창피한 것,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생각을 바꾼 것. 나아가 ‘토스트에 있어서만큼은 최고가 되자’는 결심까지 했다. 유니폼을 차려입고 당시 대중적이었던 조미료, 설탕이 들어간 토스트가 아닌 계란에다 신선한 야채를 듬뿍 넣은 건강식 토스트를 내놓았다.
길거리 노점에 깔끔한 유니폼이 등장하자 호텔 주방장 출신이냐는 질문이, 일반적인 토스트와 다른 색다른 맛에 재료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웰빙 토스트점이라고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 수는 점차 늘어났다. 계란 말고 다른 재료는 없느냐는 질문에 아이디어가 번뜩여 치즈 햄 등 다양한 재료를 추가해 새로운 메뉴도 개발했다. 지역 특성상 외국 손님이 증가하자 이번에는 서점을 찾았다.
“1000원짜리 토스트를 팔고 있는 제 모습이 한국인의 이미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영어 불어 일본어 중국어 4개국어 인사말을 준비해 외국 손님들을 맞았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지 외국어로 기록한 외국인 전용 메뉴판도 준비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뜻밖의 서비스에 감동한 외국인 관광객들을 통해 꼭 들러야 하는 맛집으로 가이드북에 소개까지 됐다. 일본의 한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오면서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무교동 봉사마’로 불리며 사진촬영을 부탁받기도 했단다. 매출도 하루 10만 원으로 올랐고 고객 수 역시 꾸준히 늘어 하루 평균 최고 300명의 손님을 맞기도 했다.
그의 영업시간은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단 5시간. 짧은 시간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늘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손님을 맞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우는 것도 손님에게 큰 실례라고 생각해 기상 후 영업이 종료될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단다. 자신과의 철저한 약속을 지킨 끝에 그는 창업 3년 만에 연 매출 1억 원을 달성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 소개되자 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느라 더욱 바빠졌다. 이번에는 노하우를 알고 싶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제조 과정과 서비스 등 운영 노하우를 100% 공개했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영업수완이 좋아 자신보다 더 잘되는 점포가 하나둘 생겨났고, 그는 이제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청결하고 친절한 서비스와 맛은 누구나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거든요. 다른 곳에 없는 특별한 소스를 만들어보자 싶었죠.”
11가지 재료를 사용한 매콤소스와 달콤한 맛의 열대과일소스 개발에 성공하면서 2004년 8월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곧이어 90여 개의 탑차형 가맹점이 생겨날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구청 단속반과 영업허가 문제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가맹점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1년 만에 지금의 점포형 매장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렇다고 자금이 넉넉지 않은 소자본 창업자를 위한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의 프랜차이즈 본사에선 으레 받는 가맹비를 받지 않고 있다. 단, 4일간의 교육비와 유니폼 비용 등은 받는다. 이는 실패하지 않는 창업을 위해서라고 한다.
노점으로 시작한 석봉토스트의 협력업체는 현재 80여 곳. 지난해 매출은 15억~20억 원 정도를 기록했단다.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제조공장에서는 석봉토스트만의 소스를 직접 생산하고 있다. 그는 현재 300여 개인 가맹점 수가 내년에는 500여 개까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 석봉토스트를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전국에 1500~2000개 정도의 점포가 들어서면 맥도날드 같은 브랜드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해외 진출을 통해 세계인의 입맛도 사로잡을 계획이라고 한다. 노점에서 시작했지만 길거리 점포, 휴게소와 터미널 입점을 거쳐 백화점에까지 들어섰으니 세계 공략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김 사장은 조만간 제 2 브랜드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살짝 귀띔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