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비밀해제’된 백지계획 관련 자료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낙점한 후보지 장기면의 도시계획안(사진)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 눈길. | ||
그러나 노무현 캠프에서 마련된 것으로 알려진 이 계획에 훨씬 앞서, 이미 23년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비슷한 계획이 추진됐다가 백지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천도’ 프로젝트가 백지화된 것은 1979년 박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때문.
이같은 사실은 3급 기밀로 분류됐던 이 계획이 최근 정부 기밀문서 유지기간이 끝나면서 전격 공개됨에 따라 밝혀졌다. 이 자료는 원래 2010년 일반문서로 분류될 예정이었으나, 정부는 당초 계획을 7년 앞당겨 이번에 공개했다. 기밀에서 풀린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계획 전모를 상세히 알아본다.
이 계획은 1975년 박 대통령에 의해 처음 구상된 뒤 1977년 프로젝트 담당팀이 구성됐고, 1979년 구체적인 계획이 짜여졌다. 박 대통령에 의해 극비리에 진행되던 이 계획의 이름은 ‘백지계획’으로 붙여졌다. 백지계획이라고 명명된 이유는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위에 지도를 새로 그린다’는 의미였다.
당시 박 대통령이 정한 새 행정 수도는 충남 공주 인근 ‘장기’라는 곳이었다. 이 곳에 ‘제2의 서울’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행정수도 건설 백지계획의 특성’ 등 모두 22권의 자료집과 ‘2000년대 서울도시계획’ 등 기록묶음 8종, 그리고 제목이 없는 간략본 3종 등 모두 33권이다. 방대한 자료만큼이나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가정에 불과하지만, 만약 ‘10•26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이 1백80도 바뀌었을 만큼 대규모였다. 우선 눈에 띄는 대목은 당시 이미 새로운 수도지가 선정됐다는 점. 박 전대통령은 치밀한 사전 답사를 통해 충남 공주의 ‘장기 지구’를 새로운 행정수도로 확정했다.
장기 지구는 천태산을 중심으로 좌우에 국사봉과 갈매봉이 ‘좌청룡 우백호’격으로 자리잡고 있는 곳. 남쪽에는 장군봉이 있고, 그 뒤편에 금강이 흘러가고 있는 등 마치 서울을 그대로 축소해서 옮겨놓은 듯한 ‘최적의 조건’으로 평가되었다.
‘도시기반 조성계획’ 등의 자료집을 보면 새 행정수도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행정수도의 핵심인 대통령 관저와 중앙청은 북쪽에, 그리고 시청은 남쪽에 건설하는 것으로 짜여졌다. 동쪽과 서쪽에는 입법부와 사법부를 배치, 십자형의 깔끔한 계획도시를 그리고 있다.
4곳의 국가 기관이 만나는 행정수도의 한가운데에는 대규모 인공호수와 함께 ‘민족의 광장’이 자리잡고 있고, 이 곳을 중심으로 중앙청 앞의 ‘역사의 광장’, 시청 앞의 ‘번영의 광장’, 사법부 앞의 ‘정의의 광장’, 입법부 앞의 ‘자유의 광장’ 등 모두 5개의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금강변에는 강변 자유공원과 시민휴식공간 선착장 등이 들어서고, 중심지구의 좌우 외곽에 위치하는 주거지역은 약 15만 가구의 전원주택들이 펼쳐진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새 수도의 외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이전계획, 재원조달계획, 주택단지계획, 도시 조경계획, 유통구조, 주택의 공장생산화계획, 교통체계분석, 지역냉난방 및 진개처리 등 세부추진계획도 포함돼 있다.
▲ 최근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비밀해제’된 백지계획 관련 자료집 | ||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당시 ‘백지계획’을 주도한 중화학기획단(단장 오원철 경제2수석)이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대통령은 79년 5월에 이 내용을 보고받았으며, 작고하기 직전까지 집무실에서 이 계획을 꼼꼼히 검토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5공 정권이 들어선 이후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이 내려져 사실상 폐기처리됐다. 다만 ‘백지계획’의 실무 책임자였던 박봉환 부단장의 건의에 의해 이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었던 ‘한강유역 개발계획’만 받아들여졌다.
박 부단장은 5공 초기 전 전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담당하며 동자부 장관을 지냈다. 박 부단장은 이 프로젝트를 끝내 실현시키지 못하고 지난 2000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그동안 이 계획은 유신정권 종식과 함께 소관 부처가 청와대에서 건설부로 이관되면서 자료집 가운데 일부가 건설부에 남아 있었다.
대전정부청사 정부기록보존소의 남희숙 연구사는 “이번에 개방된 총 22권의 자료집과 11종의 기록묶음은 청와대 비서실 산하의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이 보관하고 있던 것”이라고 밝혔다. 남 연구사는 “기록에 의하면 자료집은 총 25권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3권의 행방은 현재 알 수 없다”며 “이와 유사한 자료집의 일부는 당시 오원철 수석 등 관계자가 별도로 보관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실제 오 전수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료의 일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추가 자료의 공개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백지계획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정부기록보존소에 의해 그동안 ‘3급 비밀 기록물’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이 내용은 그동안 오 전수석 등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서 지난 90년대 두세 차례 정도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
이번에 건설부에서 전격적으로 7년을 앞당겨 자료를 공개키로 결정한 것 역시 당시 관계자의 증언이 앞으로 잇따를 것이란 점을 고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건설부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 이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면서 백지계획에 대한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역시 백지계획의 내용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새 정부의 백지계획 활용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김병준 간사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노 당선자는 이미 91년 지방자치연구소를 운영할 때부터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서 “박 전대통령에 의해 준비된 백지계획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 간사는 “다만 20년 전의 이 계획이 오늘날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자료를 좀더 충분히 검토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당시의 보고서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잘 짜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 만약 새 정부에서 행정수도 이전계획 실무팀이 조직되면 이 자료를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하지만 새 행정수도의 지역이 20년 전에 정해졌던 장기 지구가 될 것이라는 항간의 추측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김 간사는 지난 대선 당시 노 당선자의 행정수도 이전계획 공약을 직접 기획했던 당사자였다.
김 간사는 현재 새정부의 행정자치부 장관이나 장관급인 행정자치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김 간사는 새 정부에서 행정수도 이전계획을 담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국무총리로 내정된 고건 총리후보자 역시 백지계획 작성 당시인 79년 청와대 정무 2수석을 지내는 등 이 프로젝트와의 직간접적인 인연이 있다. 이미 대전 현지에서는 ‘20년 이상 지하 창고에 묻혀 있던 대형 프로젝트가 이제 새 정부에 의해서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기대감이 팽배해 있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