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자골프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장하나가 버디 성공 후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 사진제공=KLPGA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한 음식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벽을 가득 메운 신문기사를 볼 수 있다. 찬찬히 훑어보니 ‘괴력의 소녀’, ‘장타 소녀’, ‘골프천재’라는 말 뿐이다. 그곳은 바로 KLPGA의 여왕 후보 장하나의 부모가 운영하는 고깃집이다.
기사만 봐도 그가 얼마나 주목받아 왔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장하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골프신동’으로 유명했다. 2004년 11월. 초등학교 6학년이던 장하나는 제주도의 한 골프장이 마련한 행사에 초청됐다. 이날 장하나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보는 앞에서 300야드에 가까운 장타를 펑펑 쏘아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우즈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며 혀를 내둘렀고, 우즈의 매니지먼트사는 그에게 미국 유학을 권했을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그가 골프채를 잡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 장창호 씨(62)는 스케이트 선수였고 어머니 김연숙 씨(62)도 농구선수 출신이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운동과 친숙했다. 골프 이전에 검도, 수영, 스키, 스케이트, 승마 등 다양한 운동도 배웠다.
이런 저런 운동과 달리 골프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아버지 장 씨는 “골프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린아이가 드라이버로 공을 펑펑 때리는 모습을 보고 레슨코치가 ‘골프를 시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권했다. 그 말을 듣고 골프를 시키기로 마음먹었다”라고 설명했다.
골프를 배우기 전에 여러 운동을 배웠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검도는 손목의 힘을 좋게 했고, 스키와 스케이트는 하체를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됐다. 수영은 유연성을 키워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때부터 장타자의 조건을 하나씩 충족시켜왔다.
장하나는 “어렸을 때 아빠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러 가면 링크를 수십 바퀴씩 돌았다. 힘이 들었지만 지금의 튼튼한 하체가 그때부터 만들어진 것 같다”라고 아빠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남달랐던 소질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 무대에서도 우승을 휩쓸었다. 이렇게 수집한 우승트로피만 40여 개다.
이런 장하나를 보고 국내 여자 골프계에선 그를 차세대 유망주로 점찍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여자오픈에 최연소 출전하는 기록도 세웠다.
# 3번의 실패와 눈물 나는 우승
2011년 고등학생이던 장하나는 프로로 옷을 갈아입었다. 대형 신인의 등장이라며 기대가 컸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 다. 2년 가까이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2012년 10월. 그토록 기다리던 첫 우승이 나왔다.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 골프장에서 열린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프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 초반부터 장하나의 기세는 대단했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권에 올랐다. 그러나 절대 강자라고 하기엔 2%가 부족했다. 불운의 시작은 4월 열린 롯데마트 여자오픈이다. 3라운드까지 2위에 3타 앞선 단독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마지막 날 결과가 뒤집어졌다. 마지막 날 3오버파 75타를 치며 준우승에 만족했다.
3주 뒤 열린 KG·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에서도 우승을 눈앞에 뒀다. 2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유지했으나 우승컵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두 번째 준우승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세 번째 우승 기회가 찾아왔다. 2라운드에서 8언더파를 몰아친 장하나는 2위에 2타 앞선 단독 선두로 나섰다. 그러나 마지막 날 1오버파 73타로 타수를 잃는 바람에 이미림에게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우승 문턱에서 좌절을 맛본 장하나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장하나는 “우승 문턱에서 모두 내 실수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많은 걸 배웠다. 후회 없는 경기였고 더 잘할 수 있는 교훈을 얻었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말처럼 세 번의 준우승은 약이 됐다. 그는 5월 마지막 주 강원도 춘천의 라데나 골프장에서 열린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의 설움을 씻어냈다. 3전4기 끝에 시즌 첫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정상에 섰다. 기쁨은 몇 배가 됐고 ‘새가슴’이라는 꼬리표도 날려버렸다.
시즌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장하나의 독무대가 이어지고 있다. 8월과 9월 잠시 주춤했지만 10월 6일 끝난 러시앤캐시 행복나눔 클래식과 이어진 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더 강해져 돌아왔다. 장하나의 맹공에 한화금융클래식과 KLPGA 챔피언십 연속 우승으로 상금랭킹 1위를 예약했던 김세영마저 흔들리고 있다.
13일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장하나가 대회 전통에 따라 우승컵에 담긴 맥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제공=KLPGA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이 들기까지 내 머릿속에는 온통 골프밖에 없다. 골프가 나의 전부다.”
장하나는 골프밖에 모른다. 오전 6시 기상해 연습을 시작하면 해가 떨어질 때까지 골프에만 집중한다. 그의 골프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프로가 돼 얼마 되지 않아 휴대전화를 아빠에게 맡겼다. 시도 때도 없이 문자 메시지가 날아오는 통해 연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10대의 소녀들에게 휴대전화는 필수품이었지만 골프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KLPGA 투어 지존 등극을 바라보고 있는 장하나의 화살은 먼 곳을 향하고 있다. KLPGA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장하나는 “최종 목적지는 미국이다.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겠다. 천천히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겠다”면서 “아직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잘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면 나 같은 선수들은 훨씬 더 많다. ‘그 무리에서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직은 확신이 없다. 더 완벽해지고 해외 투어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자신이 생길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겠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우선은 해외 진출에 앞서 국내에서 일인자가 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남은 대회는 4개. 장하나가 몇 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을지 가장 큰 관심거리다.
주영로 스포츠동아 골프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