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뉴스 화면 캡처.
영원할 것만 같았던 가족의 행복은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가족들의 지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신 씨는 하루가 다르게 바짝 말라갔고 병세는 빠르게 악화됐다. 당시 신 씨를 목격했다는 한 이웃주민은 “간암을 앓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후로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친척 배웅을 위해 주차장에 나온 신 씨를 봤는데 뼈랑 가죽만 있는 상태였다. 가끔 마주친 가족들은 몇 년이 지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리만 했지 돌아가셨다는 얘긴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말은 거짓이었다. 신 씨의 병원 진료기록은 2006년에서 멈춰있었으며 경찰에 따르면 그는 2007년 초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나아지고 있다”는 말은 가족들에게만큼은 진실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그들은 장례를 거부하고 신 씨의 시신을 집안에 보관하며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자녀들은 등하교를 할 때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는 등의 인사를 잊지 않았고 아내 조 아무개 씨(43)도 신 씨의 시신을 거실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 매일 안부를 물었다. 또한 조 씨는 약국 일을 마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 씨의 시신을 물수건으로 닦고 주기적으로 옷도 갈아입혔다. 같이 살던 시누이조차 그런 조 씨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자신도 ‘죽은’ 동생에게 “외출하고 오겠다” “잘 다녀왔다” 등의 인사를 건넸다. 살아생전에도 눈만 마주치면 웃었던 가족은 그렇게 죽어서도 함께였다.
이처럼 가족들은 외부에 신 씨의 사망소식을 일절 알리지 않은데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지냈기에 누구도 그들의 수상한 동거를 알아채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은 신 씨의 죽음이 외부로 새어나갈까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살았다. 우선 현관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 창문에 신문지를 바르는 등 집안 내부를 가렸다.
사람들과의 교류도 거부했다. 가족들은 2008년에 신 씨가 다니던 직장에 찾아가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신청을 했으며 그의 투병 소식을 들은 동료와 선후배들이 찾아와도 “안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집안에는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또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조 씨는 신도들이 남편의 건강상태를 물어도 “오늘은 머리를 감겨줬다” “잘 요양하고 있다” 등의 말로 위기를 모면했다. 엄청난 비밀을 숨긴 채 가족들의 고립된 생활이 계속됐지만 남편을, 아버지를,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했던 모양이다.
이렇게 시작된 시신과의 동거는 무려 7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특수 냉장장치가 없는 가정집에서 오랜 시간 시신을 보관할 경우 지독한 악취로 이웃들에게 의심을 받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그동안 한 건의 신고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서울 방배경찰서로 “40대 남자가 자취를 감추고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첩보 한 통이 접수되면서 그들의 엽기적인 동거는 끝이 났다. 그런데 경찰이 시신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조 씨는 “남편이 숨을 쉬고 있었다. 기도를 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며 신 씨의 죽음을 완강히 부인했다. 정신병을 앓은 적도 없고 더군다나 고학력자였던 조 씨에게 남편의 죽음은 그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조 씨의 집을 찾은 경찰은 신 씨의 시신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 씨의 상태가 상당히 깨끗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살짝 냄새가 나는 등 시신의 부패가 약간 진행된 상태이긴 했으나 특별한 냉장장치도 없는 가정집에서 7년 동안 보관된 시신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약사인 조 씨가 시신을 방부 처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 역시 일반적인 경우보다 부패 진행이 늦었던 점을 들어 조 씨를 의심했다. 하지만 조 씨 본인도 방부 처리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의뢰 결과 역시 방부 처리에 대해 단서가 될 만한 무언가가 나오진 않았다.
신 씨의 사인이 독극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약품반응여부는 부검항목에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육안으로 확인한 결과 신 씨의 시신은 장기까지 건조된 상태로 보관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으로 판단됐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26일 이미 장례를 치른 상태라 시신을 통한 수사는 더 이상 불가한 상황이다. 다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방부 처리를 하지 않고도 여러 조건만 맞으면 부패가 덜할 수 있다고 한다.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시신이 놓인 집안에 파리나 균이 없고 온도와 습기가 적절히 조절되는 환경이었으면 외부 건조로 인해 내부 부패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조 씨는 지금도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듯 보였다. 사체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아직까지 남편의 정확한 사망시점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애써 평정심을 찾으려 하는 것인지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본래 일하던 약국에도 꾸준히 출근하고 있으며 취재진의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종교에 빠진 아내들 “남편 부활 믿는다”
공포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시신과의 동거’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사건이다. 거의 매년 시신과 함께 생활하던 이들이 경찰에 적발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종교적인 믿음으로 부활을 기다렸다고 했다. 특히 남편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아내 때문에 시신과의 동거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2009년에는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도 미라처럼 완전히 마른 상태로 숨져있는 40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1년 이상 사위를 보지 못한 장인이 직접 딸의 집을 찾았는데 안방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시신을 보고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한 것. 알고 보니 고인은 약 2년 전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오다 2008년 1월에 사망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종교의 힘으로 남편을 소생시킬 수 있다며 1년 이상 장례를 거부하고 시신을 방에 둔 채 기도를 올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누구도 가족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진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시신과 함께 동거하는 일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이에 대해 한국범죄심리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상균 백석대 법정경찰학부 교수는 “살인극을 벌인 뒤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시신을 유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범죄의 희생양이 아닌 자연사한 가족의 시신과 동거하는 사람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며 크게 두 가지 심리적 원인이 작용한다”며 “먼저 왜곡된 종교적 신념에 따른 행동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들은 종교적 교리에 따라 죽은 자가 언젠가 부활할 것이라 믿어 시신과 함께 지냄에 거리낌이 없다”고 설명했다.
극도의 분리불안도 ‘시신과의 동거’를 가능하게 한다. 김 교수는 “보통 사람들은 유아기나 아동기에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분리불안을 겪는다. 이 시기 부모의 사망, 학대 등의 부정적인 기억이 있으면 성인이 돼서도 영향을 받는다”며 “심할 경우 자신의 가정을 꾸려서도 남편, 아내 등 특정인에게 과도한 의존심을 보인다. 그런데 의존하고 있던 상대가 죽으면 또다시 겪게 될 불안감과 공포심이 두려워 죽음을 인정하는 대신 ‘살아있다’는 자기최면을 걸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