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원로목사와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떠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검찰 측은 김 아무개 씨를 증인으로 내세워 조용기-조희준 부자의 불법 내부거래와 탈세 등 ‘배임’ 혐의 입증에 주력했고 변호인 측은 조 목사가 금융법 및 세법에 어두웠고 사실상 증인 김 씨 등을 비롯한 아랫사람들이 주도해서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정에 증인으로 나선 김 아무개 씨는 교회 장로, 교회 총무국장, 순복음선교회 이사장 및 사랑과행복나눔재단 사무국장, 국민일보판매주식회사 대표이사 등을 두루 거치거나 겸직한 조용기의 심복이자 최측근이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김 씨는 “하느님 다음으로 조 목사를 존경하고 섬겨왔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면서도 “조 목사가 검찰 조사에서 ‘나와 박 아무개 경리실장 겸 아이서비스 이사가 다 한 일’이라고 떠넘겼다고 들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라고 증인으로 나선 이유를 밝혔다.
피고인 조용기는 증인의 바로 뒤에 자리 잡았다. 그의 오른쪽으로 피고인 조희준이 앉았고, 탈세 방법을 자문해준 혐의로 피소된 모 회계법인 소속 직원 두 사람이 왼쪽에 배석했다. 다른 피고인들은 낮은 등받이의 의자에 앉았지만, 조 씨는 높은 등받이를 갖춘 편안한 의자를 제공받았다. 재판 내내 조 씨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내는 최측근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봐야 했고, 그럴수록 그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궈졌다.
이번 배임사건은 지난 2000년 조희준 전 회장이 국민일보 평생독자기금 225억 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일에서 시작됐다. 같은 해 조 전 회장은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아이서비스의 주식을 발행했다. 조 전 회장은 1주당 10원에 불과한 이 주식 30만 주를 국민일보판매주식회사에 고가에 팔아 약 200억 원에 이르는 차익을 남겼다. 이 주식은 다시 유령회사인 경천인터내셔널을 거쳐 피고인 조희준이 이사장으로 있던 문화원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도 없었고, 명의 이전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2년 11월 문화원은 이 주식을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시가 202억 원가량의 영산아트홀(국민일보 지하 2층 소재)과 맞바꿨다. 그 직후 문화원은 청산절차를 밟아 없어졌다. 이러한 연이은 내부거래를 통해 주식의 가격은 8만 원까지 부풀려졌다. 결국 교회가 주식을 턱 없이 비싼 가격에 사들인 셈이 됐다. 조 부자를 검찰에 고발한 교회 장로들은 이밖에도 교회가 피고인 조희준에게 자산이 없는 회사의 채권을 49억 원에 매입하고, 증여세까지 물게 되면서 모두 305억 원에 이르는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에서 피고인 조희준이 교회에 주식 매도 후 매도대금 전체 혹은 일부를 가져가 사용했을 것이라는 혐의도 받았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일요신문DB.
검사는 증인 김 씨에게 “피고인 조용기에게 (회계법인의) 제안대로 할지 여부를 보고했나”라고 물었고, 김 씨는 “그렇다. 내가 정확히 보고했다”고 답했다.
이어 검사는 “그렇게 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피고인은 알고 있었나”라고 다시 물었고 증인은 “네”라고 간단히 답했다. 검찰 측은 피고인이 증인 김 씨에게 지시하고 이것을 송아무개 당시 경리실장에게 전달해 서류를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 씨는 “피고인의 지시를 받아 전달한 것이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곧이어 이어진 반대심문에서 조용기 측 변호인은 200개가 넘는 질문을 쏟아내며 김 씨를 압박했다. 변호인이 “조 목사가 국내 일정도 바쁘고, 연간 해외 일정도 평균 10여 회다”라며 “구체적 업무 지시, 점검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나”라고 묻자, 증인은 “각 국장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결제는 300만 원 이하”라고 맞섰다. 변호인이 다시 “조 목사가 증인에게 위임해서 처리한 것 아니냐”고 재차 묻자 “국장들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의결 및 집행기구를 거쳐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변호인은 “총무국장이 교회재산을 관리하고,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핵심적 직책”이라고 주장하며 “증인이 피고에게 절대적 신임을 받는 사람이 아니냐”고 다그쳤다. “절대적 신임”이라는 표현을 두고 두 사람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지자, 결국 재판장이 나서서 “질문이 추상적”이라고 정리했다. 방청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 씨는 심문 내내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윗분의 지시다” “교회는 일반사회와 달라서, 이의제기하거나 따지는 것이 없다. 지시대로 할 뿐이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변호인이 “피고인은 문화원을 청산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것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조 목사가 직접 내게 아이서비스 주식을 고가로 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면서도 “주식매매계약서가 내게 왔을 때 이미 가격이 표시돼서 결제가 올라왔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조목사가 ‘희준이가 어려우니 도와줘라’고 말한 적은 있다”고 답변했다. 이 말 안에 사실상 이번 배임 사건의 전모가 함축돼 있다는 암시였다. 김 씨는 피고인 조희준으로부터도 “‘아버지와 상의된 거다’라고 들었다”고 강조했다.
변호인 측은 순복음교회 산하 단체 및 재단법인들이 사실상 한 법인이며, 증인을 비롯한 측근들이 마음대로 처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내부거래가 피고에게 실익이 없다는 것, 피고인이 주식 등 금융법 및 세법을 잘 모르고 승인했다는 등의 논리로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또 “피고인 다음으로 증인만큼의 실력자가 있냐”고 유도심문을 했으나 증인은 “내가 아니라 조희준”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변호인은 “당시 조희준은 일본에 나가 있었다” “증인과 조희준 사이에서 ‘사랑과행복나눔재단’ 사무국장 자리를 두고 갈등이 있었을 때 조 목사는 중립을 지켰다”고 증인을 압박했다.
공판 진행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조용기 원로목사.
오전에 개정한 법정에서 증인은 검찰 및 변호인에게 “국세청이 개입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획기적 절세방안이라고 여겨져서 당시 자문료를 2억 3000만 원이나 지불했다. 단순히 국세청에서 한 제안을 옮기는 것이라면 뭐 하러 자문료를 그렇게 많이 줬겠나”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오후에 있었던 피고인 김 아무개(회계법인 직원) 변호사의 반대심문에선 “벌써 10년 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증언을 번복하기도 했다.
이어진 검찰 측의 증인 심문에서 검찰은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언을 확보했다.
“회계법인으로부터 취득 주체를 교회로 바꾸면 된다는 말을 듣고, (허위) 서류도 작성해야 한다는 말도 보고했나? 즉 절세가 아니라 탈세라는 공감대가 있었던 건가”라는 검사의 물음에 김 씨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답했다.
이어 검사는 “비영리법인인 교회가 주식을 취득할 필요가 있었나”라고 묻자 “없었다”고 답했다. 이어 김 씨는 “사실 부당한 방법이라는 것은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이미 기획·작성돼서 내게 왔다. 대화가 사전에 충분히 있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진 검사의 “피고인 조용기는 이미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는 거죠?”라는 질문에 “예”라고 동의했다.
재판은 마지막으로 회계법인 직원 피고인 김 아무개 변호인의 반대심문으로 마무리됐다. 변호인은 피고인 조용기가 아이서비스 주식 매입을 결제해준 이유에 대해 “문화원 청산을 위해선 문화원 재산 200억 원이 제대로 운용된 것처럼 보이는 등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므로 영산아트홀을 산 것처럼 꾸몄던 것”이라며 “또 문화원이 원래부터 주식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꾸며서 교회로 넘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영산아트홀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피고인 조희준이 영산아트홀을 담보로 모 은행에서 17억 엔을 빌린 것을 알 수 있다”며 “조목사는 검찰에 ‘기억이 안 난다’고 했으나 조목사가 승인해 줬을 것”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3차 공판은 오는 21일 열린다. 공판에선 박 아무개 전 교회 경리실장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신상미 기자 shin@ilyo.co.kr
단일 교회로 세계 최대
여의도순복음교회 전경.
2013년 현재엔 75만 명의 신도와 1300여 명에 이르는 장로가 있는 대형교회로 발전했다. 600여 명의 교역자와 직원이 근무 중이며 1년 집행예산은 10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단일 교회로선 세계 최대 규모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조 부자의 변호인은 “이러한 경제 규모가 사실상 대기업에 비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교회의 모든 영역이 대기업의 경제활동에 비할 만하다면 아울러 투명한 재정 운영과 사회적 책임의식도 요구된다. 교회의 주인은 조 부자가 아니라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꼼꼼하게 메모를 하며 재판을 지켜본 한 방청객은 “이번 재판은 조 목사 일가가 저지른 수많은 비리 중 빙산의 일각을 심판 받는 자리”라며 “조 부자의 편은 이제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신상미 기자 sh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