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두 사람이 양 팀의 1차전이 끝난 26일 밤에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식당에서 만나 늦은 저녁을 함께 하며 그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종종 문자와 전화 통화를 하며 안부를 주고받았던 그들이지만, 오랜만의 해후는 보고만 있어도 ‘빵빵’ 웃음이 터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두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 그레인키의 변화구
7월 26일 LA다저스는 잭 그레인키를 선발로 내세웠고, 추신수는 그레인키를 상대로 세 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내야땅볼을 기록하다 투수가 교체된 후 안타 2개와 타점을 기록했다. 화제가 자연스레 경기에 대한 내용으로 흘러갔다.
추신수(추): 현진아, 그레인키가 직구는 하나도 안 던지더라. 난 초구를 때리려고 했는데 그레인키가 커브를 던지더라고. 세 타석 모두 변화구 위주로 날 상대했어.
류현진(류): 형, 내가 미리 얘기하는데, 앞으로 남은 게임에서도 첫 타석에 초구 직구는 절대 안 갈 걸? 나만 빼놓고(웃음). 난 지금까지 1회 첫 타석 상대에게 변화구를 던진 적은 없어. 왜냐고? 포수가 1회 초구에는 무조건 직구 사인을 내거든. 내가 선발 등판할 때 형이 1번타자로 나온다면 초구는 직구로 승부할 거야(실제로 류현진은 7월 28일 추신수와의 맞대결에서 1회 초구를 직구로 던졌고,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추: 야, 미리 얘기하지 마라. 난 아직 네가 던진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어. 오늘은 그레인키 비디오를 봤고, 내일은 커쇼, 그리고 그 다음날 현진이 경기를 분석하겠지.
류: 형, 오늘 난 레즈의 아롤디스 채프먼이 9회 올라왔을 때 내심 푸이그랑 한 번 붙어보길 기대했어. 두 선수 모두 쿠바 출신이잖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진 투수와 다저스의 야생마가 맞붙는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거든.
# 푸이그는 어떤 선수일까?
추: 현진아, 푸이그가 다저스 선수들 사이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니? 널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웃음).
류: 형, 나 진짜 힘들어. 그 친구는 날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것 같아.
추: 나야 같이 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오늘 경기하면서 보니까 좀 거슬리는 부분이 있더라. 굳이 안 해도 되는 행동을 해서 상대방 선수들을 자극시키는 부분이 있더라고. 그 선수는 루키야. 루키면 루키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야구장 안에서 종종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그 친구는 야구를 어디서 배웠을까?
류: (웃으면서)어디긴 어디야, 쿠바에서 배웠겠지.
추: 자칫 잘못하면 푸이그 때문에 양 팀 선수들이 충돌을 빚을 수도 있다고. 실력도 좋고, 스타성도 풍부한 선수인데, 선수들 끼리 지켜야할 매너도 갖췄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어.
류: 우리 선수들도 푸이그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 특히 아드리안 곤살레스가 스페인어를 하니까 푸이그를 앉혀 놓고 이런 저런 조언을 전하는데도 말을 잘 안 들어.
추: 지금은 실력과 인기가 좋으니까 누가 뭐라고 하지 않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푸이그가 많이 괴로울 거야.
류: 형, 유리베(후안 유리베) 아저씨 알지? 배 나온 그 분. 푸이그가 라커룸에서 심하게 장난을 치면 유리베 아저씨가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거든. 그래도 푸이그는 굴하지 않아. 내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꿀밤 때리고 도망간다니까. 그러다 나한테 한 번 크게 당했지.
추: 미국은 선후배 문화는 없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매너, 룰은 엄격하게 지켜. 그런 점에서 푸이그도 좀 더 생각하고 행동해야 해. 야구장 밖에서야 무슨 일을 벌이든 상관이 없지만, 경기 중에는 상대를 자극하는 플레이는 하지 말아야지.
류: 그래도 팬들한테는 인기 짱이야. 성적이 좋으니까.
# LA에 제대로 적응한 류현진
추: 오늘 현진이를 보니까 이곳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같더라. 난 평소 하지 않던 일들(한국 미디어를 상대로 한 기자회견 및 취재 경쟁 등)을 접하니까 무척 힘들었다. 현진이는 한국에서부터 이런 생활에 익숙했겠지만 난 마이너리그에서부터 관심 받지 못하는 생활의 연속이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현진이 만큼의 관심은 받지 못했거든. 그래서 이렇게 많은 한국 기자들이 계시는 게 약간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류: 난 형이 LA에 오니까 진짜 좋던데. 그래서 아까 형이 기자회견할 때 일부러 찾아간 거야. 얼굴 보고 싶어서. 형이 다저스타디움에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형이 오니까 기자분들이 더 많이 오셨어. 나 혼자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한국 기자들이 많지 않았거든. 여긴 내 ‘나와바리’니까 형한테 맛있는 곳도 소개시켜주면서 같이 다니려고 계획까지 짰는데, 형네 가족들이 모두 계셔서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네.
추: 현진아, 애들 세 명 데리고 원정 다니면 나는 괜찮은데, 와이프가 진짜 고생한다. 더욱이 한국에서 부모님도 오셔서 따로 시간내기가 어려워. 네 마음만 받을게. 그렇게 날 생각해줘서 고맙다(웃음).
# ‘공인’으로 사는 어려움
50개의 주와 1개의 특별구로 이뤄진 미국. 한반도 면적의 43배의 땅 크기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두 명의 코리언 메이저리거들은 종종 이상한 소문에 휘말릴 때가 있다고 말한다.
류: 형도 그런 소문 들어봤어? 내가 LA에서 매일 술집 드나든다고. 미국 땅이 넓은 것 같아도 한인 사회는 은근히 좁아서 소문이 소문을 낳고, 소문이 보태져서 확대 재생산 되는 것 같아. 어디 가서 술 한 잔만 해도 맥주를 박스째 마셨다고 하고, 식당가서 밥 먹을 때 옆 테이블에 여자들이 앉아 있는 걸 본 다른 사람들이 류현진 여자 만나고 다닌다고 하고…. 한화 있을 때부터 그런 소문들에는 익숙한 편이지만, 여기는 사생활 관련 소문들이 더 많고 전달 속도도 빠른 것 같아.
추: 난 원정 다니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봤어. 생전 처음 가본 지역임이 분명한데, 한식당을 찾아 갔더니 어떤 사람이 추신수랑 식사할 거니까 자리 예약해달라고 했다는 거야. 난 전혀 모르는 일인데 말이지. 그 식당이 나름 그 지역에서 유명한 곳이라 예약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 내가 원정가는 걸 알고 날 사칭해서 예약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지. 가끔은 관광오신 한국 분들이나 유학생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식당에서 식사 중인데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비싼 돈 주고 먹는 식당에서 플래시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 건 다른 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 ‘식당 안에서는 사진 촬영하기가 곤란하다’고 말씀드리면 이해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간혹 ‘싸가지 없다’고 비난을 받기도 해. 공인의 비애를 느끼는 순간이지.
류: 형, 한국 분들이 많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반면에 생활하는데 어려움도 있는 것 같아. 다행이 내가 담배 피우는 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다 알려져서 이젠 괜찮아. 그리고 어디를 가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추: 현진아, 아마 우리가 남의 시선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 제 명에 못살 거다. 그러나 우리가 팬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고,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을 야구장 밖이 아닌 야구장 안에서 보여드려야 하잖아. 사생활의 불편함이야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인 것이고, 이렇게 주목받고 사는 데 대해서도 감사함을 갖도록 하자.
# 메이저리그 데뷔 해, 8승의 의미
추신수와 류현진과의 인터뷰가 진행될 때만 해도 두 사람의 맞대결이 펼쳐지기 이틀 전이라 당시만 해도 류현진은 8승을 거둔 상태였다. 추신수에게 메이저리그 데뷔 해에 8승을 거두고 있는 류현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물었다.
추: 정말 대단한 성적이다. 나는 현진이가 미국에 오는 데 대해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이었다. 일단 실력은 검증됐고, 잘할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 야구의 차이, 그 차이에 잘 적응하고 맞춰갈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있었다. 지금 보니까 괜히 걱정한 것 같다(웃음). 기대 이상으로 잘 하고 있고, 잘 지내고 있다. 이전 인터뷰(매거진S 204호)에서도 말하지 않았나. 야구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선수들과 잘 지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현진이는 선수들하고도 잘 지내더라. 난 첫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상대팀 포수, 그리고 심판한테 인사를 한다. 오늘 다저스전 때 첫 타석 때도 A.J.앨리스에게 “Hi, What's up?”이라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심판한테도 마찬가지다. 이곳 문화도 인맥이 중요하다. 선수들과 나쁘게 지낼 필요가 없다. 그 선수가 다른 팀으로 옮겨가거나 언젠가는 한 팀에서 만날 수도 있기 때문에 같은 팀 또는 다른 팀 선수들과 친분을 맺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류: 형, 나는 4월 애리조나 원정 때 3안타 친 날이 있었잖아. 그때 타석에 들어가서 애리조나 포수인 몬테로 미구엘에게 “왓츠업?”이라고 얘기했더니 그 선수가 깜짝 놀라서는 “유 스피크 잉글리쉬?”라고 묻는 거야. 그래서 “노우!”라고 대답하고선 바로 2루타 쳤잖아(웃음).
추: 몬테로 미구엘과는 에피소드가 있어. 그 친구가 경기 중 투수가 던진 공에 중요한 부위에 맞았거든. 보호대를 했는데도 무척 아팠나봐. 통증을 참아가면서 던진 말이 진짜 웃겼어. 자기는 괜찮다고. 이미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괜찮은 거라고. 하하, 그 얘기 듣고 한참을 웃었어. 멋진 선수라는 생각도 들고. 현진이 짝꿍인 포수 앨리스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더라. “추, 너의 도시에 온 걸 환영한다”라고. 그래서 내가 “나의 도시가 아닌 류의 도시”라고 대답했더니 아니래. 그러면서 현진이 너에 대해 정말 좋은 평가를 해주는 거야. 완전 나이스 가이라고 하면서. 마치 내 친동생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더라고. 네가 선수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순간이었고.
#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이상한 취미
류: 형은 취미 생활이 있어? 여기 선수들은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더라고. 난 쉬는 날 하는 일이 골프 치는 건데, 다른 친구들은 낚시도 하고 문신을 즐기기도 하고.
추: 우리 팀의 호머 베일리란 선수는 사냥이 취미야. 오프시즌 때 아프리카 등지를 떠돌며 사자를 잡은 적도 있더라고. 사자 사냥 후에 찍은 사진을 나한테 보여주기도 했어. 맷 레이토스는 집에서 뱀을 키운다고 들었어. 진짜 특이하지? 난 4년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 게임이 유일한 취미였는데 그걸 끊고 나선 요즘은 책을 많이 읽어.
류: 에이, 설마. 형이 책을 읽는 게 취미라고?
추: 너 못 믿는 거야? 진짠데. 형이 갖고 다니는 가방 보여줄까? (실제로 추신수는 항상 휴대하는 서류가방을 열어 보여주고선 자신이 읽고 있는 책들을 류현진 앞에 꺼내 놓았다)
류: 형, 웬 명언집? 사자성어 책은 왜 읽고? 어? ‘엄마수업’? 형은 아빠수업이란 책을 읽어야 하는 거 아냐?(웃음)
추: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야구를 잊고 싶을 때 가장 적합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생각하면서부터야. 책을 읽는 동안에는 야구를 잊을 수 있으니까. 야구가 안 된다고 해서 연습에 매달리면 더 독이 되더라고. 오히려 휴식을 취하면서 머리를 맑게 해주는 방법이 더 효과가 있는 거야. 야구는 어느 순간부터 멘탈 게임이 되더라고. 가끔은 야구를 하는 게 아니라 도를 닦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 상상은 재미있게, 코리언 메이저리거들의 ‘맞대결’
이젠 이미 ‘지난 일’이 되었지만, 인터뷰 당시만 해도 이틀 후에 벌어질 두 사람의 맞대결에 대한 주제로 화제를 옮기자, 둘의 얼굴에 묘한 긴장감이 엄습했다. 류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류: 형, 난 1회 초가 시작되면 기분이 막 이상해질 것 같아. 장내 아나운서가 “신수 추!”하고 부를 때 형이 타석에 들어서잖아. 그때 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거지? 그때 관중들 반응은 어떨까? 와, 상상만 해도 전율이 느껴져.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
추: 장내 아나운서가 내 이름을 부르면 천천히 걸어 나갈 테니까 마음껏 느껴봐(웃음). 네 말대로 정말 스페셜한 장면이 될 거야. 난 마이너리그에서부터 단계를 밟아 올라왔고, 넌 한국에서 최고의 투수였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이전 서재응, 박찬호 선배님과의 대결 때랑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류: 재응 형, 찬호 형과 상대할 때 어떤 기분이었어? 형이 재응 형 상대로 홈런을 쳤잖아.
추: 현진아, 내가 생각하기에는 서재응 선배님이 그냥 홈런치라고 던져준 공이 아니었나 싶다. 뭔가 치열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어. 반면에 박찬호 선배님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던지시더라. 그것도 제일 빠른 공으로, ‘악’ 소리 내면서 말이야. 결국 삼진을 당했지만, 난 박찬호 선배님과의 승부가 더 좋았어. 정면 승부를 벌인 듯 해서. 그러니까 현진이 너도 최선을 다해줘. 봐주는 것 없이 말이야.
류: 형, 그런데 내가 1회 때는 선두타자한테 별로 좋은 공이 안 가. 그래도 형이 그렇게 부탁한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서 던질게. 악 소리 내면서(웃음).
추: (한참 생각하다가) 음, 현진아. 내가 다른 말은 안 할게, 나 올해 FA다.(순간 두 선수는 폭소를 터트렸다)
류: 형 걱정마. 내가 1회 첫 타자한테는 스피드가 안 나온다니까.(그러나 류현진은 그날 1회 선두타자로 나선 추신수를 맞아 91마일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 추신수의 솔직한 ‘고백’
류: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진짜? 형이 정말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말이야? 와, 설마…, 추신수 선수가 그럴 리가 있겠어. 예를 들어서 형이 현수한테 전화해서 ‘현수야, 현진이가 한국에서 어떻게 던졌니?’라고 물어본다고 상상해봐. 현수가 얼마나 놀라겠어(웃음). 형의 ‘가오’가 있지. 형 별명이 ‘추 가오’이잖아.
추: 그러니까 생각만 하고 말았지. 전력분석팀에서 주는 자료와 비디오 분석만 하고 경기에 들어갈 거야. 그만큼 형도 생각을 많이 한다는 얘기다.
류: 형, 나는 홈런을 치든, 안타를 치든 볼이 나오든, 초구는 직구야. 선발 투수가 ‘가오’ 떨어지게 초구를 변화구로 승부하면 안 되는 거잖아. 형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난 초구는 직구로 승부해. 그나저나 내가 카푸아노 다음에 던지면 부담이 덜할 텐데, 커쇼 다음에 던지는 일정이라 은근 신경 쓰이네. 너무 비교되잖아(웃음).(류현진은 이런 우려와 달리 28일 신시내티전에서 올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며 9승을 챙겼다.)
# 가을야구를 꿈꾸는 두 남자
류: 형, 우리 팀이 요즘 상승세를 타면서 ‘가을야구’에 대해 기대를 부풀리고 있는 것 같아. 성적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 목표는 9월까지 모든 시즌을 마치고 10월 1일 무조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거였거든(웃음). 그런데 그 생각을 이젠 수정해야 할 것 같아.
추: 현진아, 형이 여기서 야구를 더 오래했으니까 가을야구는 형이 먼저 경험해 보자. 넌 한국에서도 경험해봤잖아.
류: 가을야구를 하는 건 좋은 데 솔직히 4일 쉬고 5일째 등판하는 일정이 힘들긴 힘들어. 한국에선 수년간 5일 쉬고 6일 등판하는 일정이었다가 갑자기 그 리듬이 깨지니까 적응하기에 상당히 애를 먹었어. 한국에서는 웨이트트레이닝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거든(웃음). 여기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하잖아. 그거 안 하면 버티기가 어려우니까.
추: 너, 지금 체중이 어떻게 되니?
류: 음, 형, 미안하지만, 세 자리 숫자라는 것만 말해줄게. 그래도 작년 겨울보다는 많이 빠졌어.
추: 당연히 빠졌을 거야. 시즌 생활이 힘드니까. 현진아, 여기서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야구장에서 주는 음식을 거의 안 먹어. 밖에서 좋은 음식 먹고, 야구장에서는 운동만 하지. 여기서 먹을 음식도 직접 싸와. 유기농 음식물로. 물도 5불씩 하는 코코넛 워터를 마신다고. 그만큼 몸 관리에 철저하다는 거지. 모든 건 네가 직접 느껴야 해. 아무리 주위에서 좋은 얘기를 해준다고 해도 네가 느끼지 못하면 조언이 잔소리가 돼. 몸 관리 중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네가 더 많이 느낄 거야.
# 그때는 그랬지만…
시즌 초 추신수는 자신을 향한 한국 기자들의 무관심에 대해 약간은 실망을 한 적이 있었다. 시즌 개막전 때 LA 류현진과 달리 신시내티에는 단 한 명의 기자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신수에게는 다소 껄끄러운 질문을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추: 그 당시 조금은 비참했었다. 신시내티 홍보담당자가 그때 나한테 이렇게 물었던 걸로 기억난다. “추, 스프링캠프 때 그 많던 한국 기자들이 지금 다 어디에 있느냐”고. 그래서 내가 현진이가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기 때문에 아마 LA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더니 스케줄을 확인한 그 분이 다시 와서는 “LA 경기는 우리 개막전 이틀 후에 열리는데 여기 왔다가 LA로 돌아가도 충분한 시간인데 한국 기자들이 오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하더라. 그 분이 그런 얘기를 안 하셨으면 그냥 그런가보다 했을 텐데 막상 그런 지적을 듣고 나니까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다. 오늘 보니까 랍(신시내티 홍보담당자)이 가장 신나하는 것 같더라. 내가 하는 기자회견에 한국 기자들이 대거 몰렸고, 방송 촬영까지 이어지니까 자기가 그 장면을 사진 촬영하면서 더 흥분하는 듯 했다. 메이저리그 홍보 부문에서는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분인데, 현진이와 나한테 쏠리는 관심도에서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랍 입장에서는 조금 속상하셨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류: 형, 나도 그런 얘기를 듣고 형한테 괜히 미안해지는 거야. 여기 계시는 분들이 형한테도 가서 취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사 노출도 그래. 형이 홈런 친 기사보다 나에 대한 기사가 더 많이 쏟아지잖아. 형이 많이 속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추: 현진아, 난 너한테는 조금의 감정도 없어. 단, 미디어의 반응에 섭섭했다는 거지. 하지만 이 또한 지난 일들이야.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까. 난 네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정말 기분 좋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진짜 현진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류: 메이저리그에서 생활해 보니까 미국 기자들이랑 한국 기자들의 질문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좀 있어. 형도 이 부분에서는 느끼는 게 있을 거야.
추: 엄청 많지. 뭐랄까. 선수를 존중해주고, 대우해준다는 기분?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어.
# “우리가 한 팀에서 뛸 수 있을까요?”
추신수에게 물었다. 은퇴 전까지 류현진과 한 팀에서 뛰게 될 날이 올 것 같으냐고. 추신수는 류현진의 계약 기간이 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분명 한 팀에서 뛰고 싶다고 말했다.
류: 형, 나도, 나도! 형이랑 같은 팀에서 생활하게 된다면 진짜 대박 아니야? 난 형이 FA가 된 후 LA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17번을 단 후 라이트를 봤음 좋겠어. 진짜 그런 상상이 현실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추: 현진아, 내가 라이트에 서면 푸이그는 어떻게 해?
류: 그건 감독님이 결정할 부분이지만, 내 바람은 그래.
추: 말이라도 정말 고맙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야구는 비즈니스이다 보니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야지만 계약까지 갈 수 있는 것 같아. 현진아, 스포츠 세계에서 우리는 ‘상품’이야. 에이전트나 단장은 그 ‘상품’을 제대로 고르기 위해 협상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지금은 내가 어느 팀으로 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 전혀 추측이 안 돼. 하지만 꼭 한 번은 메이저리그에서 현진이랑 같은 팀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있다. 우리가 한 팀에 있으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넌 좌타자에, 난 좌투수에 약하니까(웃음).
장시간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두 사람한테선 연신 폭소가 끊이질 않았다. 인터뷰를 통해 서로에 대한 애정(?)과 이해, 그리고 배려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서로에 대한 짧은 메시지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추신수는 “현진아, 난 너한테 야구 잘해라, 건강해라 하는 말은 안 할게. 대신 선수들과 잘 지내라고 다시 한 번 부탁한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조금 모자라도 인간성 좋고, 성실한 선수를 더 높이 평가하거든. 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걸 앞으로 더 많이 보여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류현진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이렇게 대답한다.
“형, 올시즌 절대 아프지 말고, 부상당하지 말고, 3할 꼭 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LA다저스에서 함께 뛰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만약 형이 12월에 LA에서 입단식을 하게 된다면 전 무조건 한국에서 LA로 달려올 겁니다. 형이랑 함께 할 때 제가 더 빛이 난다는 거 아시죠?(웃음) 형, 기다릴게요!”
못 말리는 류현진이다. 그리고 언제 봐도 듬직하고 인간미 물씬한 추신수가 그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