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로 인한 검찰 내부의 반발이 거세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박은재 대검 미래기획단장(46)은 “검찰총장의 언론보도정정청구로 진정국면에 접어든 검찰이 오히려 장관님의 결정으로 동요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도대체 어떠한 방식의 감찰로 실체를 규명하려고 하셨느냐”며 “유전자 감식과 임 아무개 여인의 진술 외에 이런 사안을 밝힐 다른 객관적 방법이 있는지 떠오르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가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법무부의 눈 밖에 난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함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특수수사 분야 검사들의 반발은 극에 달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검사는 “이런 식으로 하면 누가 수사를 하려고 하겠느냐”며 “이미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공소유지가 제대로 될 것인지도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사는 “검사들마다 각기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반응의 정도가 차이가 나지만 검찰총장 감찰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에 속에서 뒤로 숨으려는 검사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특수통 검사들의 ‘분노’와는 달리 공안통 검사들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다.
국정원 대선·정치개입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내에서도 특수와 공안 출신 검사들 간의 의견대립이 있었다. 청와대가 채동욱 검찰총장을 정리하자 자신들이 당시 주장했던 것이 옳았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공안 분야에 정통한 한 검사는 “결국 채동욱 총장과 그를 따르는 특수통들이 무리하게 공직선거법 적용을 주장하면서 검찰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 주변 참모들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일선 검사들은 황 장관이 무리한 감찰로 검찰 전체를 위기에 처하게 했는데 주변 참모들이 이를 사전에 막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 한 관계자는 “법무부 검찰국장 등 황 장관 주변 간부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대로 조언했다면 이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벌어진 검란 역시 수뇌부의 부적절한 감찰 카드로 촉발됐다. 지난해 11월 대검 감찰본부는 한상대 검찰총장(54)의 지시를 받아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51)에 대한 감찰에 착수한다. 잇따른 검찰 내부 비위로 인해 사퇴 압박을 받던 한 총장의 거취문제와 관련한 갈등이었다.
한 총장은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과 함께 대검 중수부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자체 개혁안을 들고 나오는 대신 사퇴 요구는 거절했다. 1차 검란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황 장관이 성공 가능성도 없는 감찰 카드를 꺼내들자 검찰 안팎에서는 “황교안 장관이 한상대 검찰총장을 표절했다”는 조롱까지 이어지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것은 지난해 사건과 외형적으로 유사하다. 감찰착수 과정에서 대검찰청 감찰본부와 ‘한 마디’ 상의도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애초부터 부적절한 감찰이었다는 비판이 검찰에서 나온다. ‘법무부 감찰규정’ 제5조는 “검찰의 자체 감찰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청 소속 공무원에 대한 비위조사와 수사사무에 대한 감사는 검찰의 자체 감찰 후 2차적으로 감찰을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청 소속인 경우 원칙적으로 대검찰청 감찰본부 등 감찰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감찰규정 제5조의 예외조항을 근거로 들고 나왔다. 제5조는 ‘언론 등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항으로 검찰의 자체 감찰로는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판단해 법무부 장관이 감찰을 명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법무부가 감찰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지난 4월에 출범한 검찰개혁심의위원회의 활동이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
채 총장 사퇴 직후 사의를 표한 김윤상 대검 감찰1과장도 역시 이 같은 부분을 비판했다. 김 과장은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며 “그런데 나는 검찰의 총수에 대한 감찰 착수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채동욱 총장의 전격 사퇴로 그동안 그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던 정·재계 사정작업, 검찰 개혁작업과 독립성 문제 등이 좌초할 위기에 빠졌다. 채 총장은 검찰 조직을 흔드는 권력의 외압에 맞서기 위해 정·재계에 대한 대대적인 독립적 사정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여권 실세의 대선 자금 문제 등 민감한 문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서 검찰의 정치적 의도에 의한 기획수사라고 공격할 수도 있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그대로 밀어붙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채 총장은 검찰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채동욱 개혁안’을 입안해 실시할 예정이었다. 여기에는 외부 인사들로 검찰개혁심의위원회를 구성하는 것과 내부 감찰강화, 검사와 수사관의 전문성 강화, 인사개혁 등 내부 개혁과 검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안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검찰 내부에서는 채 총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각종 대형사건에 대한 사정작업이 정권 ‘입맛’에 따라 난도질당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채 총장이 밀어붙였던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이 향후 정무적으로 물 타기 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4대강 사업 비리와 재계에 대한 대대적 사정작업에도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독립성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검찰 개혁 관련 대선 공약 첫 번째가 바로 ‘검찰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이었다. 하지만 채 총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물러나게 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진의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됐다. 현 정권이 앞으로 어떤 검찰총장을 임명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과연 그 인물을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줄 수호천사로 볼 것인지, 아니면 정권의 꼭두각시로 볼지 ‘채동욱 사태’가 그 해답을 말해주고 있다.
이승희 언론인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