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5공 실세였던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허삼수 국제장애인협의회 고문, 고명승 성우회 회장, 장세동 전 안기부장.
허화평은 5공 중기 전두환의 친인척이 연루됐던 장영자 사건에 대한 원칙적 수사 종용과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해 전두환과 뜻을 달리하며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대통령 노태우의 제6 공화국 시절 귀국한 허화평은 14대와 15대 총선에서 연달아 재선에 성공하지만, 1995년 5·18특별법 제정 이후 8년 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에도 허화평은 우익적 정치활동을 계속해나가며 5공 인사들과 친분을 이어갔다. 현재 그는 ‘미래한국재단’이라는 연구·공익단체의 이사장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 재단은 허화평 이사장이 1988년 국내 복귀 당시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치, 사회 분야 연구는 물론 <지방자치>라는 월간 정기간행물을 발간하고 있다. 이 재단의 설립 자금과 운영과 관련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재단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허화평 이사장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재단 일에 매진하고 있다”면서도 “요즘 그 일(전두환 일가 압수수색 지칭) 탓에 언론과의 접촉은 절대적으로 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5공 시절, 중앙정보부 내 숙정을 담당하며 중정 장악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육사 17기 하나회 허삼수. 허삼수는 5공 초기 보안사 인사처장, 중정 특보, 사회정화특별위원 등 실로 무시무시한 요직을 겸직하며 중정 장악은 물론 삼청교육대를 주도해 공포정치의 뒷배를 담당했던 인사다. 5공 시절 잠시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연구 생활을 이어가던 허삼수는 1988년 허화평과 함께 국내 복귀하며 14대 총선 때 정계에 진출했다. 하지만 그 역시 5·18 특별법 재판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정계에서 종적을 감췄다.
허삼수는 이후 ‘국제장애인협의회’라는 단체 이사장으로 선출됐지만, 그밖에 별다른 활동은 없었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허삼수는 지금도 해당 단체 ‘고문직’으로 몸담고 있었다. 단체 관계자는 “현재 고문직에 몸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시 출근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육사 15기로 하나회 핵심 멤버였던 고명승 역시 12·12 사태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참모역을 맡아 총리공관 무단 장악에 나서는 등 당시 거사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고명승은 다른 핵심 실세들이 군복을 벗고 정계에 발을 들였던 것과 달리 거사 이후에도 줄곧 군에 남아 5공의 궂은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그는 수방사령관, 보안사령관을 거쳐 3군사령관까지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노태우 정권 이후 육군참모총장 승진이 좌절되며 권력의 중심부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고명승은 지난 2011년 국내 퇴역 장성들의 모임이자 국내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성우회’ 1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현재도 그는 회장직을 유지하며 성우회를 이끌고 있다. <일요신문>(1084호)은 이미 지난 2월 고명승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근황을 전한 바 있다.
2001년 3월 5일 5공세력들의 모임인 평생동지회 행사에 참석한 권정달 전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박희도는 현재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이라는 보수단체를 설립해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활발히 활동했던 그지만, 최근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단체 관계자는 “박희도 회장은 요즘 워낙 고령인 탓에 일주일에 한 번 사무실에 들르는 정도다. 최근에는 휴식차 해외로 몸을 추스르러 나간 상황이며 8월쯤 다시 국내로 들어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권정달은 육사 15기로 비하나회 출신임에도 12·12 사태 이후 전두환에 의해 중용되며 5공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하나회 출신이 아니지만, 5·17 비상계엄 당시 깊숙이 개입하며 협조한 덕이 컸다. 보안사 정보처장 시절 권정달은 5공의 언론통폐합을 일선에서 이끌었다. 정권 출범 이후 그는 곧바로 정계에 진출하며 11, 12, 15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3선 의원 고지를 점한다. 5·18 특별법 제정을 앞두고 그는 당시 김영삼(YS) 정권에 협조한 대가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5공 인사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16대 총선 낙선 이후 그는 2001년부터 무려 8년간 국내 최대 규모의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을 역임하며 세를 과시했다. 5공 인사들 가운데서는 별다른 굴곡 없이 탄탄대로를 걸었던 셈. 1993년 도영심 전 의원과 재혼한 권정달은 현재 19대 의원인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을 양아들로 두고 있기도 하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현재 권정달은 경북 안동의 한 종합병원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그에 대해 “병원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것은 맞지만, 대부분 서울 본가에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안동에 있는 병원에는 거의 오지 않는다”고 답했다.
앞서의 실세들과 달리 별 다른 활동 없이 조용히 지내는 인사들도 많다. 육사 18기로 12·12 사태 당시 보안사와 합동수사본부를 호령하며 정승화 참모총장을 직접 조사했던 이학봉. 5공 정권 출범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과 안기부 차장을 지낸 그는 5·18특별법 재판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조용히 지내고 있다. 지난 2011년 11월, 그의 역삼동 자택이 경매로 나와 세간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전두환의 영원한 돌쇠’로 불렸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 16대 대선 당시 뜻밖의 출마와 사퇴의 기행을 선보인 그는 이후 5공 인사들과의 교류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가 그의 자택에 전화를 걸었지만 한 중년 여성이 “그 분은 지금 집에 없다. 다음에 전화하라”며 성급히 전화를 끊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국립묘지에 묻혀도 됩니까
5공 제국이 등장한 지도 벌써 35년 전이다. 현존하는 5공 실세들 대부분은 이제 여든 가까운 고령으로 인생 황혼기를 지내고 있다. 개중에는 벌써 세상을 뜬 인사들도 적지 않다. 17기 육사 하나회 출신으로 5공 시절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 그는 지난 2011년 6월 2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문제는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큰 논란을 일으켰다는 것. 쿠데타 동참은 물론 뇌물수수혐의로 징역형까지 살았던 그가 국립현충원에 묻힌 까닭에서다. 당시 국회 감사원 등에서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는 여전히 현충원에 묻혀있다.
육사 14기로 정권 초기 사회정화위원장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춘구 역시 14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지내다 지난 2011년 조용히 세상을 떴다. 군 출신은 아니지만, 5공 시절 대통령 전두환에 의해 국보위 자문위원으로 발탁된 이원조는 5공의 ‘경제 대통령’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는 5공 시절, 대통령 경제비서, 석유공사 사장, 은행감독원장을 지냈으며 권력층의 자금을 직접 관리했다. 당시 세간에는 ‘이원조 허락 없이는 은행장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1990년대 이후 그는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연루돼 형을 살다 나왔다. 이후 그는 평범한 노년을 보내다 지난 2007년 3월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